한자(漢字)와 한문(漢文)
한자는 무엇이고 한문은 무엇인가.
우리가 보통 한자(漢字)를 보고 한문(漢文)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한자가 한문이고 한문이 한자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데 한문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즉 한문은 ‘한자로 이루어진 문장’이란 의미가 있다. 그래서 한자와 한문을 굳이 구분하자면, 한자는 단어 차원이고, 한문은 문장 차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한자(漢字)는 고대부터 중국에서 쓰이던 문자이다. 한자는 대략 은(殷)나라 때부터 만들어졌다고 한다. 현재 알려진 한자는 수만 자이나, 실제 쓰이는 한자는 만자 이내이고, 자주 쓰이는 상용(常用) 한자 천(千) 자 정도가 90% 이상의 빈도로 쓰인다고 한다. 그런데 현재 중국에서는 많은 한자가 간체자로 쓰이고 있고, 기존의 한자는 번체(繁體)라고 하고 잘 쓰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영어 알파벳은 26 자에 불과한데, 한자는 수 만자나 되니, 배우기에 불편하고 뒤떨어진 문자라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알파벳은 그 자체가 단어가 아닌 단어의 일부를 이루는 음운 문자이니까 별도로 단어를 익혀야 하는데, 한자는 한자 자체가 단어가 되는 단어 문자이니까 글자와 단어를 동시에 배우는 셈이다. 그러하니 한자는 글자 수가 수 만 개라기보다는 단어 수가 수 만 개라고 보고 한자에 대한 부담이나 거부감을 조금 덜기 바란다.
그리고 우리가 통상 말하는 한문(漢文)은 중국의 지금의 현대문(現代文)이 아니고 예전에 쓰이던 고문(古文)을 말한다. 그런데 고문이 어느 시점을 말하는지 애매하기는 한데, 고문은 대략 춘추전국 시대와 진(秦)?한(漢) 시대가 근간이 되는 듯하다. 시대가 후대일수록 어휘와 문법에서 이 고문과는 차이가 심해져, 그래서 지금의 중국인들도 한문을 잘 몰라, 이를 공부해야 잘 알 수 있다고 한다.
한자 빨리 익히는 방법
한자는 국어에 쓰이는 한자어의 이해를 위해서나 한문 공부를 위해서나 알아두면 모르는 것보다는 이로움이 많다. 수많은 한자를 다 알 수는 없고, 한문 공부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최소한 교육부에서 선정한 1800 한자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할 듯하다.
그런데 한자를 빨리 익힐 수 있는 특별한 비법이 있을까. 뾰족한 수는 없다.
꾸준한 반복 학습이 최고의 방법이다. 그러나 한자가 구성되거나 만들어진 원리에 대한 이해를 하는 것도 약간 한자를 암기함에 조금 득이 될 듯도 하다.
그리고 한자를 공부하는 데 요령을 부리자면, 가장 기본적인 한자부터 익히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다른 한자를 배우기가 그냥 마구 한자를 익히는 것보다는 쉽게 한자를 암기할 수도 있다. 왜냐면 한자의 8, 90 퍼센트는 형성자(形聲字), 회의자(會意字) 같은 기존의 있던 한자나 그 일부가 합하여 이루어진 합성자(合成字)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수가 아니어도 가령 呵, 哥, 柯, 訶, 軻, 何, 河 자들은 ‘可’자가 공통으로 일부로 쓰였고, 假, 暇, 瑕, 蝦, 遐, 鰕 자는 ‘?(가)’자가 공통으로 쓰이는데, 이렇게 여러 한자에 대개 음(音) 역할을 하며 부분으로 쓰이는 한자가 있다. 이런 한자와 부수 같은 것이 기본적인 한자가 된다. 부수는 총 214 자인데, 처음부터 이 214 자를 다 익히려 하는 것은 무리이다.
쓰이는 빈도가 높거나 쉬운 水(?), 木 같은 부수부터 먼저 익혀 간다.
부수 214 자 중에서 대충 절반 정도는 익히기가 쉬운 한자이고, 나머지 반은 생소하여 어려운 편이다. 부수는 주로 한자에서 뜻 역할을 하므로 음(音)보다는 뜻 위주로 공부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부수 말고 여러 한자에 부분으로 쓰이는 한자는 대개 형성자에서 음의 역할을 하므로, 음 위주로 공부해야 한다. 그런데 형성자 중에서 음(音) 역할을 하는 한자의 음이 그대로 쓰이지 않고, 약간 다르게 쓰이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가령 可자는 음이 ‘가’인데, 河?何에서 可자가 음 역할을 하지만, 河?何의 음은 ‘가’가 아니라 ‘하’이다. 좀 더 이런 사례를 열거하면,
?重(중)=> 種(종), 踵(종), 鍾(종)
?朱(주)=> 洙(수), 殊(수)
?吾(오)=> 語(어), 圄(어)
?予(여)=> 序(서), 舒(서), 野(야)
?蜀(촉)=> 獨(독), 濁(탁)
위와 같다. 또 高-下나 强-弱 같이 서로 의미가 반대되는 한자나, 成-就, 恩-惠처럼 비슷한 개념의 한자 끼리 서로 연관되어 학습하는 것도 그냥 한자를 따로 하나하나 배우는 것보다 더 효율적으로 한자를 배울 수 있는 것 같다.
한자만 많이 알면 한문을 알 수 있을까
한자는 본인이 직접 알고 있지 않아도, 옥편이나 ‘한글’ 같은 문서(워드) 프로그램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대부분의 한자를 쉽게 알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한자를 잘 모르는 이도, 한자를 잘 알고 있는 셈이 된다. 그렇다면 본인의 실제의 실력이든 옥편 등에 의존하든지간에 한자를 많이 알면, 한문을 알 수 있을까.
한자(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알면, 이를 토대로 대충 문장도 해석을 할 수 있는 듯하나, 이는 거의 어렵다고 보면 된다. 한문이 일본어처럼 우리말과 문법에서 많이 유사하다면 몰라도, 한문의 문법이나 특성이 우리말과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래를 보라.
1) 申師任堂, 栗谷之母也.(신사임당은 율곡(이이)의 어머니이다.)
春來, 則燕歸.(봄이 오면, 제비가 돌아온다.)
2) 金氏讀論語.(김씨는 논어를 읽었다.)
小人敏於利.(소인은 이익에 민첩하다)
2-a) 金氏讀論語.(김씨가 읽은 논어.)
小人敏於利.(소인은 민첩하고 이익에서)
예문 1처럼 한문 문장이 해석 순서가 우리말과 비슷하게 되는 경우엔, 한자만 알아도 대강 문장의 의미를 알 수 있을 듯도 하다. 그러나 예문 2처럼 어순이 우리말 해석과 다르면, 생초보라면 2-a 같이 어색한 해석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엔 한문의 문법을 알아야 해석을 할 수 있게 된다.
단어(한자)가 모여 문장을 이루니, 문장을 해석하려면 단어를 많이 알면 쉽게 문장을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된다. 단어가 모여 문장을 이룬다기보다는 문장이라는 틀 안에 단어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즉 단어보다는 먼저 문장에 많이 익숙해져야 문장을 쉽게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한자 자체를 아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한문 문장을 해석하는 것이 목표라면, 한자 단어 공부보다는 문장 공부에 주력해야 한다.
문법만 알면 한문을 알 수 있을까
문법(文法)을 독해의 지름길로 알고, 문법을 잘 알면 한문을 쉽게 빨리 터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정말 문법이 독해의 지름길이 될 수 있을까. 예를 들어보자.
1) 忠臣不事二君.(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
子雪父之辱.(자식이 아버지의 모욕을 씻었다)
1-a) 子法父母, 乃不愼言行.(자식은 부모를 본받으니, ~.)
2) 不寐夜長, 疲倦道長.(잠이 오지 않으면 밤이 길고, 피곤하면 길이 길다)
3) 樹欲靜而風不止.(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은 그치지 않는다)
위의 예문 1에서 밑줄 친 단어를 제대로 풀이하려면, 한문에서 한 단어가 어형 변화 없이 여러 품사로 해석이 되기도 하는 특징(문법)을 알면 독해가 쉬워진다. 그렇다면 문법 지식을 활용해, 예문 1과 특징이 비슷해 보이는 1-a(앞부분)를 독해할 수 있어야 하는데, 초학자에겐 이것이 쉽게 독해가 잘 되지 않을 것이고, 한문 문장에 많이 접하여 예문 1-a 같은 특징에 익숙해져야 비로소 독해가 술술 될 것이다.
이처럼 문법은 독해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나, 한계가 있다. 또 예문 2는 구절 사이가 가정으로 이어지고, 예문 3은 역접으로 이어짐을 문맥에 의하여 파악하니, 이렇게 한문에선 문법보다는 문맥에 의존하여, 의미를 파악해야 하는 경우가 다른 언어에 비해 많은 것도, 문법을 아는 것만으로 한문을 아는 것이 어렵게 되는 원인이다. 거기다가 결정적으로 문법서만 본다고 문법 실력이 잘 늘지만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옥편만 판다고 해서 한자 실력이 꼭 잘 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리고 문법적으로 따지고 이해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도 있겠지만, 이런 것을 싫어하는 이에겐 문법을 공부하는 자체가 고역일 수가 있다. 문법을 싫어하거나 배우고 싶지 않다면, 꼭 문법을 깊게 공부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왜냐하면 한문을 많이 접하여 읽고 공부하면서, 정확히 문법적인 용어로 설명할 수는 없어도, 실질적인 차원의 문법을 자연스레 터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문을 배움에 있어 문법 공부는 개인의 취향대로 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문법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문법 공부를 열심히 공부하면 된다. 반면에 문법을 한문 공부에 참고 사항 정도로만 여기고 싶다면 문법을 자세히 공부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한문 빨리 배우는 방법
한자를 금방 익힐 수 있는 방법이 없는데, 한문을 금방 터득할 요령은 더욱 더 없다. 그래도 한문을 빨리 배울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자면, 문장 위주로 공부하라는 것이다.
문장 위주로 공부한다는 것은 즉 논어나 맹자 같은 경전을 공부함을 의미한다. 우선 한자를 많이 알고, 또 한문 문법에 대하여 자세히 알고 난 뒤에 문장 공부를 해야 되지 않나 생각하는 이도 많다. 기본적으로 한자를 많이 알고 문법을 자세히 알면, 문장 공부함에 매우 유리한 조건이 됨은 사실이나, 한자를 많이 알고 문법을 자세히 알기가 쉽지 않은 일이고, 또 이러는 데에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그러니 아쉬운 대로 기초적인 한자만 알고 기본적인 문법 지식만을 알고 있어도, 문장 공부함에 크게 지장이 없으니, 과감히 문장 학습에 착수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한문 문장을 공부하면서, 한자나 문법을 병용하여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단어(한자)를 따로 떼어 그것만을 외울 때보다 단어를 문장을 통해 익히는 것이 더 효율적인 학습 방법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문장 공부를 안 하고 문법서를 읽을 때엔 이해되지 않던 것이, 문장 공부를 많이 하고 문법서를 공부하면 확실히 그 전보다 이해가 잘 됨을 실감할 것이다. 문제는 초학자가 처음부터 문장 단위로 공부하기가 쉽지는 않아, 문장을 한 번에 읽어내기도 벅찰 것이다. 그러나 한문을 빨리 정복하려면, 그 전제 조건이 한문 구절에 익숙해지는 것이니, 이는 어쩔 수 없는 듯하다. 문장(구절) 단위로 해석하는 습관을 못 들이고, 단어 단위로 해석하는 단계를 못 벗어나서는, 한문 실력이 잘 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 문제가 초학자가 문장 공부하기에 이해하기 쉽고 흥미로운 텍스트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기초 교재로 소학, 사자소학, 명심보감 등이 흔히 쓰이는 것 같은데, 개인적으론 여씨춘추, 열녀전, 설원, 한시외전, 전국책, 열자, 십팔사략, 사기세가, 삼국사기 열전 등도 기본 교재로 삼아 읽어 볼만하다고 생각한다.
이것들은 대개 글의 단락이 짧고, 글의 내용이 주로 구체적인 서사 위주로 이루어져, 초보가 공부하기에 지루하지 않고 흥미를 가질 것 같다. 물론 앞에 열거한 책들 속에도 해석하기가 어렵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적잖이 있는데, 이런 부분은 과감히 그냥 건너뛰는 것이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초학자에겐 문장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보다는 여러 문형이나 한문 표현 수법에 익숙해지는 것이 주된 목적이기 때문이다.
한문을 아는 단계
한문을 아는 것에도 단계가 있다. 조선 시대 같으면, 한문을 읽고, 쓰기를 할 줄 알아야 한문을 안다고 간주했을 터인데, 요새는 한문을 독해할 줄만 알아도 한문을 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요즘은 한문이 초, 중, 고교 학습 과정에서 별로 비중을 차지하는 과목이 아니기에, 일반인이 학교에서 한문을 배운 것만으로 한문을 독해하는 능력을 갖추기가 상당히 어렵다. 그래서 보통 사람이 별도로 교육을 받든지 독학을 하든지, 한문을
공부해서 한문을 터득하기까지 상당히 어렵고 오랜 시일이 걸린다. 그래서 한문을 우선 반 정도만 아는 것을 목표로 공부하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한문을 반 안다는 것은 한문만 보면 어느 정도 감은 잡고 있으나 분명하게 해석을 못 하지만, 그 해석이 되어 있는 것을 보고, 다시 한문을 봤을 때, 한문의 의미 파악이 쉽게 되는 것을 말한다.
간단히 달리 말해, 한문을 반 안다는 것은, 해석을 보고 그 해석이 옳게 된 것인가 잘못 된 것인가 구별할 줄 아는 능력을 말한다. 이렇게 한문을 반 아는 것이 목표라면 해석을 많이 봐 가면서 공부해도 되겠지만, 그러나 완전히 한문을 독해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해석이 없이 한문 원문만 있는 백문(白文) 위주로 공부함이 좋을 듯하다.
단어(單語)상의 특징
한문에서 단어 차원(형태론)의 특징은 많지만, 가장 중요한 두 가지로 추릴 수 있다.
하나는 한문이 우리말과 달리 용언(동사, 형용사)이 활용을 하지 않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한 단어가 여러
가지 품사로 쓰인다는 것이다. 이에 관하여 알아보자.
용언이 활용이 없음
먼저 활용(活用)이란 ‘용언(동사나 형용사)의 어간이나 서술격 조사에 변하는 말이 붙어 문장의 성격을 바꿈’이라고 사전에 나와 있는데, 쉽게 말해 ‘먹다’라는 단어가 ‘먹어라, 먹는, 먹고, 먹음’ 등으로 변하는데, 이는 ‘먹-’이라는 어간에 어미(밑줄)가 붙어 ‘먹다’라는 단어의 형태가 변한 것인데, 이것을 ‘활용’으로 알면 된다. 그런데 한문에는 우리말처럼 이러한 용언의 형태가 변하는 활용이 없다.
이러한 것은 한문은 용언이 활용하지 않는 이른바 고립어(孤立語)이기 때문이다.
한문에서 용언에 활용이 없는 것은 일장일단이 있다. 한문에서 용언이 활용하지 않으니, 가령 영어 같으면 동사 활용에 해당하는 분사, 동명사 등을 공부해야 하지만, 이런 학습할 거리가 없어서 수고를 더는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대신에 그 용언의 의미를 겉으로 눈에 드러나는 어미나 접사의 형태가 아닌,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문맥에 주로 의존하여 해석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아래 예문을 보라.
吾昨日食冷麵. (나는 어제 냉면을 먹었다.)
梨與沙果, 孰食. 速擇. (배하고 사과하고 무엇을 먹을래. 빨리 골라라.)
欲壽, 則食魚類. (오래 살려면, 생선을 먹어라.)
위의 예문에서 보듯이 동사(용언)로 쓰인 食자는 형태 변화가 없는데, 상황에 따라 ‘먹었다’, ‘먹을래’, ‘먹어라’ 등으로 동사(어미)의 형태가 변하여 해석이 된다. 이것은 食자가 겉으론 형태의 변화가 없지만, 기본 형태 ‘먹다’외에도, 위에서 보듯이 다른 형태의 의미로 쓰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食자의 의미 파악을 食자 자체가 아니고, 食자 주변의 문맥을 가지고 하게 되는데, 이게 쉽지는 않다.
위에서 食자는 아직 다른 품사로 전환되어 쓰이지는 않았다. 한문에선 용언이 다른 품사로 전환되어 쓰이는 품사 전성(轉成)도 용언의 형태 변화 없이 이루어진다.
(품사 전성은 형태는 다른 품사로 쓰이지만, 기능은 본래의 품사 기능을 하는 것으로 기능까지 바뀐 파생어와는 다르다.)
우리말은 용언이 명사나 부사로 전성할 때는 물론이고, 형용사가 수식하는 용도(관형어)로 쓰일 때에도 전성해 쓰일 때도 그에 따른 어미가 단어(어간)에 붙어서 단어의 모양이 변한다.
한문에서 용언이 품사 전성이 되는지 의아스럽기도 하지만, 우리말 해석을 기준으로 보면 한문에서 품사 전성이 되는 것으로 보이니, 잠시 전성이 되는 것으로 가정하자.
역시 한문에서는 용언이 활용이 없으니까, 품사 전성이 일어나는 때에도 용언의 형태에는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해석을 할 때에는 모양은 동사(용언) 형태이지만, 명사 등으로 품사를 바꿔서 해석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예를 들자.
a) 百聞不如一見. (백번 들음이 한번 봄보다 못하다.)
a-1) 所百聞不如所一見. (백번 들은 것이 한번 본 것보다 못하다.)
a-2) 所柔勝所强.(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
b) 有聞人, 無見人.(들은 사람은 있어도 본 사람은 없다.)
b-1) 有聞龍之人, 無見龍之人.(용을 들은 사람은 있어도 용을 본 사람은 없다.)
우리말은 용언이 활용하여, ‘먹다’가 ‘먹음’처럼, 어간에 ‘-음(ㅁ), -기, -한 것’이 붙어 명사형이 되고,
‘먹는’처럼 ‘-는’이 붙어 관형사형이 된다.
그런데 한문에서 동사가 활용이 없으므로 문맥에 따라 동사를 다른 품사로 전환하여 적절하게 해석을 해야 한다.
위의 a 문장에서 본래 동사인 聞, 見자가 형태는 변화가 없지만, 명사형으로 전환되어 해석이 됨을 볼 수 있다.
a-1처럼 어조사 所자가 용언 앞에 와서 용언이 명사적으로 전성되어 쓰임을 명료하게 나타내면, 聞 자의 해석이 쉬워진다. 여기서 所자는 기능이나 성질이 우리말의 의존명사 ‘바(것)’와 비슷해 보인다.
a-2처럼 所자가 형용사를 명사로 바꾸는 데에도 간혹 쓰이기도 한다.
위 b 문장에서 聞, 見자는 뒤 단어를 수식하는 관형사로 전성되어 해석이 된다. 그런데 보통 「동사+명사」 구조는 「서술어+목적어」로 해석이 많이 되니, 동사가 관형사로 전성되어 쓰일 경우와 잘 구별해야 한다. b-1처럼 수식하는 단어와 수식을 받는 단어 사이에 之자를 써서 동사가 관형어로 쓰임을 분명하게 나타내는 형태가 많이 쓰인다. 수식하는 단어가 동사로 한 단어일 때는 之자는 잘 쓰이지 않는 듯하다.
한 단어가 여러 품사로 쓰임
한 단어가 형태의 변화 없이 여러 품사를 겸하는(一單語 多品詞) 것도 우리말과 다른 한문의 특징이다. 그런데 물론 한문에서 어떤 단어가 어떤 품사로 쓰였는지 더러 구분하기 모호한 경우가 있어서, 콕 집어서 무슨 품사로 쓰였다고 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도 있다.
우리말은 대개 하나의 단어가 하나의 품사로 쓰인다.(엄밀히 말하면, 우리말에도 명사나 부사를 겸하는 단어가 더러 있다. 그러나 이는 한문에 비교하면 한 단어가 두 품사로 쓰이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또 국어에서 동사나 형용사 중에 명사에서 파생한 것이 있는데, 이런 동사나 형용사에는 대개 뒤에 접사가 붙어서 명사와는 약간 다른 형태를 띠어, 서로 다른 단어로 간주된다.)
그런데 국어에서 한 단어가 명사로도 쓰이고 동사로도 쓰이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영어를 보면 rain(비[명사], 비가 내리다[동사])、 show(보이다[동사], 쇼[명사])、 water(물[명사], 물을 끼얹다[동사]) 등에서 보듯이, 한 단어가 명사, 동사 등을 겸하여 두 가지 품사 이상으로 쓰임을 알 수 있다.
이와 비슷하게 한문에서도 한 단어(한자)가 두 가지 품사 이상으로 쓰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간단히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사실 아래 열거한 한자 중에는 또 다른 품사로 쓰이는 것도 있는데, 간단히 실은 것이다.
?食 - 먹다(동사), 밥(명사)
?衣 - 옷(명사), 입다(동사)
?雨 - 비(명사), 비가 내리다(동사)
?之 - 가다(동사), 그것(대명사)
?輕 - 가볍다(형용사), 가벼이 여기다(동사)
?遂 - 드디어(부사), 이루다(동사)
?已 - 이미(부사), 그치다(동사), 뿐(어조사)
?若 - 만약(부사), 너(대명사), 같다(형용사)
이렇게 한문에서 단어(한자)가 한 품사에 고정되지 않고, 여러 품사로 쓰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리고 이렇듯 하나의 한자가 두 가지 품사 이상으로 쓰이기 때문에, 간혹 어떤 한자가 어떤 품사로 쓰였는지 구분하기가 까다로워 의미 파악이 어려워질 수 있다.
아래 예문을 보라.
a) 風聲耳於耳耳, -바람소리가 귀에 들릴 뿐이다.
b) 夫夫妻妻, 家不和乎. -남편이 남편답고 아내가 아내다우니, 집이 화목하지 않겠는가.
不王之王王, 豈國盛哉. -왕답지 않은 왕이 왕을 하니, 어찌 나라가 번성하겠는가.
위 예시 a에서 耳자가 ‘귀’, ‘들리다’, ‘뿐’ 으로 각자 다른 의미로 쓰였고, 또한 품사가 각각 달리 쓰였다.
예문 b에서 夫(남편, 남편답다), 妻(아내, 아내답다), 王(왕, 왕답다, 왕을 하다)이 각각 의미는 비슷하나,
품사가 달리 해석되었다. 이렇게 의미는 비슷하나, 품사가 달리 해석되는 경우도 은근히 해석에 헤맬 수 있으니, 유념해야 한다.
王素好酒, 無日不飮焉.-왕이 평소에 술을 좋아하여, 마시지 않는 날이 없었다.
欲登山, 會降雨乃止矣. -등산하려고 했으나, 마침 비가 내려 그만두었다.
위 예시에서 보듯이, 밑줄 친 단어가 부사로 해석이 되는데, 그 의미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이것은 素자는 주의미가 ‘희다’는 형용사로, 會자는 ‘만나다’는 동사로 인식이 박혀, 그 의미가 부사 같은 다른 품사로 풀이되는 경우에는, 이것을 해석하기가 막상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쓰이는 한자는 대개 상황이나 때에 관련된 의미를 갖는 終(끝내), 會(마침), 卒(갑자기) 등 적지 않다.
a) 東行.(동쪽으로 가다)
入城.(성에 들어가다)
b) 男與花(於)女也.(남자가 여자에게 꽃을 주었다.)
腕長(乎)手, 脚長(乎)足.(팔은 손보다 길고, 다리는 발보다 길다)
兒(以)石破窓也.(아이가 돌로 창을 깼다)
명사가 주어, 목적어가 아닌 개사구(개사(어조사)+명사)처럼 해석이 될 경우가 있다.
위 a에서 東, 城은 앞에 어조사 於가 없지만, 개사구 비슷하게 해석이 된다. 이렇게 한자가 외형적으론 명사 같은데, 개사구로 해석이 되는 경우는 예문 a에서 보듯이, 대개 그 한자의 의미가 처소와 상관이 있을 때나 결합하는 동사(한자)의 의미가 처소와 상관을 가질 때이다.
예문 b처럼 괄호를 한 한자가 생략됐다고 볼 수 있거나, 그것을 보충하여 해석이 가능한 상황도 명사가 개사구(국어 기준으로는 부사어) 형태로 풀이가 된다.
先生義不能行之也.(선생이 의리로 그것을 할 수 없었다)
君子陽不好財, 陰好之也.(군자는 겉으로는 재물을 싫어하나, 속으로는 좋아한다)
비고) 先生義不能行之也.(선생이 의리가 그것을 할 수 없었다)
위 예문에서 밑줄 친 한자가 ‘-로’ 조사를 취하고, 부사어로 해석이 되었다. 이렇게 부사로 해석이 되고, 비고처럼 명사로 해석하면 의미가 어색해지는 경우가 존재한다.
어조사(語助辭)
한문에서 실질적인 의미가 없이 다른 한자를 보조하여 우리말의 조사, 어미, 의존 명사 같은 역할을 하는 한자를 어조사(語助辭)라고 한다.
대표적인 어조사로는 於, 也, 而 등이 있다.
어조사에 대하여 처음부터 옥편이나 허사(허자) 사전에 있는 많은 어조사의 의미나 기능을 샅샅이 자세히 알고 있으면 좋겠지만, 그러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러니 우선은 주요한 어조사의 주된 의미나 기능을 대충 안 뒤에, 문장을 통해서 단어(한자)를 익히는 것이 효율적이듯이, 어조사도 문장 공부를 하면서 차츰 배워 가면 된다.
그리고 어조사는 말 그대로 보조하는 것이니, 문장을 해석할 때에 어조사 위주로 해석하기보다는, 어조사가 보조하는 실사(實辭)나 관련된 문맥을 바탕으로 하고, 그리고서 어조사는 보조적으로 참고하여 문장을 해석함이 좋을 것이다.
참고로 아래에서 설명하는 어조사는 於, 自, 以, 與, 由, 所, 者, 之, 爲, 也, 矣, 乎, 哉, 焉, 而, 則 이다.
어조사의 종류
於나, 于처럼 명사 앞에 위치하여 뒤에 오는 명사와 결합하여, 마치 영어의 전치사 비슷한 노릇을 하는 어조사를 개사(介詞)라고 한다.
그리고 영어의 전치사구 비슷하게 개사와 그 뒤에 오는 명사(대명사, 수사, 명사구 포함)와 합하여 개사구(介詞句)를 이룬다. 개사에는 於, 于, 乎, 以, 與, 自, 從, 由, 道 등이 있다.
또 어조사 중에서 국어의 의존명사 ‘것’처럼 대개 동사를 명사로 바꾸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있다.
이런 어조사는 所, 攸, 者 등이다.
그 외 어조사는 대개 문장이나 단어 뒤에 쓰이거나, 문장 중간에 쓰이는 것들이다. 문장, 단어, 구절 뒤에 쓰이는 어조사는 也, 矣, 哉, 乎, 兮, 耳, 焉, 之, 止, 邪, 耶, 與, 歟, 夫 등이다.
문장이나 구절 중간에 쓰이는 어조사로는 而, 則, 乃 등이 있는데, 일부는 어조사로 볼 것인지 애매한 것도 있다. 乎, 與 같은 어조사는 단어 앞에서 개사로 쓰이기도 하고 단어 뒤에 쓰이기도 한다.
또 적지 않은 어조사가 실사(實辭)적인 의미를 갖는 경우도 있다. 이점이 때로 어조사의 해석에 혼란을 주므로, 주의해야 한다. 여기서는 주요 어조사의 허사적으로 쓰이는 주된 의미나 기능을 위주로 간단히 정리했다. 어조사에 관하여 보다 자세한 것은 옥편이나 한한(漢韓)대사전, 허자(虛字)사전 등을 보기 바란다.
? 於 (=于, 乎)
於는 의미나 기능이 대단히 광범위하여, 이것을 몇 개로 정리하기도 힘들다.
그러나 다행히도 於는 대개 우리말로 ‘-에, -에게, -에서’ 등으로 해석된다.
于, 乎는 於와 그 쓰임이 비슷하나, 乎는 단어나 문장 뒤에 쓰이기도 한다.
○ ‘-에, -에서, -로’ (장소. 공간. 방향)
去鄕, 往於京.(시골을 떠나, 서울로 갔다.)
晝耕於野, 夜讀於家.(낮에는 들에서 농사짓고, 밤에는 집에서 책을 본다.)
○ ‘-에게, -에, -한테’ (상대)
孔子問禮於老子矣(공자가 노자에게 예를 물었다.)
王賜米百石於姜將軍也.(왕이 쌀 백석을 강 장군에게 하사했다.)
○ ‘-에, -에게(한테)’ (피동)
日本敗於韓國矣. (일본은 한국에게 패했다.)
將見禽於敵.(장수가 적에게 사로잡혔다.)
○ ‘-에, -를, -에 대하여’ (대상. 목표)
務於本, 不務於末.(근본에 힘쓰고 말단에 힘쓰지 마라)
能於雜技, 不能於理財.(잡기에는 능하나, 이재에는 무능하다)
醫攻於病.(의원은 병을 다스린다)
○ ‘-에게는, -에는’ (기준)
白頭山於我國, 若母也. (백두산은 우리나라에는 어머니와 같다)
良藥苦於口.(좋은 약은 입에는 쓰다)
○ ‘-에서는, -은’ (특징)
王妃薄於色, 厚於德. (왕비는 생김새는 박하나(못하나), 덕은 후하다.)
我國多於山, 少於野.(우리나라는 산은 많으나 들은 적다.)
○ ‘-과(와), -보다, -에’ (비교)
我國之語異於中國.(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다르다)
夏暑於春, 冬寒於秋.(여름은 봄보다 덥고, 겨울은 가을보다 춥다)
地異山之高不及於白頭山.(지리산의 높이는 백두산에 미치지 못한다)
○ ‘-에서, -에’ (발단. 유래. 원인)
佛敎發於印度.(불교는 인도에서 발생했다)
福生於淸儉.(복은 청렴하고 검소함에서 생긴다)
? 自
○ ‘-에서, -부터, -한 이후로’ (시간이나 공간에 쓰임)
自古至今, 綿綿不絶.(예로부터 지금까지 면면히 끊이지 않다)
京釜線發自京, 到於釜山也.(경부선은 서울에서 출발하여 부산에 이른다)
自金氏得橫財, 未嘗勞矣.(김씨는 횡재를 하고부터 일한 적이 없다)
○ ‘-에서, -부터’ (발단. 원인)
禍福自己出也. (화복은 자기에게서 나온다)
禍始自不知足矣.(화는 만족을 모르는 것에서 시작된다.)
○ ‘자기, 스스로, 저절로’
自繩自縛.(자기 줄에 자기를 묶다)
强行不如自發.(강제로 하는 것은 스스로 함보다 못 하다)
? 以
以가 이끄는 개사구는 대개 부사어로 취급하고, 어순의 위치가 일정하지 않고 자유로워, 해석에 모호함을 가져오기도 한다.
○ ‘쓰다(=用), 까닭’
○ ‘로써, -를 가지고, -로써 하다’ (수단. 도구. 재료. 방법)
以卵投石.(달걀로 돌을 친다.)
築城以石.(돌로써 성을 쌓다)
交友以信.(미더움으로 친구를 사귀어라)
聽不以目, 以耳也.(듣는 것은 눈으로 하지 않고 귀 로 한다)
○ ‘-를 데리고(가지고), -와 함께’ (동반. 지참)
父歸家以友也.(아버지가 친구를 데리고 귀가했다)
○ ‘-를, -로써’ (목적. 대상)
兄以黃金授弟也.(형이 황금을 동생에게 주었다)
姜太公以釣爲事矣.(강태공은 낚시로 일을 삼았다)
○ '~ 때문에(-때문이다), -이므로, 까닭이다' (이유. 원인)
勿以小利, 失大利哉.(작은 이익 때문에 큰 이익을 놓치지 마라)
富者爲富, 貧者爲貧, 以八字也.(부자가 부유하고 빈자가 가난한 것은 팔자 때문이다.)
○ ‘-해 가지고서, -해서(-하여)’ (상태. 연결)
殺身而以成仁(몸을 희생하여 인을 이루다)
滿醉以歌舞.(만취해 가지고서 노래하고 춤추다)
○ ‘그것을, 그것으로써, 그래가지고서, 그것 때문에’ (받는 말)
甲授乙酒, 乙以授丙.(갑은 을에게 술을 줬고, 을은 그것을 병에게 줬다)
兄打弟, 父以責兄也.(형이 아우를 때리니, 아버지가 그것을 가지고 형을 꾸짖었다)
夫夢抱豚矣, 以告妻也.(남편이 돼지를 안는 꿈을 꾸고, 그것을 아내에게 고했다.)
○ '-로서' (자격. 지위. 신분)
王待吾以國士.(왕이 나를 국사로서 대접했다)
先生雖非親父, 以父事之.(선생이 친부는 아니지만, 아버지로 그를 섬겼다)
○ ‘~에’ (시점)
以三月甲子日, 市出虎焉.(삼월 갑자일에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
○ (어기사로)
? 與
○ ‘주다, 참여하다’ (실사로 쓰일 때는 이외에도 뜻이 많다.)
○ ‘-과(와), ∼과(와) 더불어’ (개사. 접속사)
與民同樂.(백성과 같이 즐긴다).
國語與日本異矣.(우리말은 일본과 다르다)
富與貴 是人之所欲也.(부와 귀는 이는 사람이 원하는 것이다.)
○ ‘-에 따라’
萬事與時行也.(만사는 때에 따라 행한다)
○ ‘-하냐, -하랴’ (의문. 반어)
父謂男曰, 汝知我心與.(아버지가 아들에게 ‘너는 내 마음을 아느냐’고 말했다.)
猫不勝犬, 況勝虎與.(고양이가 개를 이기지 못하는데, 하물며 호랑이를 이기겠는가.)
○ ‘-하는가 보다, -한 것 같다’ (종결사로 추측, 의심에 쓰임)
? 由
○ ‘말미암다(말미암아), -로써, 기인하다’ (원인. 기인)
由此觀之, 必我國勝矣.(이로써 보건데, 반드시 우리나라가 이긴다)
○ ‘-를 통하여(거쳐)’ (경유)
白頭大幹, 發自白頭, 由太白, 到地異.(백두대간은 백두산에 발하여 태백산을 거쳐 지리산에 이른다.)
○ ‘-부터(-에서)’ (시작. 발원)
○ ‘-와 같다’ (=猶)
人心由蘆, 屢變也. (사람 마음은 갈대 같아서, 잘 변한다)
? 所
○ ‘-하는 바(것)’ (동사나 형용사를 명사로 전환시킴(=攸))
己所不欲, 勿施於人(내가 원하지 않은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
不敢請, 固所願(감히 청하지는 못하나 본래 원하던 바이다.)
○ ‘-하는 대로(것마다)’
所觸揮劍.(닥치는 대로 칼을 휘두르다)
○ ‘-하는’ (동사를 관형사로 전환시킴)
王所好女, 非妃也.(왕이 좋아한 여인은 왕비가 아니다.)
王脫其所履鞋也.(왕이 신고 있던 신을 벗었다)
今者所謂麒麟, 非昔者所謂麟.(지금 말하는 기린은 옛날에 말하던 기린이 아니다)
○ ‘-하게 되다. -함을 당하다’ (피동)
攻者必知所攻者.(공격하는 자는 꼭 공격을 받는 자(상대)에 대해 알아야 한다.)
? 者
○ ‘-하는 사람(자), -하는 것(경우)’
來者不拒, 往者不追.(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쫓아가지 않는다)
魚, 大者至於數丈, 小者不過一寸.(물고기는 큰 것은 수 장에 이르고, 작은 것은 일촌이 되지 않는다.)
○ ‘-하면, -하는 자(것)’ (가정)
積善者, 則受福.(선을 쌓으면, 복을 받는다)
順天者存, 逆天者亡.(하늘을 따르는 자는 살아남고, 하늘을 거스르면 망한다)
○ ‘-하는 것’ (구절을 명사로 전환)
弱人制强獸者, 智也.(약한 사람이 강한 짐승을 제압하는 것은 지력 때문이다)
夫不勞而欲得者, 怠者望之也.(일하지 않고 얻으려고 하는 것은 게으른 자가 바라는 것이다.)
○ ‘-라는 것(사람)’
農者 天下之大本也.(농사라는 것은 천하의 큰 근본이다.)
夫富貴者 人之所欲也.(부귀란 사람이 원하는 것이다)
初伏者, 謂夏至以後三庚日.(초복이란 하지 이후에 세 번째 경일을 말한다.)
朝鮮有洪吉童者矣. (조선에 홍길동이란 사람이 있었다)
張吉山者, 朝鮮之義賊也.(장길산이란 자는 조선 시대 의적이다.)
○ ‘-에’ (시간 뒤에 붙여 쓰임)
昔者(옛날에) 古者(옛날에) 乃者(접때)
今者之人(지금 사람)
○ ‘-한가’ (문미에 의문을 나타냄에 쓰임)
○ (어세를 강하게 함에 쓰임)
? 之
○ ‘가다’ (동사)
孔子自魯之齊也.(공자가 노나라에서 제나라로 갔다.)
○ ‘그(그 사람), 그것, 그런 것, 그일, 이(이것)’
身體髮膚, 受之父母.(몸과 수족, 터럭과 살갗은 (그것을) 부모에게 받았다)
敬人者, 人恒敬之.(남을 공경하는 사람은 남이 항상 그를 공경한다)
○ ‘(막연한) 어떤 것’
(※형식적인 목적어로 쓰일 때의 영어의 it의 용법과 비슷해 보이며, 딱히 해석을 하지 않아도 된다.)
知之不如行之. (아는 것은 행함만 못하다.)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어떤 것을)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보다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보다 못하다.)
○ ‘-을(를), -에게’ (※之자가 이렇게 쓰일 때 어순이 도치됨.)
有言曰“神出鬼沒.” 汝之謂也. (신출귀몰이라고 하더니, 바로 너를 두고 말한 거구나.)
○ ‘그(=其)’
爲人後者 爲之子也.(남의 후사가 된 자는 그 사람 아들이 된다.)
○ ‘-의, ~ 중에, -하는, -라고 하는’ (수식. 관형격)
誰知烏之雌雄.(누가 (겉만 보고) 까마귀의 암수를 알아보겠는가.)
禹之父曰?, ?之父曰帝?頊.(우임금의 아버지는 곤이고, 곤의 아버지는 임금 전욱이다.)
父無喪子之憂 兄無哭弟之哀.(아비는 자식을 여의는 걱정이 없고, ~)
霜雪降 然後知松柏之茂也. (서리, 눈이 내린 연후에 소나무, 잣나무의 무성함을 안다.)
選兵之善射者. (병사 중에서 활을 잘 쏘는 자를 뽑다.)
崔氏雖得富者之名, 實不然也.(최씨가 부자라는 말을 들어도, 실제로 그렇지 않다.)
○ ‘-이(가)’ (주격 조사 비슷하게 쓰임)
富與貴, 是人之所欲也.(부귀는 이는 사람이 원하는 것이다)
寡人之於國也, 盡心焉耳矣.(과인이 나라에 마음을 다했다.)
○ ‘-에’ (시간을 나타내는 표현 뒤에 쓰인다)
古之(옛날에)
○ 기타: ‘-에’(=諸), 연결 어조사, 종결 어조사
? 爲
○ ‘하다, 되다, 위하다, -라고 하다’
○ ‘~ 때문이다, 위해서이다’ (이유. 목적)
記之, 爲不忘之也.(기록하는 것은 잊지 않게 위해서이다)
○ ‘-하게 되다, -당하다’ (피동)
高麗爲朝鮮所滅也.(고려는 조선에 멸망당했다.)
○ ‘그를 위해서, 그 때문에’ (=爲之)
子之履弊, 父爲買履也.(아들의 신이 해어지니, 아버지가 그를 위해서 신을 사 주었다)
○ ‘만약’ (가정)
○ ‘-이다’ (명사 앞에 쓰임)
○ ‘-하다’ (형용사 앞에 쓰임)
○ ‘-하냐, -하구나’ (문장 뒤에 의문, 감탄으로 쓰임)
? 也
也자는 단어나 구절, 문장 뒤에 쓰이는 대표적인 어조사이다. 也는 쓰임이 매우 넓어서, 평서문, 감탄문, 반어문, 의문문, 명령문 등에 두루 두루 쓰인다. 이것은 마치 우리말의 종결어미 ‘-어(-아)’가 문맥에 따라 평서문, 의문, 감탄 등에 두루 쓰임과 흡사하다.
○ ‘-이다, -하다, -한 것이다’ (평서형)
周公, 文王之子也.(주공은 문왕의 아들이다)
虎與獅鬪, 則不知孰勝也.(호랑이가 사자와 싸우면 무엇이 이길지 알 수 없다)
邦無道, 富且貴焉, 恥也.(나라에 도가 없는데, 부유하고 귀함은 부끄러운 것이다.)
○ ‘-하구나, -이여’ (감탄)
天也. 靑哉.(하늘이여. 푸르구나.)
○ ‘때문이다, -한 것이다’ (이유)
强者敗於弱者, 輕之也.(강자가 약자에게 패하는 것은 얕봤기 때문이다.)
○ ‘-한가, -하랴’ (의문. 반어)
日本富强於我國, 何也.(일본이 우리나라보다 부강한 것은 왜인가)
雖飢, 何以盜也.(아무리 배고프더라도 어찌 도둑질하겠는가)
○ ‘-함에(-할 때), -함이, -하고, -하여, -한데, -하면, -하니’ (구말이나 문중에서)
君子食也 無求飽.(군자는 먹음에 배부름을 구하지 않는다)
朴氏爲人也 優柔不斷.(박씨는 사람됨이 우유부단하다)
親愛子也, 厚于子思親也.(부모가 자식을 아낌은 자식이 부모를 생각함보다 더하다)
○ ‘-는(-이, -란)
金氏有二子, 一也善歌, 二也善畵.(김씨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첫째는 노래를 잘 하고, 둘째는 그림을 잘 그렸다.)
義也者 與財不可易焉.(의란 것은 재물과 바꿀 수 없다.)
○ ‘또, 또한’
○ (부사 뒤에 붙이어 쓰인다)
必也(반드시)
? 矣
矣가 문장 끝에 쓰이는 경우에 也와 대개 그 쓰임이 비슷한 것 같다.
둘의 차이는 矣자는 也에 비해 조금 더 단호한 어감이 있어 단정적, 주관적, 의지적인 것 같다.
○ ‘-하다(-이다), -하구나’ (평서문. 단언. 감탄)
朝聞道, 夕死可矣.(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괜찮다)
靑矣. 天乎.(푸르구나. 하늘이여)
好仁而害人者, 鮮矣.(인을 좋아하고 남을 해치는 자는 드물다.)
不恐其死, 可謂勇矣.(죽음을 무서워하지 않으니, 용감하다 할만하다.)
○ ‘뿐이다, -따름이다’(=耳, 而已矣) (한정. 단정)
○ ‘-하겠다. -할 것이다’ (추측. 의지)
勤勞而節用, 則致富矣.(부지런히 일하고 절약하여 쓰면, 부를 이룰 것이다.)
日西出, 人皆驚矣. (해가 서쪽에서 뜨면, 사람들이 모두 놀랄 것이다)
甲謂乙曰 “貸錢, 吾必償之矣.” (갑이 을에게 ‘돈을 빌려주면, 내가 반드시 갚겠다.’라고 했다)
○ ‘-하냐, -하랴’ (의문. 반어)
○ ‘-하니, -하고, -하지만(-하나), -한데’ (문장 중간에)
王娶七年矣, 未得子也.(왕이 장가든 지 칠년이 됐는데, 아직 아들이 없었다.)
旱五月矣, 洑幾竭焉.(가뭄이 다섯 달 가니, 봇물이 거의 말랐다)
? 乎
○ ‘-에, -에서’ (개사로 쓰일 때는 於자와 쓰임이 비슷하다.)
○ ‘-하냐, -하랴’(의문. 반어)
甲問於乙曰 “汝嘗讀淮南子乎.”(갑이 을에게 ‘너는 회남자를 읽은 적이 있냐.’라고 물었다)
人無禮, 則與禽獸有異乎.(사람이 예가 없으면, 금수와 다름이 있으리오)
○ ‘-하구나, -하다’ (감탄)
美乎. 彼女.(예쁘구나. 저 여자.)
○ ‘-하게’ (대개 형용사나 부사어 뒤에 접사처럼 쓰임)
食此藥, 則庶乎愈矣.(이 약을 먹으면, 거의 나을 것이다)
霹折木. 若是乎霹可强也.(벼락이 나무를 부러뜨렸다. 이렇게 벼락이 세구나.)
○ ‘-하면(=也, 焉)’ (가정)
今有人睹金塊乎, 則拾之矣.(지금 어떤 사람이 금덩이를 보면, 주을 것이다.)
? 哉
哉자 단독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다른 어조사와 어우러져 ‘乎哉, 也哉, 矣哉’ 등으로 쓰이기도 한다.
○ ‘-하구나, -하도다’ (감탄. 영탄 )
嗚呼. 痛哉.(아. 통탄스럽구나.)
高哉. 智異山乎.(높구나. 지리산이여.)
○ ‘-하리오. -하랴’ (반어)
雀安知鳳志哉.(참새가 어찌 봉황의 뜻을 알리오).
牛豈追馬哉.(소가 어찌 말을 (속도가) 따라가겠는가.)
○ ‘-한가, -하냐’ (의문)
○ ‘-하라’ (명령)
卽速來哉.(즉시 빨리 오거라)
? 焉
○ ‘어찌’ (대개 반어에 쓰이는 듯함)
焉敢生心.(어찌 감히 그런 마음이 생기리오)
割鷄, 焉用牛刀.(닭 잡는데, 어찌 소 잡는 같을 쓰리오)
○ ‘그것(이것), 그에, 그보다’ (대명사)
過而能改, 善莫大焉.(허물이 있되 능히 고친다면 선이 이보다 큼이 없다)
年有二十四節氣, 端午不與焉.(한 해에 24 절기가 있는데, 단오는 그것에 들어가지 않는다)
○ (문미(文尾)에 평서문. 의문. 반어 등에 쓰임)
父與母, 奚好焉.(아빠와 엄마 중에 누구를 더 좋아하냐.)
○ ‘-하니, -한데’ (구말이나 문중에 쓰임)
光州有名山焉, 卽無等山.(광주에 명산이 있으니, 바로 무등산이다)
千里馬不致千里, 是無他焉, 無能御之者也.(천리마가 천리를 가지 못 하는 것은 이는 다른 것은 없고, 그것을 부릴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 ‘-하게, -하다’ (의태어에 접사처럼 붙여 쓰인다)
孔子勃焉責於子路也.(공자가 발끈하며 자로를 꾸짖었다)
○ (시간 뒤에 붙이어 쓰인다)
? 而
○ ‘-하고, -하면서, -하고서, -해서, -하자마자, -하다가’ (순접)
鳥飛天而魚泳水.(새는 하늘을 날고, 물고기는 물에서 헤엄친다.)
開門而入室. (문을 열고서 방에 들어가다)
無翼而人不飛也.(날개가 없어서 사람은 날지 못한다)
無生而能言者矣. (태어나자 말할 수 있는 자는 없다)
飮燒酒而至於三甁也.(소주를 마시다가 세병 째에 이르렀다)
○ '-하나, -하되, -한데, -하지만, -해도' (역접)
樹欲靜而風不止(나무는 고요하려고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는다)
人不知己而不?.(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다)
○ ‘-하면, -해야(-한 후에), -하여, -하니’ (가정)
飢而欲食, 寒而欲煖.(배고프면 먹고 싶고 추우면 따뜻해지고 싶다.)
樹成蔭而衆鳥息焉. (나무가 그늘을 이뤄야 뭇 새가 거기에 쉰다.)
○ ‘-에’ (시간을 의미하는 한자 뒤에)
朝而出 暮而歸(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오다)
十五而志于學, 三十而志于財.(열다섯에 배움에 뜻을 두고, 삼심에 돈에 뜻을 두었다.)
始而(비로소), 久而(오랫동안), 今而(이제), 已而(이윽고)
○ ‘-히, -하게’ (형용사나 부사 뒤에 붙어 쓰인다)
幸而李氏免禍矣. (다행히 이씨는 화를 면했다.)
俄而轟轟降雨. (갑자기 쿵쿵 천둥이 치고 비가 내렸다.)
○ ‘-이 되어, -이’
人而無禮,胡不?死.(사람이 되어 예가 없는데, 어찌 일찍 죽지 않는가)
○ ‘그것으로써’ (=以)
? 則
○ ‘-하면 즉, -하는 때(경우에)’ (가정. 조건)
春來, 則開花.(봄이 오면, 꽃이 핀다.)
人壽, 則過百歲.(사람이 오래 사는 경우엔 백세를 넘긴다)
若知彼知己, 則百戰不殆.(만약 상대를 알고 나를 안다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을 것이다.)
○ ‘-하려 하면(=欲~則)’ (의도. 계획)
死則生, 生則死.(죽으려고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
○ ‘-하디(-하고)’ (강조)
天高則高, 地廣則廣.(하늘은 높디 높고, 땅은 넓디 넓다)
○ ‘즉, 곧(卽), -은’ (동등. 부연)
沙果則大邱, 梨則羅州.(사과는 곧 대구이고, 배는 나주이다.)
詩則李白, 文則韓愈. (시는 이백이고 글(산문)은 한유이다.)
得橫財, 則被橫災也.(횡재(橫財)를 얻는 것은 곧 횡재(橫災)를 입는 것이다)
我國則大韓民國間於中日也.(우리나라 즉 대한민국은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다.)
人, 力則不及於牛, 走則不及於犬, 猛則不及於虎.(사람은 힘은 소에 못 미치고, 달리기는 개에 못 미치고, 용맹은 호랑이보다 못하다.)
○ ‘-한지는, -한가는’ (불확실)
泰山高, 則吾不知.(태산이 높은지는 나는 모르겠다)
誰作春香傳, 則未詳.(누가 춘향전을 지었는지는 자세하지 않다)
○ ‘-하니 (즉), -했는데, -하다가’ (결과)
昨量所養犬, 則過百斤也.(어제 기르던 개의 무게를 재니, 백 근이 넘었다)
人掘地而索金, 則金不見也.(사람들이 땅을 파서 금을 찾아보니, 금은 보이지 않았다.)
기타 어조사
앞에서 다루지 않은 어조사, 허사(虛辭)나 이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한자들에 대하여 간단히 의미만 싣는다. 허사는 대개 실질적인 의미가 있는 실사(명사, 동사, 형용사)를 제외한 한자를 의미한다.
주의할 점은 많은 한자가 허사와 실사(實辭)를 겸하고 있다는 것이다.
감탄사,차사(嗟詞)
噫(아. 아아. 오), ?, ?, 烏(아아), 嗚(오), 嗟(아), 惡(아), 於(아),
呼, ?, 嗚呼, ?, 于, ?, ?, 叱
감탄에 쓰이는 어조사
哉(-하구나. -하네), 乎, 矣, 也, 歟, 夫, 邪, 也哉, 也夫, 矣夫, 矣乎, 兮, 與, 來
의태어,의성어 뒤에 붙는 한자
然(-하다. -하게), 焉, 爾, 如, 若, 爲, 乎
발어사,어기사
夫, 伊, 蓋, 唯(=惟. 維), 諸, 案, 於, 思, 載, 式, 抑, ?,
其, 也, 焉, 矣, 則, 以
‘대저,보통’의 의미를 갖는 한자
凡(무릇), 夫(무릇), 蓋(대개), 大抵, 且
한정(限定)
已(-뿐. -할 뿐(나름)이다), 耳, 而, 爾, 而已, 而已矣, 也已矣
‘-이다’ 의미로 해석되는 한자
也(-이다), 是, 是個, 乃
단어 앞에 쓰이는 어조사(개사)
於(-에. -에서. -로), 自(-에서), 于?乎(=於), 從(-에서), 道(-에서), 由(-에서. -에를 거쳐), 繇
부정(否定)에 쓰이는 한자
不(아니. 못. -하지 않다. 없다. 아니다), 弗(=不), 否(아니다. -하지 않은지), 不是(아니다), 負(-하지 않다), 未(아니다. 아직 -하지 않다), 末, 非(아니다), 微(=非), 匪(=非), 無(없다. -하지 마라), 亡(=無), 毋(=無),
靡(없다), 莫(없다. 아무도 ~ 없다. 마라)
받는 말(代詞)
此(이(이것. 이사람. 이일). 그), 之(이. 그(그것. 그사람. 그일)), 是(이. 그), 寔, 其(그. 그것), 諸(그것(=之). 그것에(=之乎. 之於)), 厥(그. 그것), 焉(이. 그), 斯(이. 그), 爾(이. 그(=其). 그렇게), 伊(저. 그), 彼(저(저것. 저사람). 그), 以(그것으로써. 그래 갖고), 夫(그. 이)
인칭대명사(1, 2인칭)
我(나. 우리), 吾(나), 余(나), 予, 僕(저), 朕(나), 不穀, 汝(너), 女, 子(너. 당신), 爾(너), 而(너), 若(너), 吾子(그대), 乃(너), 之(너)
관형사 ‘그’의 의미를 갖는 한자
其(그), 之, 爾, 厥
수식(修飾)에 쓰이는 한자
之(-의. -하는), 所((-이) -하는), 的(-의), 之~所
문장(구절) 사이를 연결하거나 전환하는 한자
乃(이에. 이리하여), 爰(이에), 斯(이에), 於是(=于是. 於是乎), 曾(이에), 因(그로 인하여. 그리하여), 仍,
故(그리하여)
의문(疑問). 반어(反語)
何(어찌(왜. 어떻게). 어찌하다. 어떠하다. 무엇. 무슨. 어느. 누구. 어디. 얼마),
奈(어찌), 如(어찌), 豈(어찌), 胡, 曷, 害, 惡, 庸, 寧, 獨, 那, 遽, ?, 巨, 渠,
誰(누구), 孰(누구. 어느. 무엇), 幾(얼마(=幾何. 幾許)),
何以(어찌. 무엇으로), 奚以,
何爲(어찌), 曷爲, 奚爲, 胡爲,
甚?(무엇. 무슨), 如何(어찌. 어찌하다), 何如, 若何, 若之何, 奈何(柰何), 奚如, 何謂(奚謂),
孰與(어느 쪽인가. 어느 쪽이 더 -한가), 何故(무슨 까닭), 何居
주로 반어에 쓰이는 한자나 어구
?(어찌 -하지 않으리(=何不~)), 豈(어찌), 之有(-함이 있으랴),
豈徒(어찌 -할 뿐인가(=豈獨. 何但)), 何有, 況~乎
의문,반어에 쓰이는 어조사
乎(-하냐. -하리오), 哉, 也, 邪, 與(-하냐. -한지), 歟, 耶, 矣, 乎哉
가정(假定),조건(條件)
若(만약 -하면)), 如(=若), 假(가령), 使(가사), 設(설령), 爲(가령), 假令(가령), 假使, 如使, 藉,
今(지금 만약), 苟(진실로 만약), 審, 信, 則(-하면 곧), 卽(=則), 便(곧. 문득), 輒(문득),
必(-하면 반드시), 者(-하는 자는. -하면), 乃(-하니. -해야), 斯(=則), 此(=斯), 是(=斯)
동등,동격
則(곧. 즉), 卽(=則), 乃(곧)
가능,능숙
可(가히 -할 수 있다. -하기에 가능하다),
能(능히 -할 수 있다. 능하다),
得(-할 수 있다. -해 내다),
足(족히 -할 수 있다),
克(능히 -하다), 會(능하다), 善(잘), 好
당위(當爲),의무,타당
當(마땅히. 마땅히 -해야 한다),
宜(=當), 可(가히 -해야 한다. -할 만하다),
合(합당히 -해야 한다),
須(모름지기. 마땅히), 如(=當)
예정,의지
欲(-하려고 하다), 將(장차 -하려고 하다), 將欲(=將), 不肯(-하려고 하지 않다),
定(-하기로 정해지다), 當(=將. 定)
원인,이유(理由),목적,연유
故(고로. 때문이다), 之故(-한 까닭), 以(때문에. 때문이다),
所以(까닭), 所以~故, 以~故(때문이다),
爲(위해서. 때문이다), 爲~故, 由(-에서. -에서 말미암다), 也(때문이다), 緣(-에 연유하여),
因(-에 인하여), 於((=于. 乎) -에(에서)), 自(-에서)
추측,짐작,생각
蓋(아마), 恐(-할 것 같다. -할까봐), 必(반드시 -일 것이다), 當, 應, 殆(거의 -듯하다),
庶幾(거의 -할 것이다), 幾(거의. 하마터면), 危(하마터면 -할 뻔하다), 近(-에 가깝다),
疑(-함이 아닌가 싶다), 欲(-할 것 같다), 如(-한 것 같다), 似, 若, 抑, 與,
意(-라고 생각하다), 意者(=意), 以爲(-라고 생각하다(=謂, 爲))
인용(引用)
曰(-라고 가로다(말하다)), 曰~云, 云(-라고 이르다), 作(-라고 나오다(되어 있다))
정도(程度)
可(대략 -쯤), 許(쯤), 可~許, 所(쯤), 略 경험
嘗(일찍이 (-한 적이 있다)), 曾(일찍이)
시간이나 상황 당면(當面)
當(-당하여(맞이하여). -할 때에),
時(-할 때에), 當~時, 於~也(-함에),
至(-에 이르러), 及(-에 이르러), 比(-할 쯤에), 臨, 値
※ 그 외 기타
?常(늘), 當, 恒(항상), 每(매양), 秩(항상), 或(늘)
?素(평소에), 平(평소), 居(평소)
?元(원래), 原, 本(본디), 旣(원래), 固(본디), 初(처음), 始(처음)
?頻(자주), 數(자주), 屢(자주), ?(자주), 繁(자주), ?(자주)
?或(간혹), 希(드물게), 稀
?更(번갈아), 遞(번갈아), 迭(번갈아)
?古(옛), 故(옛), 昔(예전. 아까), 昔者, 往(옛), 往者,
乃(접때(저번에. 아까. 예전에)), 乃者,
?(이전에), ?者,
疇(접때), 疇昔,
向者(접때), 鄕者,
初(이전에), 始, 先是, 前此
?旣(이미), 已(이미), 預(미리)
?今(이제), 方(이제 막. 한창), 方今, ?(한창), 中(도중)
?近者(요즘), 今者, 頃(요사이)
?將(장차. 이제 곧 막), 且(장차), 當(장차), 方將, 幾(거의 -하 려 한다), 垂(거의)
?居無幾何(얼마 있지 않아. 얼마 후에), 無何,
已而(이윽고), 旣而, 旣已,
未久(머지 않아), 未央,
良久(조금 있다가)
?暫(잠시), 須臾(잠깐), 臾, 乍(잠깐), 間(잠시), 有間(잠시 후), 少(잠시), 少選, 頃(잠시), 居頃, 姑(잠시)
?久(오래), 久之(=久而), 長(길게)
?遂(드디어. 마침내. 결국), 終(끝내), 竟(마침내), 果(과연)
?會(때마침. 우연히), 偶(우연히(=遇)), 適(마침), 屬(때마침)
?卒(갑자기), 忽(갑자기(=忽然)), 俄(갑자기), 遽(갑자기), 旋(갑자기), 尋(갑자기), 雜(갑자기), 急, 突(=突然), 頓
?早(일찍), 夙(일찍), 蚤(일찍)
?卽(즉시), 則, 便(곧), 立(바로), 直(곧), 俓(곧), 速(빨리)
?必(반드시(틀림없이)), 須(반드시), 審(틀림없이), 信(틀림없이), 定(반드시)
?苟(진실로), 誠(진실로), 眞(진실로), 固(진실로), 良(진실로), 實(실로), 信(진실로), 正, 果(과연. 실제로)
?敢(감히), 竊(외람되이), 果(과감히), 忍(차마)
?唯(오직. 다만), 惟?維(=唯), 但(다만), 只(단지), 特(단지), 徒(단지. 그냥), 獨(단지), 直(단지), 專(오로지), ?(뿐)
?皆(모두), 擧(모두), 擧皆(모두), 相(서로), 全(모두), 擧(다), 盡(다), 咸(다), 悉(다), 歷(다), 餘(죄다),
勝(다), 都(모두), 通(모두), 備(모두), 摠(모두), 該, 凡, 齊, 僉, 周(두루), 遍(두루)
?熟(자세히), 孰, 具(자세히), 詳(자세히), 察
?至(아주(지극히). 매우), 甚(심히), 極(극히), 泰(심히), 大(크게), 斬(매우), 亦(대단히)
?妄(마구. 멋대로), 任(마음대로), 恣(마음대로), 肆(멋대로), 專, 橫, 縱, 亂
?差(조금), 少(조금), 頗(조금), 秋毫(조금도 (~ 않다)), 毫釐(아주 조금)
?僅(겨우), 覲, ?, ?(겨우), 才
?漸(점점(=漸漸)), 稍稍(차차), 次(차차(=次次))
?益(더욱. -할수록), 愈(더욱), 彌(더욱), 滋(더욱)
?尤(특히. 더욱), 特(특히), 獨(유독), 況(더욱)
?且(또), 又(우), 有(또(-하고)), 復(다시), 再(거듭), 重(다시), 更(다시), 革(다시), 還(또)
?與(-와), 及(및. 와), ?(및), 越
?與(함께. 더불어), 俱(함께), 偕(함께), 兼(함께), 竝(아울러), 幷
?猶(오히려), 尙(오히려), 尙猶, 反(도리어), 倒(거꾸로), 還(도리어), 覆(도리어), 顧(도리어), 却(도리어), ?, 寧(차라리)
?雖(비록 (-하더라도)), .唯, 繞(비록), 縱(비록), 然而(그러하나), 然, 雖然(비록 그렇더라도)
?微(몰래), 密(비밀히), 隱(몰래), 陰(몰래. 속으로), 竊(몰래), 私(몰래), 間(몰래)
?身(몸소), 躬(몸소), 手(손수), 親(친히), 自(스스로)
?僞(거짓으로), 佯(-한 체하다), 故(일부로), 誤(잘못), 謬(잘못)
문장 구조(文章構造)
문장은 주어, 서술어 같은 문장 성분(成分)으로 이루어진다. 문장 성분 중에서도 주어, 서술어, 목적어, 보어 같은 주된 것을 국어에서는 주성분이라고 하고, 관형어, 부사어 같은 다른 것을 수식해 부수적으로 쓰이는 것을 부속성분이라고 한다. 문장 구조는 대개 주성분으로 분류한다. 그런데 문장 구조에 너무 얽매일 필요는 없으니, 문장 구조도 해석을 위한 일종의 참고 도구에 불과할 뿐임을 명심하고 부담 없이 대하면 된다.
우리가 우리말에 대한 문법을 잘 모르고도 우리말을 잘 알고 있듯이, 이런 한문 문법을 잘 아는 것이 한문을 터득하는 데에 절대적이라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여기에서 설하는 문장 구조의 분류는 한문의 구조에 대한 이해에 초점을 둔 것으로 저의 주관적인 견해가 많아서, 이에 대해 이의(異議)가 있을 수 있으니, 이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아래 예시한 것 중에서 주어가 생략된 것이 있으니, 주의하기 바란다.
◆ 주어 + 서술어 (주술)
어떤 문장에서 설명하는 말(서술어)이 나타내는 동작(동사), 상태(형용사) 등의 주체가 되는 단어를 주어(主語)라고 하고, 주어의 동작, 상태, 상황 따위를 설명하는 것을 서술어(敍述語)라고 한다.
한문은 주어가 앞에 오고 술어가 뒤에 오는 【주어+서술어】 구조로, 이것을 줄여 ‘주술’이라고도 한다.
우리말도 ‘주어+서술어’ 형태로 한문과 비슷하여, 한문의 주술 구조는 상대적으로 이해하기가 쉽다. 주술 구조에서 주어가 될 수 있는 단어는 체언(명사, 대명사, 수사)이고, 서술어가 될 수 있는 것은 용언(동사, 형용사)과 체언이다.
1) 春 來.(봄이 오다) 鷄 鳴.(닭이 울다)
1-a) 開 花.(꽃이 피다) 降 雨.(비가 내리다)
비고) 書 生 蟲.(책에 벌레가 생기다)
1-b) 花 開.(꽃이 피다) 雨 降.(비가 내리다)
1-c) 有 人.(사람이 있다) 無 力.(힘이 없다)
위의 예 1은 서술어로 동사가 쓰인 경우이다.
간혹 1-a 같은 서술어+ 주어 형태로 보이는 것이 있다.(이것이 1-b 같이 ‘주어+서술어’ 형태로도 쓰여서, ‘주어+서술어’ 구조의 도치인지, 그냥 ‘서술어+주어’인지, 아니면 ‘서술어+보어’인지 모호하다.) 이런 경우에 서술어로 쓰이는 단어는 주로 출현, 생성, 소멸 등의 의미를 갖는 出, 生, 發, 現, 開, 落, 降, 立 등이 있다.
이런 경우에 주어로 쓰이는 한자는 대개 자연물, 식물, 기후 현상인 경우가 많고, 가령 雨가 ‘비가 오다’, 花가 ‘꽃이 피다’는 의미를 갖듯이 그 자체로 동사의 의미를 갖는 경우도 있다.
1-c에서 보듯이 有, 無는 거의 결합하는 명사 앞에 온다. 여기서 有, 無가 동사인지 형용사인지 결합하는 명사가 주어인지 보어인지는 구분하기가 아리송하기는 하다.
1) 山 高.(산이 높다) 地 廣.(땅이 넓다)
1-a) 多 福.(복이 많다) 薄 福.(복이 없다)
1-b) 甲乭 多 福.(갑돌이는 복이 많다.)
1-c) 甲乭 多 於福.(갑돌이는 복이 많다.)
2) 堯 長, 舜 短.(요임금은 키가 크고, 순임금은 키가 작다.)
2-a) 象 長 鼻, 短 脚. (코끼리는 코가 길고 다리가 짧다.)
3) 我國 大卒者 多, 好學者 少.(우리나라는 대졸자는 많으나 배움을 좋아하는 자는 적다.)
위 예문 1은 형용사가 서술어로 쓰인 경우이다. 우리말처럼 한문에서도 형용사가 단독으로 술어로 쓰인다. 그런데 1-a처럼 형용사(술어)가 앞에 오고 주어(주어인지 보어인지 애매하나, 우리말 해석으로는 주어처럼 보이므로 임시로 주어로 간주함)가 뒤에 오는 경우가 간혹 있다.
이것은 1-b의 多자처럼 술어로 쓰이는 형용사가 명사(주어)를 두 개 취하는 듯한 경우에 앞의 명사(주어)가 생략되면, 1-a 같은 술어(형용사)+ 주어 형태가 생기는 듯하다. 1-b처럼 주어가 두 개인 듯한 경우엔 형용사(술어) 앞에 오는 명사(甲乭)는 하나의 개체나 집단이고 뒤에 오는 명사(福)는 그것에 포함되는 일부인 듯하나, 개체(집단)나 부분을 확실히 구분하기도 까다롭고 해서, 이것이 확실하지는 않다.
1-c 같이 간혹 뒤의 명사 앞에 개사가 쓰인 형태가 보이기도 하는데, 이것을 보면, 1-b에서 뒤의 명사 앞에 개사가 생략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에 대해 예시 2와 2-a를 더 참고하기 바란다.
예문 3처럼 뒤의 명사가 길 때엔 명사가 연달아 나오고, 맨 뒤에 술어가 놓이기도 한다.
1) 我 韓國人也. (나는 한국인이다)
2) 色 卽是空, 空 卽是色.(색이 즉 공이고, 공이 즉 색이다.)
위 예문은 명사(체언)가 서술어인 경우로, ‘~은 ~이다.’는 식으로 해석된다.
예시 1처럼 주어와 서술어 사이에 아무것도 없이 명사자체만으로 서술어로 쓰일 때는 어조사也가 잘 쓰인다.
또 예2처럼 주어와 서술어 사이에 是자 같은 한자가 쓰이는 경우가 있다.
주어와 서술어 사이에 쓰일 수 있는 한자는 是, 乃, 則, 卽 등이다.
예시 2처럼 주어나 서술어를 서로 바꾸어도 의미가 같은 때에는 則, 卽, 卽是, 乃 등이 쓰이는 것 같다.
주어와 술어를 갖추어 문장을 이루나 독립하여 쓰이지 못하고 다른 문장의 한 성분으로 것을 절(節)이라고, 주어가 절이 되면 주어절이 된다. 한 문장에 문장이 하나면 단문(單文)이고, 절이나 문장이 둘 이상이면 복문(複文)이라고 한다. 위 예문들은 한문 자체로는 어떠한지 확실하지 않으나, 우리말로 해석하면 절(節)이 있는 복문 형태로 주술 구조가 확장된 것처럼 보인다. 아래를 보라.
1) 天高於山 必也.(하늘이 산보다 높은 것은 틀림없다)
1-a) 天必高於山也.(하늘이 틀림없이 산보다 높다)
1-b) 天高於山也 必也.
2) 我國兩分 六十年也.(우리나라가 양분된 지 60년이다.)
2-a) 母呼子 五.(어머니가 아들을 부른 것이 다섯 번이다.)
위의 예 1은 앞 부분(‘天高於山’)은 주어절 형태로, 뒤 부분(‘必’)은 술어로 해석됐다. 이 경우에 1-a의 해석처럼 술어를 부사어로 바꿔, 단문으로 하여 풀이해도 의미는 비슷하다. 그래서 예1 같은 문장의 구조 파악에 편의를 주려고 것인지, 1-b처럼 사이에 也자가 쓰이기도 한다.
예 2처럼 앞 부분은 주어절로, 뒤 부분은 숫자가 들어가는 명사가 술어로 풀이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예 2도 ‘우리나라가 60년 동안 양분됐다.’로 단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2-a처럼 확장된 주술 구조대로 직역하면 어색하여, ‘어머니가 아들을 다섯 번 불렀다.’로 문장 구조를 바꿔 해석하는 것이 더 나아 보인다.
1) 美女, 男所欲也. -미녀는 남자가 바라는 바이다.
1-a) 男所欲, 美女也. -남자가 바라는 것은 미녀이다.
예 1은 주술 구조는 아니나, 주술 구조가 확장된 것처럼 해석이 된다. 예 1에서 ‘美女’는 본래 목적어이지만, 주어처럼 앞에 위치해 있고, ‘男所欲也’는 마치 서술어절처럼 해석된다. 자세한 것은 ‘도치문’편을 보라.
1-a처럼 주어를 절(節)로 길게 바꾸어 표현해도, 예 1과 비슷한 의미가 된다.
◆ (주어) + 서술어 + 보어 (주술보)
주어와 술어만으로 뜻이 불완전한 문장에서 그 불완전함을 보충해 주는 것을 보어(補語)라고 한다.
한문에선 서술어가 앞에 위치하고 보어가 뒤에 오는 【서술어+보어】 형태이지만, 우리말은 이와 반대로 ‘보어+서술어’ 형태이다. 한문의 보어 중에는 국어나 영어의 보어와는 다른 것이 있다. 아래 예문 중에는 주어가 생략된 것도 있으니, 착오 없기 바란다.
1) 芽 爲 花, 花 爲 實. -싹이 꽃이 되고, 꽃이 열매가 된다.
無虎洞中狸 作 虎. -호랑이가 없는 굴에 너구리가 호랑이가 된다.
1-a) 我軍 爲 敵所敗. -아군은 적이 패배시키는 바가 되었다.
2) 我 非 汝. -나는 네가 아니다.
2-a) 我 是 我. -나는 나다.
국어에서 ‘되다, 아니다’만이 보어를 취하는 것으로 본다. 이것을 한문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면, 한문에서도 위 예문처럼 爲, 作, 非 등은 보어를 취할 수 있다. 이 경우에 보어는 ‘-이(가)’로 해석된다.
1-a처럼 爲가 피동적인 의미로 쓰이고 뒤에 所가 오는 爲~所 구문도 주술보 구조인 듯하다. 그러나 爲~所 구문을 너무 문장 구조를 의식하여 직역하면 1-a의 해석처럼 어색하니, ‘아군은 적에 패하였다.’로 한문 문장 구조에 구애받지 않고 의역하는 것이 의미가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런데 예2처럼 非가 보어를 취하는 것으로 본다면 2-a의 是도 그러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문제가 생긴다. 그런데 爲자는 이런 구조보다는 목적어를 취하는 문장 구조에서 훨씬 많이 쓰이고, ‘~이다’라는 의미로도 쓰이기 때문에 문장 구조보다는 爲자의 의미를 잘 살피는 것이 해석에 더 편할 듯하다. 非자도 목적어를 취하는 동사로도 쓰여, 이런 술보 구조만으로 쓰이지 않음을 명심해야 한다.
1) 登 於山.(산에 오르다)
1-a) 登 山. (=)
2) 甲 言 於乙.(갑이 을에게 말했다)
我軍 敗 於敵.(아군이 적에게 패했다.)
위 예시들은 술어는 동사이고, 보어로는 개사구(개사+명사)가 쓰인 경우다. 한문의 개사구는 영어의 전치사구나 국어의 ‘명사+조사’ 형태와 비슷한데, 전치사구는 영어에서 ‘명사+조사’ 결합은 국어에서 보어로 간주하지 않는다. 보어로 쓰이는 개사구를 이끄는 개사는 대개 於(于, 乎) 등이고, 특히 以가 이끄는 개사구는 보어가 되지 못하는 듯하다.
위의 예문 1처럼 동작의 대상이 되는 장소, 공간, 방향 등을 의미하는 개사구가 보어가 쓰인다. 1-a 같이 개사 於가 없이도 쓰이기도 한다. 이것이 개사가 생략된 것 같기도 하지만, ‘山’이 그 자체로 명사보다는 부사적인 의미로 쓰이는 것도 같다.
예문 2처럼 주체의 동작의 상대, 대상, 목표 등이 되는 개사구가 보어로 쓰일 수 있다. 이런 경우에도 개사는 생략될 수 있다.
1) 雪 滿 於山野.(눈이 산야에 가득하다.)
國語 異 于中國語也. (국어는 중국말과 다르다.)
能 於數學, 不能 於英語. (수학에 능하고 영어에는 능하지 않다.)
我國 多 於山, 少 於野.(우리나라는 산으론(산은) 많고 들로는 적다.)
위 예시는 술어가 형용사이고, 보어는 개사구(介詞句)가 쓰였다고 볼 수 있는 것 같다. 이 경우에 쓰이는 개사구는 장소, 공간, 방면, 분야, 비교 대상 등의 의미를 갖는다. 또 이 경우에 개사는 생략되는 수가 있는 듯하다.
◆ (주어) + 서술어 + 목적어
주어가 생략됐다고 가정하면, 한문은 【술어+목적어】 구조로 국어의 ‘목적어+술어’ 형태와 반대이다.
그러나 영어도 술목(술어+목적어) 구조이므로, 우리가 영어를 조금만 알고 있다고 하면, 술목 구조에 익숙해져 있을 것이다. 술목 구조에서 술어가 될 수 있는 품사는 동사이고, 목적어가 될 수 있는 것은 체언이다. 영어처럼 ‘술어+목적어’ 어순인 언어는 대개 ‘동사+부사’나 ‘선행사+관형절’ 같은 뒤에서 꾸며 주는 후치수식(後置修飾)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문에선 이런 후치 수식이 거의 없다는 것이 차이가 있다.
1) 讀 書.(책을 읽다)
閉 門.(문을 닫다)
投 石.(돌을 던지다)
2) 勿務 末, 務 本.(말단에 힘쓰지 말고 근본에 힘써라)
識者 矜 人 以識也.(식자는 남들에게 지식으로 뽐낸다)
위 예문들은 술목 구조들이다. 술목 구조에서는 대개 목적어가 예1처럼 조사 ‘~을(를)’을 취하여 우리말로 해석되는데, 예2처럼 문맥이나 목적어를 취하는 동사에 따라 ‘~에’로 해석되는 경우도 있다.
1) 君子 重 義, 小人 重 利. -군자는 의를 중시하고, 소인은 이익을 중시한다.
1-a) 君子 重 義, 小人 重 利. -군자에겐 의가 중하고, 소인에겐 이익이 중하다.
2) 我國 雪 汚名. -우리나라는 오명을 씻었다.
重자는 기본적으로 ‘무겁다’는 의미로 목적어를 취할 수 없는 듯한데, 예1에서 重은 ‘중시하다(중하게 여기다)’는 의미로 목적어를 취하는 동사처럼 해석이 된다. 이것은 한문이 우리말과 특징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말은 대개 한 단어가 다른 품사로 쓰이려면 어미나 접사가 붙어서 형태가 변하니, 대개 한 단어가 한 품사로 쓰인다. 이에 반해 한문에서는 한 단어가 형태 변화 없이 다른 품사로 바뀌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그런데 예문 1은 1-a처럼도 해석이 가능해서, 重자를 동사가 아닌 형용사로 쓰였다고 볼 수도 있는 것 같다. 예문 2에서도 雪자는 본래 ‘눈’이란 의미로 명사인 것 같은데, 여기에서는 ‘씻다’는 동사로 쓰였다. 이처럼 한자 중에는 언뜻 보기에 도무지 목적어를 취하는 동사(타동사)로는 쓰이지 않는 것 같지만, 목적어를 취하는 한자가 있다.
1) 我 聞 忠臣不事二君. -나는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고 들었다.
子 曰 過猶不及. -공자가 ‘과함은 모자람과 같다.’라고 말했다.
三尺童子 亦知 我國語異乎美國. -삼척동자도 우리말이 미국과 다름을 알고 있다.
위 예문은 영어의 목적어절(目的語節) 비슷하게, 서술어(동사)가 목적어나 목적어 비슷하게 취급할 수 있는 것을 절(문장)을 길게 취하여 해석이 됐다. 이런 형태에서 동사(서술어)로 쓰이는 한자는 視, 聞, 覺, 知, 憂, 欲, 曰 등이고, 해석이 될 때에 목적어의 끝이 꼭 ‘~ㅁ을’로 해석되지 만은 않고, 쓰이는 동사에 따라 ‘-ㄴ다고’, ‘-라고’등으로 해석된다. 이런 경우에 서술어가 어디까지 목적어를 취하는지 구분하기가 까다로울 수 있다.
◆ (주어) + 서술어 + 간접목적어 + 직접목적어 (4형식)
서술어가 목적어를 두개 취하는 이런 구조를 영어에서는 4형식 문형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간단히 4형식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한문의 문장 구조 중에도 영어의 4형식과 비슷한 것이 있다.
1) 兄 授 弟 黃金也. -형이 동생에게 황금을 주었다.
1-a) 兄 授 黃金 於弟也. -형이 황금을 동생에게 주었다.
1-aa) 兄 授 黃金 弟也. -형이 황금을 동생에게 주었다.
1-b) 兄 以黃金 授 弟也. -형이 황금으로써(황금을) 동생에게 주었다.
授처럼 4형식을 이끄는 한자는 수여, 증정, 발송, 기탁, 위임, 임대, 지도, 부과, 탈취 등의 의미를 갖는 與, 予, 賜, 贈, 給, 稟, 遺, 獻, 送, 饋, 受, 讓, 借, 假, 寄, 囑, 敎, 奪, 取, 加 등이다.
4형식 문형은 1-a처럼 직접목적어를 앞으로 빼고 간접목적어는 개사를 취하고 뒤로 위치시키는 형태로 한문의 5형식 비슷하게 바꿔 표현하는 것도 가능하다.
1-a에서 개사(어조사) 於는 아래 예시 1-aa처럼 생략되기도 한다.
또 4형식은 1-b와 같이 직접목적어에 개사 以를 취하는 형태로 변형되기도 한다. 이때 개사구(개사+명사)는 위치가 자유로워, 1-b에서 ‘以黃金’은 꼭 兄과 授 사이에 고정되어 놓이지 않고 다른 자리에 놓일 수 있다. 1-b 같은 문장 형태에 쓰이는 한자(동사)는 授, 遺, 賜, 妻 등이다.
◆ (주어) + 서술어 + 목적어 + 보어(목적보어) (5형식)
이런 구조를 영어에서는 5형식이라고 한다. 여기서는 앞으로 이런 문장 구조를 간단히 5형식으로 약칭하여 쓰겠다. 영어의 5형식은 한문과는 다른 것도 있고 유사한 것도 있다.
1) 孔子 問 禮 於老子. -공자가 예를 노자에게 물었다.
天子 封 姜太公 齊. -천자가 강태공을 제(齊)에 봉했다.
投 石 於窓門. -돌을 창문에 던지다.
1-a) 投 石 窓門. - ( = )
위 예문은 보어가 개사구로 영어에서는 목적보어로 간주하지 않아서 5형식이 아니나, 한문에서는 보어로 본다. 여기에서 보어로 쓰일 수 있는 개사구나 명사(명사처럼 보이나 실질적인 의미는 부사에 가까움)는 위 예문에서 보듯이 주체의 동작이 미치는 상대, 대상, 목표, 방향, 장소 등이 된다.
1-a처럼 보어 자리에 어조사가 없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1) 人 謂 沈淸 孝女. -사람들은 심청을 효녀라고 한다.
1-a) 人 沈淸之 謂 孝女. - ( = )
1-b) 人 以孝女 稱 沈淸. -사람들은 효녀로 심청을 칭한다.
2) 人 謂 興夫 善. -사람들은 흥부를 착하다고 한다.
위 예문은 영어의 5형식과 유사해 보인다.
예 1에서 동사 謂는 ‘-라고 하다’라는 의미는 갖는데, 이런 부류의 의미를 갖는 한자가 5형식을 이끄는 듯하다. 謂자 말고도 爲, 謂~曰, 稱, 次, 題 등이 이렇게 쓰이는 듯하다.
예 1은 1-a처럼 목적어가 서술어 앞에 오는 도치되는 형태로도 많이 쓰인다. 이때 대개 도치되는 목적어 뒤에 之가 붙는다. 1-b처럼 보어에 해당하는 것을 以가 들어가는 개사구 형태로 써도, 의미는 비슷해지는 것 같다. 2-a처럼 보어가 형용사일 때는 목적어를 ‘-이(가)’로 주어로 해석해도 될 듯하다.
金氏請友貸金. -김씨가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기를 청했다.
民願王旋善政. -백성은 왕에게 선정을 베풀기를 원한다.
비고) 民願王旋善政. -백성은 왕이 선정을 베풀기를 원한다.
한문에서 위 예문처럼 請, 願 같은 청원(請願)의 의미가 있는 단어가 쓰일 때도 영어의 5형식과 비슷한 구조를 갖지 않나 생각된다. 그런데 비고처럼 해석이 가능한 경우도 있어, 3형식에 가까운 구조로 볼 수도 있게 된다.
孔子 使 子路 彈琴. -공자는 자로에게 거문고를 타게 했다.
國 命 民 養蠶. -나라에서 백성에게 명하여 누에를 치도록 하였다.
영어에서 let, make 같은 남에게 시켜서 무엇을 하게 하는 의미를 갖는 사역(使役) 동사가 쓰일 때 5형식 문형이 쓰이는데, 위 예시도 위와 비슷해 보인다. 이런 유형을 이끄는 한자는 使, 命, 令, 敎 등이다.
어순(語順)
단어가 모여 문장을 이루는데, 여기에서 단어들이 어떤 순서대로 모이느냐를 어순(語順)이라고 한다. 한문은 국어처럼 조사나 어미 같은 문법적인 요소가 많이 발달하지 않아서, 한문 문장의 의미를 해석함에 국어보다 훨씬 많이 어순에 의존하게 된다. 그래서 한문의 어순을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 문장 구조는 주성분 위주로 따지다보니, 이것만 가지고서 미처 설명할 수 없는 단어들의 결합 형태가 많으니, 여기서는 품사 위주로 이런 것들을 짚어보자. 여기서 말하는 명사는 단순히 명사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 수사(數詞), 대명사, 명사구 등 명사에 상당하는 것을 다 포함한다.
부사어 + 용언(동사, 형용사)
1) 大 勝.(크게 이기다) 强 打.(강하게 때리다)
頻 發.(자주 일어나다)
2) 極 寒.(몹시 춥다)
甚 大.(심하게 크다)
부사어와 용언의 결합 형태는 앞의 부사어는 뒤 단어를 꾸미는 수식어(修飾語)로 뒤의 동사, 형용사는 그 꾸밈을 받는 피수식어로 쓰인다. 우리말과 해석 순서가 같아 앞에서 뒤로 순서대로 해석하면 된다.
예 1은 앞 단어는 부사어이고 뒤에는 동사이고, 예 2는 뒤 단어에 형용사가 위치해 있다.
1) 南 向.(남쪽으로 향하다)
上 行.(위쪽으로 올라가다)
1-a) 向 於南.(남쪽으로 향하다)
2) 初 聞.(처음 듣다)
先 知.(먼저 알다)
위의 예문은 부사가 의미상 공간이나 시간과 상관이 있다. 예 1에서 보듯이 방향의 의미가 있는 한자(東, 西, 南, 北, 上, 下 등)는 동사 앞에 쓰이는 듯하다.
이런 한자가 1-a 같은 형태로 쓰이는 것이 가능할 것도 같지만, 예 1 같은 형태가 많이 쓰이는 듯하다. 그리고 이렇게 뒤에 결합하는 동사가 방향, 공간 등과 관련이 있으면, 앞의 한자는 명사처럼 보이지만, 해석은 부사어로 풀이된다.
예 2처럼 의미가 시점(時點)이나 시간 등에 관련이 있는 한자도 동사 앞에 부사어로 쓰이는 듯하다.
명사 + 명사
1) 天 地(하늘과 땅) 禽 獸(짐승) 江 山(강과 산)
不辨 日 月.(해와 달을 분별하지 못하다)
無 男 女, 欲富嫌貧.(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부를 원하고 가난을 싫어한다.)
* 無. ~에 관계없이. ~를 막론하고.~든 간에
2) 山 鳥 棲山.(산새는 산에 산다)
土 城 易築, 易壞.(흙성은 쉽게 쌓지만, 쉽게 무너진다)
위 예문에서 잘 알아보기 힘든 ‘명사+명사’ 형태에 해당하는 한자(단어)에는 밑줄을 그어 표시했다. 이하로도 이것은 마찬가지이다.
예 1은 명사와 명사가 서로 대등하게 이어져 같은 문장 성분을 가지고, 대개 명사 사이는 조사 ‘-과(와), -나’로 풀이되거나 구두점(,)이 찍힌다. 이런 것 중에는 천지(天地), 금수(禽獸), 강산(江山) 같이 이미 국어에서도 일상적으로 쓰여, 문맥에 따라서는 단어(한자)를 하나하나 해석할 필요 없이, 두 단어를 그 자체로 한 단어로 그냥 해석해도 된다.
예 2는 앞의 명사가 관형사처럼 뒤의 명사를 꾸며주는 형태이다. 그런데 ‘명사+명사’ 결합이 이렇게 앞의 명사가 뒤의 명사를 수식해 주는 경우는 예 1처럼 대등하게 이어진 구조와 구분하기가 때론 모호할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1) 夫 與 婦 膳物. -남편이 아내에게 선물을 줬다.
王 賜 貧民 米一石. -왕이 빈민에게 쌀 한 석을 하사했다.
1-a) 父 授 劍 子矣. -아버지가 검을 아들에게 줬다.
2) 人 謂 世宗 名君. -사람들은 세종을 명군이라 한다.
명사가 두개 연달아 있는 명사+명사 결합은 해석하기가 쉬워 보이지만, 위 예문처럼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예 1은 앞의 명사는 간접 목적어가 되고 뒤의 명사는 직접 목적어가 되는 영어의 4형식 문형과 비슷한 구조이다. 이런 구조에서 대개 앞의 명사는 ‘-에게’로 해석되고, 뒤의 명사는 -을(를)’로 풀이된다. 여기에 쓰일 수 있는 동사는 授, 與, 遺 등이다.
예시 1-a는 ‘명사+명사’ 결합인 것처럼 보이지만, 뒤의 명사(子)는 개사(어조사)가 생략된 것인지 아닌지는 모호하나, 어쨌거나 개사구(‘於子’)로 해석이 된다.
예 2는 앞의 명사는 목적어이고 뒤의 명사는 보어(목적어에 대한 보어)가 되는 영어의 5형식과 비슷한 구조이다. 이런 경우에는 앞의 명사는 ‘-을(를)’로 해석되고, 뒤의 명사는 ‘-라고, -로’로 풀이된다. 이런 구조에 쓰이는 동사는 謂, 爲 등이다.
1) 君子 唯義 是從也. (군자는 오직 의를 따른다)
師之妻 之 謂 師母也.(스승의 아내를 사모님이라고 한다)
2) 財, 人所欲也.(재물은 사람이 원하는 것이다)
3) 君子 老 老, 少 少.(군자는 노인을 노인으로 대하고, 연소자를 연소자로 대한다)
예 1은 ‘명사+ 명사(대명사)’ 결합처럼 보이지만, 뒤의 단어는 앞의 단어에 붙여서 한 단어처럼 해석이 된다. 예 2는 두 명사가 연달아 있지만, 이 문장은 이른바 ‘화제(話題)’가 쓰인 특수 형태의 문장으로, 두 명사는 따로 끊어져 해석이 된다.
예 3에 밑줄 친 부분도 명사+명사 형태처럼 보이나, 앞의 단어는 의외로 동사처럼 해석이 된다.
명사 + 용언(동사, 형용사)
명사와 용언이 결합한 형태는 대개 ‘주어+술어’ 구조로 쓰이기에, 해석이 우리말과 비슷하게 앞에서부터 하면 되니까, 비교적 이해하기에 쉽다.
1) 犬 吠.(개가 짖다) 鳥 鳴.(새가 울다)
烏 飛, 梨 落.(까마귀가 날자 배가 떨어진다)
2) 地 廣.(땅이 넓다)
女 弱, 母 强.(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
3) 天 地 玄 黃.(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
3-a) 天 玄, 地 黃.( = )
위 예문에서 밑줄 친 것 중에 전자는 명사이고, 후자는 용언이다.
예 1은 앞의 단어가 명사이고 뒤의 단어는 동사이고, 예 2는 뒤의 단어가 형용사이다. 위와 같은 경우엔 앞의 명사는 조사 ‘-이(가), -은(는)’ 등을 취하는 주어로 뒤의 용언은 술어로 해석하면 된다. 해석 순서도 우리말과 같아서, 앞에서부터 뒤로 차례대로 해석하면 된다. 그런데 간혹 예문 3처럼 문장이 단문(單文)이 아닌 경우에 주어가 앞에 연달아 놓이고, 뒤에 술어가 연달아 놓이는 특이한 형태가 쓰이기도 한다.
1) 人 (如)雲 集 廣場.(사람들이 광장에 구름처럼 모였다)
1-a) 身 兒 小, 心 山 大.(몸은 아이처럼 작으나 마음은 산처럼 크다)
위의 예시처럼 겉으론 ‘명사+용언’ 결합처럼 보이나, 앞의 단어가 명사(주어)로 해석되지 않는다.
예시 1은 雲자 앞에 如 자가 생략된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如 자가 생략됐다고 치고 해석하면 그 의미가 자연스러워진다. 雲集(운집), 霧散(무산), 瓦解(와해) 같은 굳어진 표현(관용구)은 如 같은 비유를 나타내는 한자가 없이 그 자체로 비유적인 의미를 갖는다.
1-a처럼 관용구가 아니어도 비유를 나타내는 한자가 생략됐다고 볼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이외에도 명사처럼 보이지만, 명사로 해석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용언(동사, 형용사) + 개사구
용언과 개사구(개사+명사)의 결합은 해석 순서가 우리말과 반대이다. 이런 형태는 대개 ‘술어+보어’ 구조로 간주된다. 용언+개사구 결합이 적지 않게 나타나는 형태이므로 이것에 관심을 가져 보자.
1) 我國小 乎日本也.(우리나라는 일본보다 작다)
君子敏 於義, 小人敏 於利.(군자는 의에 예민하고 소인은 이익에 예민하다)
先生出 於鄕, 長 於京.(선생은 시골에서 나서, 서울에서 자랐다)
1-a) 指 小 手, 手 小 臂.(손가락은 손보다 작고, 손은 팔보다 작다)
2) 甲歸 自釜山也.(갑이 부산에서 돌아왔다.)
2-a) 甲自釜山 歸也.( = )
위에서 보듯이 개사구는 부사어로 해석이 되나, 한문에서는 於(于, 乎)가 이끄는 개사구를 보통 보어로 취급한다. 이런 경우에 1-a처럼 개사구의 어조사(개사)가 생략됐다고 볼 수 있는 경우도 흔하므로 해석함에 주의해야 한다. 개사가 於가 아닌 때는, ‘용언+개사구’ 형태가 2-a처럼 ‘개사구+용언’ 형태로 어순이 바뀌기도 한다.
동사 + 동사
동사와 동사가 결합하는 형태는 대개 해석 순서가 우리말과 같으므로, 비교적 해석하기가 쉽다. 그러나 간혹 주의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1) 見 聞.(보고 듣다) 食 飮.(먹고 마시다)
1-a) 捕 食.(잡아 먹다) 打 殺.(때려 죽이다)
2) 蛇 捕 食 蛙.(뱀은 개구리를 잡아 먹는다)
2-a) 蛇 捕 蛙, 食 之.( = )
2-a) 蛇捕而食蛙.( = )
예 1처럼 동사와 동사가 대등하게 연결될 때엔 동사 사이를 ‘-고’ 등의 어미를 취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1-a처럼 동사+동사가 연속적인 행위로 연결되면, 앞의 동사의 어미를 ‘-아(어)’로 풀이한다.
예 2처럼 동사+동사 연결에서 두 동사가 한 명사를 동일하게 목적어를 취할 때에, 목적어가 두 번째 동사 뒤에 위치하는 형태가 쓰이기도 한다.
예문 2-a나 2-b처럼 쓰여도, 예문 2와 의미는 비슷한 것 같다.
1) 父 往 見 子, 而不得也.(아버지가 아들을 만나려고 갔으나, 못 만났다)
兎 來 飮 水, 徒洗面矣.(토끼가 물 마시러 왔다가, 세수만 했다.)
2) 不知 生 死, 徒待耳.(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고, 그저 기다리다)
坐 立 思汝, 雨 雪 慕汝.(앉으나 서나 너를 생각하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너를 그린다.)
위의 예문 1처럼 ‘동사+동사’ 결합이 뒤 단어부터 해석이 되는 경우가 있다. 앞의 동사가 이동의 의미를 갖는 경우에, 이렇게 해석이 되는 듯하다. 이런 경우에 앞에 쓰일 수 있는 한자는 往, 來, 出 등이다.
예문 2처럼 동사+동사 형태에서 동사가 ‘-하는지’, ‘-하나’로 해석이 되는 경우가 있다.
1) 食 死, 飢 生, 何也.(먹으면 죽고 굶으면 사는 것은 무엇인가)
1-a) 食則死, 飢則生, 何也.( = )
2) 食 無聲.(먹을 때는 소리 내지 않는다)
2-a) 於食也, 無聲.( = )
위 예문처럼 동사 사이가 종속적으로 이어지는 경우에는(형용사+동사 결합도 이렇게 쓰일 수 있다.) 앞 동사 어미가 ‘-하면, -해도, -함에, -할 때, -해서는’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이 가능하므로 문맥을 잘 파악하여 의미 파악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만약 1-a나 2-a처럼 표현했다면, 독해하기가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동사 + 명사
동사+명사 형태는 여러 가지 문장 구조를 겸하기에 해석하기가 쉽지 않다. ‘동사+명사’ 결합은 ‘서술어+목적어’, ‘서술어+주어’, ‘서술어+보어’, ‘관형어(수식어)+명사’ 등의 구조로 간주하여 해석할 수 있다.
‘동사+명사’ 결합을 구분하기 힘든 예문에는 ‘동사+명사’ 형태에 해당하는 단어(한자)에 밑줄을 그었다.
1) 讀 書. -책을 읽다.
投 石. -돌을 던지다.
食 言. -말을 먹다.(약속을 안 지키다.)
위의 예1은 동사+명사 결합이 ‘서술어+목적어’ 구조로 취급되어 해석된다. 동사+명사 형태가 술목 구조가 될 때엔, 우리말로 해석은 뒤의 명사(목적어)를 먼저 하고, 앞의 동사(술어)를 나중에 한다.
동사+명사는 이렇게 술목 구조로 쓰이는 경우가 제일 흔한 것 같다.
1) 開 花. -꽃이 피다.
發 福. -복이 피다.
2) 轉 禍, 爲 福. -화가 바뀌어 복이 된다.
위의 예 1에서 ‘동사+명사’ 구조를 ‘서술어+주어’ 구조로 취급하여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이 동사가 서술어로 쓰이면서 특이한 어순을 갖는 한자는 ‘見, 現, 發, 生, 出, 降’ 등으로 주로 ‘존재, 출현, 자연 현상’ 등에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위 예2 문장은 동사+명사 결합이 서술어+보어 구조로 쓰였다. 그런데 서술어+보어 구조에서 서술어로 쓰이는 한자가 거의 爲, 化 등 몇 개뿐이고, 의미는 주로 변화와 관계가 있다. 그런데 동사+명사 조합을 ‘술어+주어’인가 ‘술어+보어’인가를 구분하는 것이 별로 의미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왜냐하면 둘 다 뒤의 명사가 조사 ‘-이(가)’를 취하는 것으로 해석이 되기 때문이다.
1) 金氏投 讀 書 而殺蜚. -김씨가 읽던 책을 던져 바퀴를 잡았다.
1-a) 金氏投 所讀 書 而殺蜚. - =
2) 來 者 不拒, 去 者 不追.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쫓아가지 않는다.
위 예1 문장에서 앞의 동사 讀자가 뒤의 명사 書자를 수식하여 수식어(‘읽던’)와 피수식어(‘책을’) 구조로 해석이 된다. 그리고 1-a에는 讀자가 수식어(관형어)로 쓰임을 명료하게 하기 위해 앞에 어조사 所가 쓰였다. 所 말고도 之자가 이런 기능으로 쓰이는데, 所와 之는 약간 쓰임에 차이가 있다.
예 2처럼 앞의 동사가 수식어로 쓰이는데, 之자 같은 것이 없이 동사가 자체로 수식하는 기능으로 쓰였다.
형용사 + 명사
형용사와 명사가 결합하는 형태도 약간은 까다로운 조합이다. ‘형용사+명사’ 결합은 형용사가 서술어로 쓰이느냐 아니면 뒤의 명사를 꾸미는 수식어로 쓰이느냐 둘 중 하나이다. 아래 예시에서 알아보기 힘든 ‘형용사+명사’ 결합에는 밑줄을 쳤다.
大 國 (큰 나라)
大 國 輕 小 國.(큰 나라는 작은 나라를 얕본다)
馬 有 大 耳也. (말은 큰 귀를 가졌다.)
貪 小 利 而 失 大 利. (작은 이익을 탐하다가 큰 이익을 놓치다.)
위 예문은 형용사+명사 결합이 앞의 형용사가 뒤의 명사를 꾸미는 ‘수식어+피수식어’ 구조이다. 이렇게 쓰이면 해석을 우리말과 같이 앞에서부터 하면 되니까, 이해하기가 쉽다.
1) 大 耳 者 多 福. (귀가 큰 사람은 복이 많다.)
1-a) 財 難 得, 易 失. (재물은 얻기는 어렵고 잃기는 쉽다)
2) 博 學, 多 識.(배움이 넓고 아는 것이 많다)
2-a) 博 學, 多 識.(널리 배우고 많이 배우다)
예 1에서 형용사인 大, 多가 뒤 단어를 수식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해석하면, ‘큰 귀 사람은 많은 복’으로 다소 어색하게 해석된다. 이것을 서술하는 것으로 보면, 뒤의 명사를 먼저 해석하여 ‘귀가 큰 자는 복이 많다’로 바른 해석이 된다. 이렇게 ‘형용사+명사’ 형태에서 형용사가 뒤의 명사보다 나중에 해석되는 경우는 초학자에겐 다소 생소하여, 해석하기가 쉽지는 않다.
예문 1-a에서 명사는 동사에서 전성된 것인데, 이것도 뒤의 명사를 먼저 해석하고 앞의 형용사는 뒤에 풀이한다. 그런데 예문 2는 형용사+명사 형태로 간주하여 해석했고, 예문 2-a는 부사어+동사 형태로 해석했는데, 의미는 비슷하다. 이렇게 형용사(서술어)+명사 형태를 품사 형태를 달리 하여 해석해도, 의미는 비슷해지는 경우가 있다.
도치문(倒置文)
어순이 평소와는 다르게 바뀌어 쓰이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도치(倒置)라고 한다. 한문에서 도치가 어떠한 경우에 일어나는지 자세히 알아보자.
의문사(疑問詞)가 쓰일 때
1) 吾誰怨乎. 萬事由我. -내가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
1-a) 吾怨誰乎, 萬事由我.
2) 汝何所行乎. -너는 어디로 가느냐.
3) 誰與圖此事. -누구와 이 일을 도모할까.
4) 誰知烏之雌雄 -누가 까마귀의 암수를 알겠는가.
何, 誰 같은 의문을 나타내는 의문사나 이를 포함하는 어구가 쓰일 때, 정상적인 어순과는 다르게 도치되어 쓰인다. 의문사가 주어가 아니고 예 1, 2에서 밑줄 친 것처럼 목적어, 보어, 부사어 등으로 쓰일 때는 결합하는 서술어 앞에 위치하여 도치되고, 이런 경우엔 의문사가 반어적으로 쓰여도 상관없이 도치된다. 그런데 주어가 생략되고 의문사가 쓰일 때엔 의문사가 주어로 쓰였는지 아닌지 구분하기 모호한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도치 중에 일부는 선택적으로 쓰여서 정상적인 어순으로 표현해도 된다.
그런데 의문사가 도치될 때는 선택적이기보다는 어느 정도 절대적인 듯하여, 1-a 같이 정상적인 어순으로는 별로 쓰이지 않는 것 같다.
예 3처럼 개사구(개사+명사)도 명사가 의문사가 쓰이면, 명사가 먼저 오고 개사(어조사)가 뒤에 ‘명사+개사’ 형태로 도치되는 듯하다.
예 4처럼 의문사가 주어일 경우는 어차피 의문사인 주어가 서술어 앞에 위치하므로 도치될 일이 없다. 정리하면 영어하고 비슷해 보이는데, 영어의 도치와는 차이가 있다.
영어에서는 의문사가 문장의 앞에 나오지만, 한문에서는 술어 앞에 나온다는 것이다.
1) 不知今日之事, 如未來何.(오늘 일도 모르는데, 미래를 어찌 하겠는가)
甲曰, “奈此事何.”(갑이 ‘이 일을 어쩌느냐’라고 했다)
2) 父問女曰, “崔君孰與鄭君.”(아버지가 딸에게 ‘최 군하고 정 군 중에 어느 쪽이냐.’라고 물었다)
위 예문 1에서 보듯이 如~何 같이 의문사가 중첩되어 쓰일 때 의문사 사이에 단어가 삽입되는 도치 비슷해 보이는 형태가 쓰이기도 한다.
예문 2처럼 孰與 같은 의문사 어구는 단어 사이에 끼는 특이한 형태를 갖는다.
부정사(否定詞)가 쓰일 때
1) 不患人之不己知.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마라.(논어)
1-a) 不患人之不知己. =
2) 未嘗忘讐. -원수를 잊은 적이 없다.
2-a) 嘗未忘讐.
3) 勿以小利失大利. -작은 이익 때문에 이익을 잃지 마라.
3-a) 以小利 勿失大利.
不, 未 같은 부정(금지 포함)을 나타내는 부정사가 동사, 형용사 앞에서 쓰이는 부정사+동사 형태에서 도치가 되는 경우가 있다. 己자는 1-a처럼 知자 뒤에 쓰이는 것이 정상 어순 같은데,
예 1에서 부정사 不과 이와 결합하는 동사 知 사이에 삽입되어 도치되어 쓰였다. 이런 도치는 선택적이어서 1-a 같은 정상적인 어순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예1 같은 형태에서 ‘부정사+동사’ 사이에 낄 수 있는 단어는 명사나 대명사인데, 대명사일 경우에 명사일 때보다 더 자주 도치되어 쓰이는 듯하다.
예 2는 부정사+동사 사이에 부사어 ‘嘗’이 삽입되어 쓰였다. 이것이 도치인지 애매한데, 우리말 해석으로 비춰 생각하면 마치 도치된 것처럼 보인다.
2-a 같은 부사어가 부정사 앞에 나오는 정상 어순 같은 형태가 쓰이기도 하는 듯한데, 예2 같은 형태가 더 많이 쓰이는 듯하다. 그리고 이것이 부정사가 어디까지 걸리는지 부정사의 범위를 2-a 같은 형태보다는 더 명확하게 해주는 듯하다.
예 3도 부정사+동사 형태에서 동사 앞에 쓰이는 以가 이끄는 개사구는 부정사와 동사 사이에 삽입되어, 예 2와 비슷한 양상을 띤다. 그리고 우리말 해석대로 하면 3-a 문장이 될 것 같은데, 3-a 같은 以 개사구가 부정사 앞에 나오는 모양이 가능한 것 같기도 하지만, 예 3이 훨씬 한문다운 표현 같아 보인다.
1) 非爾所知. -네가 알 바가 아니다.
1-a) 爾非所知. =
2) 無日不忘. -잊지 않은 날이 없다.
2-a) 無不忘之日. =
2-b) 無日和暢. -화창한 날이 없다.
非자가 간혹 예1처럼 주어를 제치고 문장 맨 앞에 놓여 도치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非가 도치되는 것은 선택적인 듯하여, 1-a 같은 정상적인 어순으로 쓰는 것도 가능하다.
예2처럼 無~不 형태에서 그 사이에 쓰이는 단어(日)가 그 뒤 구절의 수식을 받아 도치될 때가 있다. 이처럼 뒤에서 꾸며주는 후치(後置) 수식(修飾)을 받는 所, 攸 같은 어조사가 있기는 하지만, 어조사가 아닌 일반 한자가 통상적으로 후치 수식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예 2가 정상 어순인 2-a를 도치한 것인가 의심스럽기도 하지만, 일단 그렇다고 간주한다면, 예2 같은 도치 형태가 절대적은 아니어도, 2-a 같은 형태보다는 흔하게 쓰이는 듯하다. 2-a 같은 형태는 無가 不忘에 걸리는지 日에 걸리는지 모호한데, 예2 같은 형태는 어순은 특이하나 이런 측면에서 모호함은 덜해 보인다. 이것이 이런 후치 수식을 하는 독특한 형태를 갖게 된 한 가지 이유가 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2-b처럼 ‘無+명사’ 형태에서 不자 같은 부정사가 없이도 후치 수식을 받는 경우가 있는 듯하다. 그러나 예2 같은 ‘無~不’ 표현처럼 흔하게 쓰이지는 않는 듯하다.
화제(話題)가 쓰일 때
1) 富貴, 人皆好之也. -부귀는 사람이 모두 좋아한다.
1-a) 人皆好富貴也. -사람은 모두 부귀를 좋아한다.
2) 女可失, 友不可失. -여자는 잃어도 되지만, 친구는 잃어서는 안 된다.
위 예1에서 ‘富貴’처럼 어떤 단어가 그 문장에서 주로 주어가 아닌데, 문장의 주제가 되어 문두에 위치하여 조사는 ‘은(는)’을 취하고, 뒤에 오는 구절은 이를 설명할 때, 이런 것을 국어에서 화제(話題)라고 한다.
한문에도 이와 비슷한 것이 있다.
예1 같은 화제어가 쓰인 경우가 꼭 1-a 같은 통상적인 어순을 도치해 놓은 것이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정상적인 어순과는 다른 형태를 보이므로 여기에서 다룬다. 이것은 영어에서 특정 단어를 It is 다음에 두고, that 이하에 이를 설명하는 부분이 있는 It ~ that 강조 구문과 기능이 비슷하게 보인다. 예 1처럼 화제어 뒤에는 구절이 아니지만 구두점을 표기하기도 한다.
예2처럼 화제어만 있고 주어가 없는 경우엔 女, 友 같은 단어가 화제어로 쓰였는지, 단순히 도치된 것인지, 아니면 주어로 쓰였는지 구분하기가 모호한데, 다행히도 화제어로 쓰이든지 도치되든지 양자간에 의미상에 별로 차이가 없다. 그렇지만 女, 友가 주어로 쓰였다면, 예 2의 의미가 ‘여자가 잃을 수는 있으나, 친구가 잃을 수는 없다.’로 되어, 의미가 사뭇 달라지므로 화제어로 쓰였는지 주어로 쓰였는지 유념하여 구분해야 한다.
【 술어 + 목적어 】 경우에
1) 君子義之求, 凡夫利之貪也.(군자는 의를 구하고, 범부는 이익을 탐한다.)
1-a) 君子求義, 凡夫貪利也. ( = )
1-b) 渴者唯水是欲, 飢者唯食是願. (목마른 자는 오직 물을 원하고, ~ .)
2) 人李舜臣之謂英雄. (사람들은 이순신을 영웅이라고 한다.)
2-a) 人謂李舜臣英雄. ( = )
위의 예 1은 이렇게 목적어가 우리말 어순과 비슷하게 서술어 앞에 위치하는 도치가 일어난다. 이때 단어(한자)가 도치됐음을 분명하게 표시하게 위함인지, 도치된 목적어 뒤에 之자나 1-b 문장처럼 是자가 붙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한자가 붙지 않을 때도 있다.
예 2가 2-a를 도치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예 2는 목적어(‘李舜臣’)가 술어(‘謂’) 앞에 위치하여, 한문의 정상 어순인 ‘서술어+목적어’ 구조와 달라서, 도치된 것으로 보인다. 역시나 도치된 목적어 뒤에는 之가 붙어 있다.
그리고 2-a 같은 어순 형태는 서술어 뒤에 명사가 두개 연달아 오는 모양이라서 다른 문형과 헷갈릴 여지가 있어서, 형태상 비교적 더 간명해 보이는 예2 같은 도치된 형태가 2-a 같은 정상적인 어순 형태보다 더 독해하기에 간명해 보인다.
己所不欲, 勿施於人.(자기가 원하지 않은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마라)
人所有, 不貪之.(남이 갖은 것을 탐하지 마라)
위 예문처럼 목적어가 절(節)로 긴 형태일 때에도, 목적어가 먼저 나오고 뒤에 술어가 나오는 도치가 쓰이기도 하는 듯하다.
개사구가 쓰일 때
1) 凡夫於利明, 於義暗.(범부는 이익에 밝고, 의에 어둡다)
1-a) 凡夫明於利, 暗於義. ( = )
2) 事君以忠.(충으로 임금을 섬겨라)
以忠事君. ( = )
위의 예문 1처럼 보어로 쓰이는 개사구(介詞句)가 술어 앞에 나와, 도치가 되기도 한다. 물론 1-a처럼 통상의 어순으로 표현하는 것도 가능하다.
예문 2에서 보듯이, 以가 이끄는 개사구는 술어 앞에 쓰이거나 구절 뒤에 쓰이는 것이 다 가능한데, 이는 어느 것이 도치이고 정상 어순이라고 할 수 없는 것 같고, 以 개사구가 어순이 자유롭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감탄사가 쓰일 때
漠漠乎. 西海.(막막하구나. 서해가.)
高於山矣. 父心乎.(산보다 높구나. 부심이여.)
靑哉. 天乎.(푸르도다. 하늘이여.)
위 예문들은 감탄문인데, 술어가 먼저 나오고, 주어가 나중에 나와, 도치(倒置)가 쓰였다.
감탄문에 이런 도치가 자주 쓰인다. 이런 경우에 乎자가 감탄을 나타내는 어조사로 쓰였는지, 개사로 쓰였는지 구분하기 모호한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인용(引用)이 쓰일 때
我聞之, 脣亡齒寒也.(나는 그런 말을 들었다. 이가 없으면 이가 시리다고.)
我聞諸父, 曰勿恥所不知.(나는 아버지에게 그런 말을 들었다.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위 예시처럼 인용문이 쓰이는 경우에 앞에 인용 부분을 우선 之, 諸 같은 대명사로 간단히 받고, 뒤에 긴 인용 부분을 두는 도치 비슷한 모양이 쓰이는 듯하다.
어순이 자유로운 경우
한문은 우리말에 비하면, 어순이 고정되어 있는 편인데, 일부 부사나 개사구가 어순이 고정되지 않고, 자유롭게 쓰인 것 같다. 아래 예시를 보라.
1) 汝若窮, 則誰助汝乎.(네가 만일 어려워지면, 누가 너를 돕겠느냐)
1-a) 若汝窮, 則誰助汝乎. ( = )
2) 三日後, 先生遂歸家矣.(삼일 후에 선생이 드디어 귀가했다)
2-a) 三日後, 遂先生歸家矣. ( = )
3) 禍自福始矣.(화는 복에서 시작된다)
3-a) 禍始自福矣. ( = )
예문 1에서 若자는 汝자 다음에 위치했는데, 1-a처럼 汝자 앞에 위치하여 쓰이는 것도 가능하다. 밑에 遂자도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부사(엄밀히는 부사로 해석되는 것) 중에서 그 기능이 단순히 용언을 수식하는 것이 아니고, 문장(구절) 전체와 관련이 있는 부사는 어순이 한 곳에 고정되지는 않는 듯하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말도 마찬가지라서, 이해하기는 쉬울 것이다.
예문 3과 3-a에서 自 개사구가 다른 자리에 쓰였다. 이렇게 自자처럼 비교적 어순이 자유로운 개사구를 이끄는 개사는 以, 由 따위가 있다.
까다로운 문형
아래는 우리가 한문 문장 패턴 중에서 익숙해지기 어렵거나 이해하기 까다로운 것을 단순히 예시로만 묶은 것이다. 아래에서 爲는 동사를, 如는 형용사를, 數는 숫자를 대신하여 썼는데,
단 그 문형에서 동사 자리에 자주 대표적으로 쓰이는 한자는 爲를 대신하고, 명사 자리에 자주 쓰이는 한자는 甲, 乙 등을 대신하여 쓰기도 했다.
? 爲-甲 (갑이 -하다)< 동사 - 명사>
降 雨.(비가 내리다)
開 花.(꽃이 피다)
? 甲-如-者 (갑 중에 -한 자가(것이) -하다) <명사 - 형용사- 者>
人 多 求僥倖者也.(사람 중에 요행을 노리는 자가 많다.)
人 希 一月不食而活者矣.(사람 중에 한달을 먹지 않고 살아남는 자는 드물다.)
馬之 有 一日千里者焉.(말 중에는 하루에 천리를 가는 것이 있다.)
? 甲-爲(如)=如. (갑이 -함이 어떠하다(어떠하게 -하다).)< 명사 - 동사 - 형용사>
母 愛子 大也.(어미가 자식을 아낌이 크다. => 어미가 자식을 크게 아낀다.)
君 擧足 高也.(임금이 발을 듦이 높다)
鳥 害果樹 不少.(새가 과수에 해를 끼침이 적지 않다.)
我 去故鄕 久矣.(내가 고향을 떠난 것이(지가) 오래되었다.)
目 大於瞳孔 明矣.(눈이 눈동자보다 큼은 분명하다)
我 非汝 必也.(내가 네가 아닌 것은 틀림없다.)
犬 聰人 遠也.(개가 사람보다 귀가 밝음이 월등하다. => 개가 월등히 사람보다 귀가 밝다.)
? 甲-爲=數 (갑이 -를 한 것이(지가) 얼마이다)< 명사 - 동사 - 숫자 >
先生 斷食 二十日.(선생이 단식한 지가 20일이다.)
大師 ?言 三年.(대사는 3년 동안 묵언했다)
? 甲-如-乙 (갑은(-에는) 을이 -하다)< 명사 - 형용사 - 명사>
兎 赤 目.(토끼는 눈이 빨갛다)
牛 短 脚.(소는 다리가 짧다)
我國 多 松.(우리나라에는 소나무가 많다)
? 甲-有-乙 (갑엔(-은) 을이 있다(없다))< 명사 - 有. 無 - 명사 >
濟州道 無 鐵道.(제주도에는 철도가 없다)
天池 有 怪物也.(천지에 괴물이 있다)
致富 有 道也.(부를 이루는 데에 방법이 있다)
# 甲-乙-如(爲)-如(爲) (갑이 -하고, 을이 -하다)< 명사 -명사 - 형용사 >
天 地 玄 黃.(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
東海 白頭 竭 耗.(동해물이 마르고, 백두산이 닳다)
# 甲-乙-爲 (甲이 乙을 -하다) < 명사-명사- 동사 >
牛 草之 食也.(소는 풀을 먹는다)
凡夫 唯利是 從也.(범부는 오로지 이익을 좇는다)
君子 富 亦好, 貧 亦不好.(군자도 부를 또한 좋아하고, 가난함을 또한 좋아하지 않는다)
# 甲-爲 (갑은(-을) -하다)< 명사 - 동사>
成敗 未可知.(성패는 알 수가 없다)
財 不可近, 不可遠.(재물은 가까이 해서도 안 되고 멀리 해서도 안 된다)
不意之利 不取.(뜻밖의 이익은 취하지 않는다)
羹 嘗而不食.(국은 맛만 보고 먹지는 않는다)
果 任於天.(결과는 하늘에 맡긴다)
# 甲=乙-爲 (갑은(-에는) 을이 -하다) < 명사 - 명사 - 동사>
生鮮 猫 好也.(생선은 고양이가 좋아한다)
美女 男 皆所欲也.(미녀는 남자가 모두 원하는 바이다)
積善之家 福 至也.(선을 쌓은 집안에는 복이 온다)
花 蜂蝶 集矣.(꽃에는 벌, 나비가 모인다)
? 甲-所爲-乙 (갑이 -한 을)< 명사- 所+동사 - 명사>
人 所有 餠, (大乎吾餠).(남이 가진 떡이 (내 것보다 크다))
兄 所服之 衣, (弟再服之).(형이 입던 옷을 (아우가 다시 입다))
? 不-以甲-爲 (갑으로써 -하지 마라(않는다))< 不(부정사) - 以+명사 -동사 >
勿 以小利 失大利.(작은 이익 때문에 큰 이익을 잃지 마라)
不 以花美 而 折之.(꽃이 예쁘다고 꺾지 마라)
不 以富 輕貧者, 不 以强 蔑弱者.(부유하다고 빈자를 얕보지 말고, 강하다고 약자를 업신여기지 마라)
? 甲-以乙-爲-丙 (갑이 을을(을로) 병에게 -하다)< 명사 - 以+명사 - 동사 - 명사>
兄 以膳物 授 弟.(형이 선물을 동생에게 주었다)
父 以金 遺 子也.(아버지가 아들에게 금을 주었다)
金氏 以女 妻 富者也.(김씨는 딸을 부자에게 시집보냈다)
? 甲-謂-乙 (갑을 을이라고 한다)< 명사 - 謂. 爲. 曰 - 명사>
我國 謂 大韓民國.(우리나라를 대한민국이라고 한다)
不知 爲 不知.(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한다.)
?之 謂 百年之客.(사위를 백년 손님이라고 한다)
妻之父 曰 丈人.(처의 아버지를 장인이라고 한다)
? 甲-謂-之-乙 (갑을 (그것을) 을 이라고 한다)< 명사 - 謂之 - 명사>
父之四寸 謂 之 堂叔.(아버지의 사촌을 (그를) 당숙이라고 한다)
二月二十九日 謂 之 閏日.(2월 29일을 윤일이라 한다)
喜怒哀樂之未發 謂 之 中也.(희노애락이 아직 발하지 않은 것을 그것을 중이라고 한다.)
? 謂-甲-乙 (갑을 을이라고 한다)
謂 父之四寸 堂叔.(아버지의 사촌을 당숙이라고 한다)
謂 釣士 姜太公.(낚시꾼을 강태공이라고 한다)
★ 흔히 쓰이는 어구나 표현 ★
한자가 다른 한자와 결합하거나 호응을 하여 자주 쓰이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것들을 통째로 많이 알고 있을수록 한문 해석이 쉬워지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이 중에서 빈도가 높거나 익숙해지기 까다로운 것들을 살펴보자.
? 旣~又~ ((이미) -하고, 또 -하다)
〔유사 표현〕 旣~且~, 且~且, 亦~亦
甲童旣有五男, 又得一子也.(갑동이는 이미 다섯 아들이 있는데, 또 아들 하나를 봤다.)
我國之夏旣暑, 又濕也.(우리나라 여름은 덥고, 또 습하다)
? 豈徒~ (어찌 (다만) -할 뿐인가)
〔유사 표현〕 豈特, 何但, 何翅, 何獨
吸煙豈徒害於己乎.(흡연이 어찌 자기에게만 해로우랴.)
人生豈特有樂乎.(인생이 어찌 단지 즐거움만 있겠는가.)
? 奈何 (어찌. 어찌하다)
敵將攻, 爲之奈何.(적이 장차 침공할 텐데, 이를 어찌할꼬)
? 莫如~ (-만한(같은) 것이 없다)
〔유사 표현〕 莫若, 無如, 不如, 莫甚, 莫大
衣莫如新, 友莫如久.(옷은 새것만한 것이 없고, 친구는 오래된 것만 것이 없다)
酒莫如燒酒.(술은 소주만한 것이 없다)
? 無加~ (더할 나위 없다(없이 대단하다))
〔유사 표현〕 不加, 無尙, 無雙
朴氏口辯無加焉, 行不及焉.(박씨는 구변은 더할 나위 없이 좋으나, 행실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
甲種極勇, 天下無雙.(갑종이는 지극히 용맹하여, 천하에 짝이 없다)
? 無不~ (-하지 않음이 없다)
〔유사 표현〕 莫不, 亡不
水無不下流也.(물은 아래로 흐르지 않음이 없다)
母無不愛子也.(어미가 자식을 아끼지 않음이 없다)
? 無~不~ (-하지 않는 -이가 없다)
無所不有.(갖지 않는 것이 없다.)
無男不好美女.(미녀를 좋아하지 않는 남자가 없다.)
無日不爭.(다투지 않는 날이 없다.)
? 聞之~(曰) ( -라고(-라는 말을) 들었다)
〔유사 유형〕 聞諸(之於)~曰, 聞謠(諺)~曰
我聞之, 人命在天.(나는 사람 목숨은 하늘에 달려있다고 들었다.)
我聞諸先生, 曰貧富在天.(나는 이런 말을 선생에게 들었다. 빈부는 하늘에 달렸다고.)
? 不如~ (-이 -보다 못하다(낫다). -은 -만함이 없다)
〔유사 표현〕 無如, 莫如, 不若
百聞不如一見.(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보다 못하다)
不義之富不如貧也.(의롭지 못한 부는 가난보다 못하다)
病不如防之.(병은 막는 것이 낫다)
人不如順天.(인물은 순천만한 데가 없다)
? 不以~ (-함으로써(-하다고해서. 때문에) -하지 않는다)
〔유사 표현〕 勿以, 無以 등
不以小過, 蔽大功.(작은 과오로 큰 공을 덮지 않는다)
不以幼輕兒.(어리다고 아이를 무시하지 마라)
勿以惡小而爲之.(악이 적다고해서 행하지 마라)
? 不必~ (반드시 -하지는 않다. 반드시 -하지 않다)
〔유사 표현〕 不常, 不每
病弱者不必短也.(병약한 자가 반드시 단명하지는 않다)
夏不必暑也.(여름이 반드시 더운 것은 아니다)
? 非但~ (단지 -할 뿐 아니라)
〔유사 표현〕 非獨, 非唯, 非徒, 非直, 不但 등
煙草非但不甘, 又害於身也.(담배는 맛도 없을 뿐 아니라, 또 몸에도 해롭다)
非獨漢字, 不亦知國文也.(한자뿐만이 아니라, 한글도 모른다)
? 非不~ (-하지 않음이 아니다)
牛非不食肉.(소가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아니다.)
君子非不好財, 不好其不義耳.(군자가 재물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그(재물이) 의롭지 않음을 좋아하지 않는다.)
? 非~不~ (-이 아니면 -하지 않는다)
〔유사 표현〕 非~無~, 不~非~
君子非路, 不行.(군자는 길이 아니면 다니지 않는다)
君子不行非路. ( = )
愛酒家, 非酒不生.(술을 좋아하는 자는 술이 아니면 살 수 없다)
? 非~誰~ (-이 아니면 누가)
〔유사 표현〕 非~孰~, 非~何~, 捨~何
非我, 誰守汝乎.(내가 아니면 누가 너를 지키랴)
非鳥, 孰飛天哉.(새가 아니면 무엇이 하늘을 날겠는가)
? 非~則~ (-이 아니면 -이다)
〔유사 유형〕 非~必~, 不~則
人非男, 則女也.(사람은 남자 아니면 여자이다.)
我國之姓非金, 則李, 非其, 則朴也.(우리나라 성씨는 김씨 아니면 이씨이고, 아니면 박씨이다)
? 上~下~ (위로는 ~ 아래로는 ~)
〔유사 유형〕 內~外~, 左~右~
上仰天, 下俯地.(위로 하늘을 우러르고 아래로 땅을 굽어본다)
內治國, 外禦敵.(안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밖으로 적을 막다.)
? 所以~ (-한 것(까닭. 목적. 도구. 방법))
〔유사 표현〕 所以~者
鼠所以恐猫, 何也.(쥐가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漢文所以難學, 異于國語也.(한문이 배우기 어려운 것(까닭)은 국어와 다르기 때문이다.)
雨傘所以避雨.(우산은 비를 피하는 것이다)
兒乞所以食於人矣.(아이가 먹을 것(거리)을 사람들에게 구걸했다.)
汝所以生, 亡也.(네가 사는 길은 도망가는 것이다)
? ~也者(-라는 것은. -이란)
〔유사 의미〕 ~者, 夫~者, 所謂~者
義也者 易言難行.(의란 말하기 쉬워도 행하기는 어렵다)
友也者 不千金買之也.(친구란 천금으로도 살 수 없다.)
? 若~者 (-와 같은 자(것))
若安重根者, 謂之義士.(안중근 같은 자를 의사라고 한다.)
? 若~則 (만약 -하면. 만약 -해도)
[유사 표현] 如~則, 使~則
若非世宗, 則無國文.(만약 세종이 아니었다면, 국문(한글)은 없을 것이다)
使知不老草, 則非不死.(설사 불로초를 먹어도, 죽지 않는 것은 아니다)
? 與其~寧~ (-할 바에는 차라리 -하겠다)
與其牛後, 寧爲鷄口.(소꼬리가 될 바에는 차라리 닭의 머리가 되겠다)
與其斷髮, 寧斷頭矣.(머리카락을 자르느니, 차라리 목을 자르겠다)
? 與~同 (-와 (함께) 같이)
[유사 표현] 與~偕, 與~俱
與民樂樂.(백성과 같이 음악을 즐기다)
將軍與兵同食, 同寢.(장군은 병사와 같이 먹고, 같이 잠잤다)
? 如此 (이와 같이. 이렇게)
[유사 표현] 如是, 若此
漢字習而又忘之, 如此其難學矣.(한자는 익혀도 또 잊어버리니, 이렇게 한자는 배우기가 어렵다)
如是我聞.(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 ~爲~所 (-하게(-하는 바가) 되다)
高麗爲朝鮮所滅也. (고려는 조선에게 멸망을 당했다)
王爲敵所捕也.(왕이 적에게 사로잡혔다.)
? 謂~曰 (-에게 -라고 하다. -를 -라고 하다(=謂~爲))
〔유사 유형〕 問~曰, 謂曰, 對曰 등
師謂弟曰, “識此哉.” (스승이 제자에게 ‘이것을 잘 알아 두거라.’라고 했다)
父謂子曰, “勿爲若已者.”(아버지가 아들에게 ‘나 같은 사람이 되지 말라’라고 했다.)
人謂興夫曰無能.(사람들은 흥부를 무능하다고 한다)
? 爲之 (그를 위해서. 그 때문에. 그로 인하여)
夫有疾, 妻爲之救藥.(남편이 병이 나니, 아내가 그를 위하여 약을 구했다)
國亡, 先生爲之殉死.(나라가 망하니, 선생이 그것으로 순사했다)
? 唯~是 (오직 -를)
〔유사 표현〕 唯~之
君子唯義是從也.(군자는 오직 의를 ?는다)
父唯母是愛也.(아버지는 오직 어머니만을 좋아한다)
? 有~者 ((중에) -하는 자(것)가 있다. 어떤 사람이 ~)
〔추가 표현〕 ~之有~者
朝鮮有洪吉童者矣.(조선에 홍길동이란 자가 있었다)
我國人有不食百日而生者.(우리나라 사람 중에 백일을 먹지 않고 살아난 자가 있었다. => 어떤 우리나라 사람이 백일을 먹지 않고 살아남았다.)
我國人有見龍者也.(어떤 우리나라 사람이 용을 봤다)
客有獻王不死藥者也.(어떤 객이 왕에게 불사약을 바쳤다)
? ~有之曰~ (-에 -라는 말이 있다)
俗談有之, 曰無授乞人而有盜賊取.(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거지 줄 것은 없어도 도둑이 가져갈 것은 있다.)
? 以爲~ (-라고 생각하다(말하다))
古之人以爲日回地球也.(옛날 사람들은 해가 지구를 돈다고 생각했다.)
求利者以爲莫重於此.(실리를 추구하는 자들은 이것(실리)보다 중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말한다))
? 以~爲~ (-를(-로써) -라고 하다(생각하다. -로 삼다.))
< 以 A 爲 B : A를 B라 여기다,삼다>>
〔추가 표현〕 以~爲事, 以~爲樂
以大學爲象牙塔.(대학을 상아탑이라고 한다)
以是爲是, 以非爲非.(옳은 것을 옳다고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고 하다)
我國以無窮花爲國花也.(우리나라는 무궁화를 나라꽃으로 삼는다)
人以漢文爲難學也. (사람들은 한문을 배우기 어려운 것으로 여긴다)
以登山爲樂也. (등산을 낙으로 삼다)
? 自~至~ (-에서 -까지)
〔유사 표현〕 從~至~, 自~及~
自古至今, 未之有也.(예부터 지금까지 그런 것은 없다)
自京至釜山, 千里許也.(서울에서 부산까지 대략 천리쯤이다.)
? 知~不知~ (-은(을) 알고 -은(을) 알지 못하다)
〔유사 유형〕 聞~不聞~, 見~不見~
知一而不知二.(하나는 알고 둘은 모른다)
知言之, 不知行.(말할 줄은 아나, 행할 줄은 모른다.)
聞僧去寺, 不聞寺去僧.(중이 절을 떠난다고 들었어도, 절이 중을 떠난다고 듣지 못했다.)
? 至於~ (-에 이르다. -하게 되다. -에 관해서는)
貧益甚, 至於負債.(가난이 더욱 심해져 빚을 지게 되었다)
兄弟頻爭, 至於不相見.(형제가 자주 다투더니, 서로 안 볼 지경에 이르렀다)
今者知漢文者少, 至於英語, 知之者多.(지금 한문을 아는 자는 적지만, 영어는 아는 자가 많다)
? ~之於~(也) (-는 -에게(-에게 있어). -에 -의 존재는)
冊之於學生也, 猶銃之於兵士也.(학생에 있어 책은 병사에 있어 총과 같다)
人之於宇宙也, 猶微塵矣.(사람은 우주에 있어, 티끌과 같다.)
? ~之謂~ (-를 -라고 하다)
〔유사 표현〕 ~之爲~, 〔추가 표현〕 此之謂~, 是之謂~
天命之謂性.(천명을 성(性)이라고 한다)
月掩日, 此之謂日蝕.(달이 해를 가리는 것을 일식이라고 한다)
? ~之有 (-함이 있으랴)
何以爲之而曰不爲之之有乎.(어찌 하고도 하지 않았다고 함이 있으리오)
猫辭生鮮之有乎.(고양이가 생선을 마다함이 있으랴)
? 何如 (어찌. 어찌하다. 왜)
〔유사 표현〕 何~如, 如何, 如之何, 奈何, 奚若
以卵投石, 何如.(계란을 돌(바위)에 던지면, 어찌 되는가)
弱者勝强者, 何如.(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것은 어째서인가.)
? 何謂~ (무엇을 말하는가. 무엇(누구)이라고 하는가)
〔유사 의미〕 奚謂, 曷謂, 孰謂 등
何謂天道.(천도는 무엇을 말하는가)
社稷者, 何謂也.(사직이란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무엇인가))
? 何有 (무엇이 있으랴(있냐).)
我國何有. 唯人耳.(우리나라에 무엇이 있는가. 오직 사람뿐이다.)
致富, 何有. 非勤儉, 則幸也.(부를 이룸에 무엇이 있겠는가. 근검 아니면 운이다.)
? 況~乎 (하물며 -이야(-하겠는가))
犬有母情, 況人乎.(개도 모정이 있거늘, 하물며(더구나) 사람이야)
不知論語, 況知禮記哉.(논어를 모르는데, 하물며 예기를 알겠는가)
...
최소한 여기 나오는 어구는 영어 숙어라 여기고 무조건 외우는것이 좋습니다
가장 자주나오고 실전적인 어구입니다.
문장의 내용
문장을 내용이나 표현 수법에 따라 분류할 수 있다. 이런 것은 문법 같은 형태적인 분석을 통한 의미 파악의 한계를 보완하기도 하고, 또 해석에 더 효과적일 수가 있다. 이에 대하여 설한다.
실린 내용은 차례대로 비유(譬喩), 비교(比較), 부정(否定), 의문(疑問), 반어(反語), 피동(被動), 사역(使役), 이유(理由), 가정(假定), 역접(逆接), 추측(推測), 대화(對話)이다.
◆ 비유(譬喩)
어떤 것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다른 것에 빗대어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비유(譬喩)라고 한다.
한문에는 비유가 참 흔하게 쓰인다. 비유는 주로 추상적이거나 모호한 것을 구체적이거나 분명하게 알기 쉽게 설명하거나, 직접적으로 표현하기에 제약이 있는 것을 넌지시 우회적으로 표현하고자 할 때에 쓰인다.
1) 上善若水.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猿登木, 如反掌.(원숭이가 나무를 오르는 것은 손바닥을 뒤집는 것과 같다)
士之仕也, 猶農夫之耕也.(선비가 벼슬을 하는 것은 농부가 농사짓는 것과 같다)
2) 學譬之猶, 登山也.(배움은 (그것을) 비유하자면 산을 오름과 같다.)
人之就利, 譬若蜂蝶集花.(사람이 이익에 나아가는 것은 비유하면 벌, 나비가 꽃에 모여듦과 같다)
예문 1에 若자 같은 한자가 비유를 나타내는 데에 쓰였다.
이처럼 쓰이는 한자는 若, 如, 猶, 由, 似 등이다.
예문 2에는 비유를 나타냄에 어구가 쓰였는데, 이런 어구로는
譬猶, 譬若, 譬如, 譬之猶, 譬之若, 譬諸若, 無異 등이 있다.
1) 人雲集廣場.(사람들이 광장에 운집했다)
父心山高, 海廣.(아버지의 마음은 산처럼 높고, 바다처럼 넓다.)
2) 夫義 路也, 禮 門也.(의는 길이고 예는 그 문이다)
男天, 女地.(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이다)
3) 父謂子曰, “有言曰, ‘七顚八起’, 汝何故早已之乎.”(아버지가 아들에게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째에 일어선다는 말이 있는데, 너는 어째서 일찍 포기하느냐.”라고 했다.)
위의 예 1에서 보듯이, 若자 같은 한자가 없는 채로 비유가 쓰이기도 한다. 이렇게 쓰이는 것 중에는 ‘雲集’처럼 관용화된 표현도 있는데, 霧散(무산), 瓦解(와해), 蟻附(의부) 등이 이렇게 쓰인다.
예 2에는 은유(隱喩)가 쓰여 명시적으로 비유를 나타내는 若 자 같은 한자가 쓰이지 않았지만, 실질적으로 비유 비슷하게 쓰였다고 볼 수도 있다.
또 예 3처럼 속담이나 격언, 명언 등은 그 자체로 비유로 쓰였다고 볼 수도 있다.
◆ 비교(比較)
비교는 한문에서 자주 쓰이는 표현 방식이다. 비교에도 단순 비교가 있고, 우열(優劣) 비교가 있고, 최상 비교가 있다.
1) 我國語異乎中國.(우리나라 말은 중국과 다르다)
禽獸好飽惡飢, 與人同也.(금수가 배부름을 좋아하고 배고픔을 싫어함은 사람과 같다)
1-a) 習漢字, 如此其難矣.(한자를 익히는 것은 이렇게 어렵다)
2) 百聞不如一見.(백번 들음은 한번 봄만 못하다)
或者曰 老子過孔子.(혹자는 노자가 공자보다 낫다고 말한다)
2-a) 與其爲牛後, 寧爲鷄口.(소꼬리가 될 바에는 차라리 닭 머리가 되겠다)
不如除禍根.(화근을 제거하는 것이 낫다)
위의 예 1은 양자를 비교하여 단순히 같거나 비슷하거나 다른가를 나타내는 단순 비교를 하고 있다. 이런 데에 잘 쓰이는 한자에는 同, ?, 擬, 異, 似, 類, 比, 如, 若, 近, 遠, 無異 등이 있다. 또 이런 데에 쓰이는 어조사(개사)는 於, 于, 乎, 與 등이다.
1-a에서 如자는 강조의 의미로 쓰였다.
예 2는 둘을 비교하여 어느 한쪽이 다른 쪽보다는 낫다는 우월이나 못하다는 열등의 의미를 나타내는데, 이러는 데에 쓰이는 한자나 어구는 出, 過, 賢, 勝, 不如, 不如~愈, 不及, 無如, 不若 등이 있다.
열등을 나타냄에는 不자 같은 부정사가 쓰이어 부정 어구를 이루는 형태가 많다.
2-a에서 與其, 不如는 그 쓰임이 비교보다는 선택에 가까워 보인다.
1) 山莫如金剛山也.(산은 금강산만한 것이 없다)
詩不如李白.(시는 이백만한 것이 없다.)
福莫大於知足也. (복은 족함을 아는 것보다 큰 것이 없다)
1-a) 山莫如金剛山也.(산은 금강산과 같지 않다)
2) 子路, 勇天下無雙.(자로는 용기는 천하에 짝이 없다.)
子路, 勇無可加也.(자로는 용기는 더할 나위가 없다.)
위 예시 1은 서로 차원이나 급이 달라 직접적인 비교가 불가능해 보이는 양쪽을 비교해 후자가 전자의 부류 중에서 최고임을 나타내는 표현이 쓰였다. 초학자에겐 이런 표현이 익숙하지 않아서, 1-a처럼 어색한 풀이를 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최상의 의미를 나타내는 표현은 莫如, 莫甚, 莫過 등처럼 대개 앞에 莫, 不 같은 부정어(否定語)가 들어가는 어구가 쓰인다.
또 예시 2처럼 無雙, 無加 같은 어구를 이용하여, 예시 1과는 다른 방식으로 최상의 의미 비슷하게 표현할 수 있다.
◆ 부정(否定). 금지(禁止)
한문에서 부정을 나타내는 한자(부정어)는 얼마 안 되지만, 국어보다는 훨씬 많아 보인다.
부정어로 쓰이는 한자는 不, 弗, 無, 莫, 未, 非, 匪, 微, 否 등이다.
또 부정 어구 내에서 더 자주 쓰이거나, 우리말에 ‘절대(必), 별로(甚)’처럼 주로 부정문 안에 쓰이는 단어(부사)가 있어서, 긍정문에 쓰일 때와는 다르게 한자를 다르게 해석하면 의미가 훨씬 자연스러워지는 경우가 있다. 不如, 非但 같이 부정어는 다른 한자와 결합하여 한문에 흔하게 보이는 어구를 이루기도 한다.
부정(否定)이 쓰인 부정문(否定文)에서 부정을 나타내는 한자(부정사)가 어디까지 걸리는지, 그 범위가 다소 구분하기 애매할 때가 있다. 아래를 보라.
1) 不利.(이롭지 않다)
我非汝.(나는 네가 아니다)
2) 君子不以利棄義.(군자는 이익 때문에 의를 버리지 않는다)
財非求而可得之也.(재물은 구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3) 不必然. (반드시 그러하지는 않다.)
必不然. (반드시 그러하지 않다.)
3-a) 不必然.. (반드시 그러하지 않다.)
예문 1은 부정어가 바로 뒤 단어에 짧게 걸려서 해석하기가 쉽다. 그런데 예시 2는 부정어가 바로 뒤 한 단어에 걸리지 않고 몇 단어 뒤까지 길게 걸린다. 이런 경우는 해석에 유의해야 한다.
그리고 예문 3처럼 본 용언(然)을 수식하는 한자(必)의 위치에 따라 부정 구문의 의미가 달라지기도 한다. 이렇게 부정 구문에서 본 용언을 수식하는 단어(부사어)의 위치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는데, 이렇게 쓰일 수 있는 한자는 必, 常, 每 등이다. 그런데 간혹 예시 3-a처럼 必자가 부정어 뒤에 위치해도, 앞에 위치한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질 때가 있기도 한다.
1) 人無不好財.(사람이 재물을 좋아하지 않음이 없다)
一言莫非僞言.(한 마디도 거짓말이 아닌 것이 없다)
2) 見美女, 男不可不動.(미녀를 보면, 남자는 흔들리지 않을 수 없다.)
3) 素英非但美, 又善也.(소영이는 예쁠 뿐만 아니라 또 착하다)
위 예시 1에서 보듯이 부정어가 서로 맞붙어 어울려 어구로 쓰여, 더 강한 긍정의 의미를 갖는다.
이렇게 쓰이는 것은 無不(=莫不. 毋不. 亡不. 靡不), 無非(莫非), 非非~, 非不~ 등이다.
예시 2처럼 두 부정어가 상관 어구처럼 어떤 단어를 사이에 끼고 쓰이는 형태도 있는데, 이것도 강한 긍정의 의미를 갖는다. 이런 것에는 不~不, 不~無, 未~不 등이 있다.
예시 3처럼 부정어가 ‘단지’ 같은 국한적인 의미를 가진 한자와 어울려, 어떤 하나에 국한되지 않고 다른 것까지 포괄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렇게 잘 쓰이는 어구로는 非但, 非獨, 非徒 등이다.
不使敵知我死.(적으로 하여금 내가 죽음을 알지 못하게 하라)
魚不可出水.(물고기는 물 밖을 나올 수 없다)
위 예문에서 보듯이 不 자 같은 부정어(否定語)는 대개 사역이나 가능을 나타내는 한자보다 앞에 놓이는 듯하다.
◆ 의문
한문에서 의문(疑問)은 대개 대화문이나 자문자답 형태에서 쓰인다. 그리고 의문은 반어와 혼동이 되곤 하니, 유의하여 구분해야 한다.
1) 父問子曰, “汝何以好山乎?”(아버지가 아들에게 ‘너는 어째서 산을 좋아하느냐.’라고 물었다.)
2) 父謂子曰, “汝好山乎.” 子曰, “然.”(아버지가 아들에게 ‘너는 산을 좋아하느냐.’라고 하니, 아들이 ‘그렇습니다.’라고 했다.)
예문 1처럼 問자 같은 의문을 나타내는 한자가 쓰이거나, 何자 같은 의문사가 쓰이거나, 문장 부호 물음표(?)가 쓰이면 쉽게 의문문인지 알아낼 수 있다.
예문 2처럼 앞에서 열거한 경우에 해당되지 않으면, 한 번에 의문문인지 간파할 수 없는 경우에 문맥을 잘 따져야 한다. 問자 같이 그 문장의 내용이 의문임을 나타내는 한자는 質, 請, 訪 등이다.
1) 師謂弟曰, “汝何以知之乎.” 弟曰, “學而知之.”(스승이 제자에게 ‘너는 그것을 어떻게 알았느냐.’라고 하니, 제자가 ‘배워서 그것을 알았습니다.’라고 했다.)
1-a) 師謂弟曰, “人誰不學而知之乎.”(스승이 제자에게 ‘사람 중에 누가 배우지 않고 알겠느냐’라고 했다.)
예 1은 스승의 말만 있다면, 의문문인지 반어문인지 가리기가 혼란스럽지만, 뒤에 제자의 대답을 미루어 보아 의문문인지 알 수 있다. 참고로 예시 1-a는 반어문으로 쓰였다.
의문사로 자주 쓰이는 어구는 何以, 何由, 何爲, 何所, 何故, 奚爲, 奈何(柰何), 如何(何如), 若何, 孰與 등이다.
◆ 반어(反語)
반어는 실제 의중과는 달리 거꾸로 말을 표현하는 것을 반어(反語)라고 한다.
반어문은 한문에 상당히 자주 쓰이는 표현 수단이다.
반어가 감탄문이나 평서문 형태로 쓰이기도 하지만, 한문에서 반어는 의문문 형태로 많이 쓰인다. 그리고 반어는 반어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때로 혼동되어, 해석에 애를 먹인다.
1) 學而時習之, 不亦說乎.(배우고 때로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男好女, 不亦宜哉.(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니, 또한 마땅하지 않은가)
1-a) 百年河淸.(백년이 된다고 황하가 푸르겠는가)
2) 燕雀安知, 鳳凰之志.(제비, 참새가 어찌 봉황의 뜻을 알랴)
예 1은 반어 문장이 쓰였는데, 이게 반어가 아니고 그냥 일반 문장이면 ‘學而時習之, 不亦說乎.’는 ‘배우고 때로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하다’로 정 반대의 의미가 되니, 문맥을 잘 파악하여 반어인지 아닌지 주의 깊게 구분해야 한다.
예 1에서 보듯이 반어문에 乎, 哉 같은 종결 어조사가 쓰이기는 한다. 그러나 이런 어조사는 의문문에도 쓰이고, 1-a처럼 어조사 없이도 반어가 쓰이기 때문에, 어조사만 가지고 반어인지 구분하기는 대체로 무리이니, 어떤 구문이 반어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려면, 어조사는 참고 정도로 하고, 주로 문맥에 의존하여 판단해야 한다. 이것은 의문문도 마찬가지이다. 예문 2처럼 의문사를 동원하여 반어가 쓰일 때가 흔한데, 이런 경우도 반어문인지 의문문인지 혼동의 가능성이 있으니, 잘 가려내야 한다.
不求而得之之有乎.(구하지 않고 얻음이 있으리오)
人豈徒食飯哉.(사람이 어찌 단지 밥만 먹으리오)
위 예문의 之有, 豈徒처럼 반어에 자주 쓰이는 것은 之有, 豈徒(何但, 豈獨, 豈特, 豈?), 何有 등이 있다.
◆ 피동(被動)
국어에서 주체(주어)의 행위가 자발적으로 한 것이 아니고, 다른 것에 의하여 된 것을 피동(被動)이라고 한다. 한문에도 이와 비슷한 것이 있다.
將軍見擒於敵也.(장군은 적에게 사로잡혔다.)
王爲天下所笑.(왕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위 예시는 見자 같은 한자가 쓰이어, 문장이 피동의 내용임을 명시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이렇게 쓰이는 한자나 어구는 見(-를 당하다. -하게 되다), 受, 當, 被, 蒙, 直, 遇, 遭, 爲, 爲~所, 所見 등이다.
我國兩分, 以外勢也.(우리나라가 둘로 나뉜 것은 외세 때문이다.)
善英美, 故好於衆男.(선영이는 이뻐서, 남자들에게 호감을 샀다.)
비고) 善英美, 故好於衆男.(선영이는 이뻐서, 남자들에게 좋아했다.)
위 예문에는 見자 같은 피동을 나타내는 한자가 쓰이지 않았지만, 위 예문에서 밑줄 친 단어는 피동으로 해석이 된다. 이런 경우에는 해석이 쉽지 않으니, 문맥에 의존하여 피동으로 쓰였는지 아닌지 파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비고처럼 어색한 풀이를 하게 되는 실수를 범할 수도 있다.
◆ 사역(使役)
자신이 아닌 다른 것에게 동작을 시키는 것을 사역(使役)이라고 한다. 한문에서 사역이 흥미로운 점은 사역을 나타내는 데 쓰이는 使자 같은 한자가 가정에도 쓰인다는 것이다.
夫使其妻閉門.(남편이 그 처로 하여금 문을 닫도록 했다)
王令民捕虎.(왕이 백성에게 명하여 호랑이를 잡게 했다)
비고) 使之然, 何也.(그것을 그러하게 한 것은 무엇인가)
위 예문에서 보듯이 사역을 나타내는 데에 使자 같은 한자가 쓰인다.
이렇게 쓰이는 한자는 使, 命, 令, 敎, 勸, 强, ?, 責, 作, 詔 등이다.
비고처럼 사역 문장에서 무생물이 주어로 쓰이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가 흔하지는 않으나, 국어보다는 조금 더 쓰이는 듯하다.
食牛水而賣之也.(소에게 물을 먹여 팔다) 食: 먹이다, 기르다 사.
農夫衣俑服, 以逐鳥矣.(농부는 허수아비에게 옷을 입혀 새를 쫓는다.)
兵醉將, 而殺之也.(병사가 장군을 취하게 하고 죽였다.)
위 예시는 使자 같은 사역을 나타내는 한자가 없지만, 사역의 의미를 띄고 있다. 이런 경우에는 한 번에 제대로 의미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으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1) 使我有翼, 飛天矣.(가령 내가 날개가 있다면 하늘을 날 것이다) 使 가령. 만일.
1-a) 使我有翼, 飛天矣.(가령 나에게 날개가 있도록 한다면 하늘을 날 것이다)
1-b) 使我有翼, 飛天矣.(나에게 날개가 있도록 하고, 하늘을 난다)
위 예문 1에서 使자는 사역보다는 가정(假定)을 이끄는 기능으로 쓰여, 1-a보다는 예문 1의 해석이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만일 1-b처럼 사역으로 간주하여 풀이하면, 이상한 해석이 되고 말 것이다.
◆ 이유(理由). 원인(原因)
이유나 원인 같은 내용이 들어 있는 문장은 한문에서 많이 보이는데, 그것을 간파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1) 泰山成其大, 不辭一壤故也.(태산이 그 큼을 이룬 것은 하나의 흙도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虎不捕鳥, 以不飛也.(호랑이가 새를 잡지 못하는 것은 날지 못하기 때문이다)
着眼鏡, 爲善視之矣.(안경을 끼는 것은 잘 보기 위해서이다)
2) 虎不飛, 故不捕鳥也.(호랑이는 날지 못하는 고로 새를 잡지 못한다)
위 예시들은 故, 以 같은 한자가 쓰이어서, 문장의 내용이 이유( 원인, 목적 등 포함)와 관련이 있음이 명시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고로 상대적으로 의미 파악이 용이하다. 예문 1은 이유가 뒤 구절에 나왔는데,
예문 2처럼 이유가 앞에 나올 수도 있다.
1) 醜男婚與美女, 富也.(추남이 미녀와 결혼하는 것은 (추남이) 부유하기 때문이다)
1-a) 醜男婚與美女, 富也.(추남이 미녀와 결혼하고 부유해졌다.)
醜男婚與美女, 富也.(추남이 미녀와 결혼하는데, (미녀가) 부유했다)
위 예문은 내용이 이유와 연관이 있음을 쉽게 알 수 있게 나타내는 한자가 없다. 이런 때에는 주로 문맥에 의존해야 하므로, 의미 파악이 쉽지 않다. 1-a 같은 어색한 해석을 할 수도 있으니, 주의하여 신경을 써야 한다.
◆ 가정(假定). 조건(條件)
가정하는 문장은 대개 가정하는 구절(문장)이 앞에 있고, 뒤에는 이 가정과 연계되어 있는 추측이나 결의를 나타내는 구절이 쓰이는 형태로 나타난다.
1) 若我爲汝, 不爲之矣.(만약 내가 너라면, 그것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使一日習三漢字, 一年知千餘字.(가령 하루에 세 한자를 익히면, ~ )
2) 水至淸, 則無大魚.(물이 너무 맑으면 큰 물고기가 없다)
嘗肉而後, 可知其味.(고기를 맛본 이후에 그 맛을 알 수 있다)
3) 若無言, 是無字.(만약 말이 없다면, 글도 없을 것이다)
위의 예문들은 若, 則 같은 한자가 쓰여서, 문장이 가정, 조건 등의 내용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가정에 쓰이는 한자는 예문 1처럼 가정(假定) 구문 안에 쓰이는 것과, 예문 2와 같이 그 뒤에 쓰이는 것이 있다.
가정 구문 안에 쓰이는 한자는 若, 如, 使, 令, 設, 假, 假使, 假令, 苟, 信, 今 등이다.
그 뒤에 쓰이는 것은 則, 便, 斯, 此, 是, 必, 將, 然後, 而後(=而后), 乃 등이다.
주의할 것은 若, 如는 비교나 비유의 기능으로 使, 令 등은 사역의 기능으로 斯, 此, 是는 대명사 기능으로도 자주 쓰이니, 구분을 잘 해야 한다. 또 예문 3처럼 若~則, 若~是 등이 상관 어구 비슷한 것이 가정에 쓰이기도 한다.
1) 有備無患.(대비가 있으면 후환이 없다.)
不寐夜長, 疲倦道長.(잠이 안 오면 밤이 길고, 피곤하면 길이 길다)
一笑一少, 一怒一老.(한번 웃으면 한번 젊어지고, ~ )
2) 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생긴다)
위 예시는 則자 같은 가정(假定)의 의미임을 명시해 주는 한자가 없지만, 위 구문들은 가정이 쓰였다. 이렇게 겉으로 보기에 가정이 아닌 것 같지만, 가정이 쓰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예문 1처럼 가정 구문이 짧은 경우에 의미를 알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으나, 그냥 원문만 보고는 바로 의미를 파악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만약 이런 것이 바로 해석된다면, 이미 중급 이상의 실력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문 2처럼 가정 구문이 길어 구두점이 있으면, 則자 같은 한자가 없어도 내용을 파악함에 이것으로 조금 힌트를 얻는 셈이 되는 것 같다.
1) 聞一, 知十.(하나를 들으면 열을 안다)
1-a) 聞一, 知十.(하나를 듣고 열을 안다)
聞一知十.(하나를 들으니 열을 안다)
예문 1처럼 대개 용언의 어미는 ‘-하면’으로 해석이 되나, 1-a처럼 ‘-하고’, ‘-하니’로 해석해도 되어, 이것이 가정의 의미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모호한 때가 있다.
◆ 역접(逆接)
구절이나 문장 사이가 서로 상반되거나 모순 되게 접속되는 것을 역접(逆接)이라고 한다. 명료하게 역접을 나타내는 한자가 없을 때엔 해석하기가 쉽지 않다.
1) 泰山雖高, 無不可登也.(태산이 아무리 높아도, 오르지 못할 것이 없다.)
人欲笑公主, 猶怒也.(사람들이 공주를 웃기려고 했으나, 오히려 성냈다.)
2) 使甚富, 非不死.(설사 아주 부유해도, 죽지 않는 것은 아니다)
2-a) 使甚富, 非不死.(설사 아주 부유하면, 죽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예시 1은 雖, 猶자 같은 역접을 명료하게 하는 표현이 있어, 밑줄 친 중간의 용언(高, 笑)이 역접으로 연결됨을 쉽게 알 수 있다.
예시 2처럼 가정에 쓰이는 使자 같은 한자가 역접으로 쓰이면, 가정인지 역접인지 구분하기가 수월하지 않다. 이것을 가정 구문으로 간주하여 풀이하다 보면 2-a처럼 해석이 어색하게 될 수가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1) 樹欲靜而風不止.(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는다)
欲視而不見, 欲聽而不聞.(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고, 들으려고 해도 ~ )
2) 春來不似春.(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다)
王求不老草, 不得也.(왕이 불로초를 구했으나, 구하지 못했다)
위 예문 1은 구절을 연결하는 어조사 而가 쓰였는데, 而자는 순접으로도 쓰여서 그냥 봐서는, 문장 중간의 용언이 역접으로 연결되는지 아닌지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앞뒤 문맥을 잘 따져, 중간 용언이 역접으로 연결되는지 아닌지 구분할 수밖에 없다. 예문 2처럼 而자도 없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一知, 二不知.(하나는 알고(알지만), 둘은 모른다)
無者餓死, 有者飽死.(없는 놈은 굶어죽고(-으나), 있는 놈은 배불러 죽는다)
대개 역접은 어미가 ‘-하나, -하지만, -해도’ 등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위 예문처럼 앞뒤 구절이 내용상 반대, 대조를 이루는 경우에는 ‘-하고’로 해석해도 된다.
◆ 추측. 판단. 짐작
어떤 표현한 글이나 말이 확실하고 객관적인 사실(事實)이 아니고, 확실하지 않은 추측(推測) 등을 나타내는 때가 있다.
若虎與人戰, 虎必勝矣.(호랑이가 사람과 싸우면, 호랑이가 반드시 이긴다)
虎喫煙草, 殆虛言.(호랑이가 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거의 빈말인 듯하다.)
小心者恐見拒, 不言所欲語.(소심한 자는 거절당할 까봐, 말하고 싶은 것도 말하지 못한다.)
鵲鳴, 蓋客將來也.(까치가 우니, 아마 손님이 오려나 보다.)
위에서 보듯이 恐, 必 같은 한자가 추측을 표현함에 쓰인다. 추측을 나타내는 한자는 여럿 있는데, 추측을 나타내는 정도에 차이가 있는 듯하다. 必, 當, 幾, 殆 등은 蓋, 恐, 似, 疑 등보다는 추측의 정도가 강한 듯하다. 그러나 이것은 문맥에 따라 추측 정도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古之人以爲日回地球也.(옛날 사람들은 해가 지구를 돈다고 생각했다) 以爲 ~ 여기다
甲謂乙曰, “吾意者, 男不强乎女.”(갑이 을에게 ‘내 생각에 남자가 여자보다 강하지 않다.’라고 했다.)
위 예문처럼 以爲, 意者 같은 것이 판단이나 생각을 나타냄에 쓰인다. 이렇게 쓰이는 한자나 어구는 以爲, 意, 意者 등이다.
◆ 대화(對話). 인용(引用)
인용(引用)이란 말이나 글 따위를 끌어다 씀을 의미하는데, 인용 중에 제일 흔한 것이 대화이다.
본래 한문에는 인용부호가 쓰이지 않았는데, 요새 발행되는 책 등에는 대화 같은 인용하는 부분에 「 」, “” 같은 인용부호를 사용하여 인용 부분이 어디인지 명확하게 해줘 독자에게 편의를 제공한다.
그런데 주의할 것은 간혹 그 인용부호의 범위가 잘못 설정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또 원문 자체에 근본적으로 어디까지가 인용 부분인지 구분하기가 모호한 문제가 더러 존재하기도 한다.
1) 孔子問於老子曰, “道何也.”(공자가 노자에게 ‘도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1-a) 孔子問道於老子.(공자가 도를 노자에게 물었다)
2) 孔子曰, "君子不器."(공자가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라고 했다.)
2-a) 孔子曰, 君子不器.(공자가 군자는 그릇이 아니라고 했다.)
한문에서 대화문이 쓰일 때에, 그것이 직접 화법(話法)인지 간접 화법인지 구분하기가 힘들어 보인다.
예 1처럼 앞에 대화를 암시하는 問자 같은 한자가 쓰이고 뒤에 曰자가 쓰이면, 직접 화법으로 처리하여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예문 1을 1-a처럼 간접 화법으로 취급하여 해석에도 의미상에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1-a처럼 曰자가 쓰이지 않으면, 대개 간접 화법으로 해석함이 그 의미가 자연스러워 보인다. 問曰(問~曰)처럼 대화문에 자주 쓰이는 어구는 謂曰, 對曰, 言曰, 歎曰 등이다.
그런데 예문 2처럼 앞에 問자 같은 것이 안 쓰이고, 曰자만이 쓰일 때는, 예문 2처럼 직접 화법으로도, 2-a처럼 간접 화법으로도 해석이 가능해 보인다.
1) 孔子曰, ‘己所不欲, 勿施於人.’ (공자가 ‘자기가 원하지 않은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마라’라고 말했다.)
孟子曰, ‘有恒産者, 有恒心.’(맹자가 ‘항산이 있는 자는 항심이 있다.’라고 했다)
2) 周易云, ‘積善之家必有餘慶.’(주역에 ‘~’라고 이르다)
諺曰, ‘一言償債千兩.’(속담에 ‘한 마디 말로 천냥 빚을 갚는다.’고 했다)
예문 1은 사람이 한 말을 인용한 것이다. 이런 인용에는 曰, 云이 쓰인다.
예문 2처럼 책, 속담 등을 인용하는 데에도 曰, 云자가 쓰인다. 간혹 인용문이 긴 경우에 인용문의 끝에 云자를 써서 인용 부분을 명확하게 하기도 한다.
해석의 노하우
한문을 안다는 것은 한문 문장을 해석(解釋)할 줄 아는 것을 말한다. 많은 한자도 알고 한문 문법도 상당히 알고, 거기다가 한문 문장에도 많이 접하여 나름대로 한문에 익숙하다고 생각해도, 한문 해석이 그냥 쉽게 되지만은 않는다. 문장을 해석하기가 쉽지 않은 경우들에 대하여 알아보자.
뜻이 많은 다의자(多義字) 해석하기
뜻이 많은 한자를 다의자(多義字)라고 한다. 아마 한문을 풀이함에 다의자를 제대로 해석하기가 가장 어려운 듯싶다. 모르는 사람은 몰라서 틀리고 아는 사람은 알아서 틀리는 것이 다의자이다.
모르는 사람은 해석할 때 주로 그 한자의 ‘주된 의미’만을 대입하여 해석하기 때문에 그 한자가 ‘생소한 의미’로 쓰이면 틀리게 된다.
반면, 한문을 제법 아는 사람은 그 한자의 생소한 의미를 대입해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어, 그 한자가 주된 의미로 쓰일 때에 틀리는 경우가 생긴다.
1) 孟子去齊而之趙矣.(맹자가 제를 떠나서 조로 갔다.)
全國時代去今二千餘年.(전국 시대는 지금과 사이가 뜸이 2천여 년이다.)
不如去禍根.(화근은 제거함이 낫다)
2) 孟子過門而入室.(맹자가 문을 지나 방에 들어갔다)
好視人之過, 不視己之過.(남의 허물은 잘 봐도 자기의 허물은 살피지 못한다)
聖人過凡人, 猶鳳凰出衆鳥.(성인이 범인보다 뛰어난 것은 봉황이 뭇 새보다 뛰어남과 같다)
3) 學而時習之, 不亦說乎.(배우고 때로(제때에) 익히니, 기쁘지 아니한가.)
過猶不及.(지나침은 모자람과 같다(오히려 모자라다).)
위 예문 1에서 去자가 각각 ‘떠나다’, ‘사이가 뜨다(=距)’, ‘없애다(=除)’로 다른 의미로 쓰였다.
예 2도 過자가 각기 다른 의미로 쓰였다. 그러나 이런 뜻이 많은 한자(다의자)에 그리 겁먹지 않아도 된다. 그것은 아무리 뜻이 많은 한자라도 대개 서내 개 이내의 의미가 주로 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의자의 의미를 다 알 수는 없어도, 주된 의미로 쓰이는 것은 잘 알도록 해야 한다.
예문 3에서 時자는 ‘때로’나 ‘제때에’로 猶자는 ‘같다’나 ‘오히려’로도 해석해도 둘 다 말이 된다. 이처럼 한 한자가 각각 다른 의미로 해석해도 다 그 문맥에 맞는 경우에 다의자를 해석하기가 아주 애매해진다.
이렇게 주된 의미가 두세 개 이상 되고 사용 빈도가 높은 한자는 可, 去, 擧, 見, 經, 故, 寧, 道, 果, 過, 幾, 當, 得, 令, 流, 亡, 無, 反, 發, 方, 比, 使, 辭, 傷, 說, 相, 上, 所, 勝, 是, 惡, 焉, 若, 如, 與, 說, 易, 爲, 猶, 以, 已, 子, 者?, 將, 適, 足, 從, 之, 至, 致, 便, 何, 乎, 會 등이다.
1) 崔氏有子, 曰永植也.(최씨에게 아들이 있는데, 영식이 라고 한다)
無男女老少, 人皆好財.(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사람은 모두 재물을 좋아한다)
2) 乘船則不可泳, 而可絶海.(배를 타면 헤엄치지 못해도, 바다를 건널 수 있다)
童聞惡臭, 掩鼻.(아이가 악취를 맡고 코를 가렸다)
예문 1에서 曰자가 ‘라고 하다’는 의미로, 無자는 ‘할 것 없이’라는 의미로 쓰였는데, 이것들은 그 본래적인 의미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않고, 의미가 약간 다르게 변형됐다. 이렇게 문맥에 따라 해석이 약간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예문 2에서 絶자가 ‘건너다’는 의미로 쓰였는데, 絶자의 기본적인 의미인 ‘끊다’에서 ‘건너다’를 유추하기는 쉽지 않지만, 앞뒤 문맥을 잘 살펴 어학적인 센스가 있다면 굳이 옥편을 안 보고도 絶자가 ‘건너다’는 의미도 있음을 알아낼 수도 있다.
1) 我聞雨聲而閉窓門.(나는 빗소리를 듣고 창문을 닫았다)
1-a) 諜者審敵陣, 以具聞將也.(첩자가 적진을 살피고는, (그것을) 장군에게 자세히 들려줬다.)
위 예문 1에서 聞자가 ‘듣다’의 의미로도 쓰였지만, 한편으론 1-a에서는 聞자가 ‘들려주다(말해주다)’는 의미로도 쓰여, 聞자가 서로 상반되는 의미로 쓰였다고 볼 수도 있다.
이렇게 서로 반대, 대비되는 의미를 갖는 한자는 聞(듣다-들려주다), 反(돌아가다(따르다)-거꾸로 하다(반대하다)), 等(동등-차등), 舍(머무르다-버리다) 등이다. 옥편에 있는 다의자의 의미를 모두 다 암기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이보다는 문장을 많이 접하여, 다의자의 여러 의미를 자연스레 터득하되, 주된 의미 위주로 학습하는 것이 더 나아 보인다. 결론적으로 다의자의 정복도 많은 문장을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해석하기 곤란한 다의자는 옥편을 보고 각각 그 의미를 대입해 보고, 그 중에 문맥에 맞는 의미를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데 그 문맥의 갈피를 잘 못 잡고서, 그냥 대입하여 해석하는 것은 엉뚱할 풀이가 될 가능성이 많으니, 신중해야 한다.
품사가 다양하게 해석되는 경우
많은 한자가 두 가지 이상의 품사로 해석되는데, 우리는 대개 이런 한자의 의미를 한 가지 품사로만 해석하다 보니, 해석에 곤란을 겪게 된다. 이런 경우도 다의자의 범주에 속하기도 하나, 여기에서 따로 다룬다. 앞의 과정 ‘단어상의 특징’도 이것과 관련이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1) 立則欲坐, 坐則欲臥.(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다)
1-a) 無立錐之地也.(송곳을 세울 땅도 없다)
예문 1에서 立은 ‘서다’는 의미로 목적어를 취하지 않는 자동사로 풀이가 되는데, 1-a에선 ‘세우다’로 목적어를 취하는 타동사로 해석이 되었다. 이렇게 알고 보면 아무 것 아닌 것 같지만, 立자를 ‘서다’라는 의미에만 구애되어 이것을 자동사로만 해석하려 하고, 막상 ‘세우다’는 타동사로 해석하기가 생각보다 어렵다.
이런 한자에는 立(서다. 세우다), 來(오다. 오게 하다(부르다)), 入(들다. 들이다), 先(앞서다. 앞세우다), 出, 後 등 적지 않다.
1) .牛食草也.(소는 풀을 먹는다.)
1-a) 烹稿, 食牛之.(짚을 삶아 소에게 먹였다.)
예문 1에서 食자가 ‘먹다’라는 일반 동사로 쓰였지만, 1-a는 ‘먹이다’는 상대에게 강제로 시키는 사역의 의미를 갖는 동사로 쓰였다. 使자 같은 것이 쓰이지 않아도, 食자처럼 사역의 의미를 갖는 경우가 생긴다.
1) 春猶山頂有雪.(봄엔 아직 산 정상에는 눈이 있다.)
大事始於小事.(큰 일은 작은 일에서 시작한다)
1-a) 金氏遂雪其辱.(김씨는 드디어 그 치욕을 씻었다.)
忠臣不事二君.(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
예문 1에서 명사로 쓰이던 단어(밑줄)들이 1-a에서는 동사로 해석이 되었다. 이렇게 명사로만 쓰이는 듯하나, 동사로도 해석이 되는 한자는 事(섬기다), 法(본받다), 則(본받다), 質(묻다), 王(왕 노릇하다), 道(말하다), 賞(상주다), 雪(씻다) 등 상당히 많다.
1) 勿兒兒, 有所學焉.(아이를 아이로만 여기지 마라. 아이에도 배울 것이 있다)
비고) 勿以兒爲兒, 有所學焉. ( = )
2) 洪吉童庶出, 不父父矣.(홍길동은 서출이라,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못 했다)
비고) 洪吉童庶出, 以父爲父矣. ( = )
예문 1, 2에서 밑줄 친 단어는 명사처럼 보이는데, 의미상으론 본래 명사의 의미와 깊은 관련이 있어 보이는데, 동사처럼 해석이 됐다. 그런데 바로 밑의 비고에서 보듯이, 이런 경우에 동사로 해석되는 단어는 以~爲 어구에서 爲자의 의미와 비슷하게, 대개 ‘-라고 하다’, ‘-로 여기다’, ‘-로 대하다’ 등으로 풀이 된다.
1) 石重於木.(돌은 나무보다 무겁다)
1-a) 君子重義, 小人重利.(군자는 의를 중하게 여기고, 소인은 이익을 중하게 여긴다.)
重자가 본래 형용사 같은데, 위 1-a에서는 ‘중하게 여기다(중시하다)’로 동사로 풀이가 된다. 이렇게 기본적으론 형용사 같은데, 이것에서 파생된 의미를 갖는 동사로도 해석이 된다. 이런 한자는 輕, 惡, 善, 好, 近, 遠 등이 있다.
1) 日就月將.(날로 나아지고 달로 발전한다.)
1-a) 日就月將.(날이 나아지고 달이 발전한다.)
2) 東行.(동쪽으로 가다)
3) 七顚八起.(일곱 번 넘어지고 여덟 번째 만에 일어나다)
百取九十, 不多乎.(백 중에서 90을 취하니, 많지 아니한가)
위 예문 1처럼 ‘日’, ‘月’ 같은 시간과 관계되는 의미를 갖는 한자가 부사어로 자주 해석이 된다.
이것을 1-a처럼 명사적으로 풀이하면 어색한 해석이 된다.
예문 2처럼 장소와 관련된 의미를 갖는 한자도 문맥에 따라 부사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예문 3처럼 수를 나타내는 한자도 문맥에 따라 명사로가 아니라 부사어로 해석해야 하는 때가 생긴다. 이 외에도 단어가 명사 형태를 하고 있지만, 명사가 아닌 다른 품사(주로 부사어)로 해석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품사나 구조가 바뀌어 해석이 되는 경우
우리는 품사나 문장 구조에 얽매이어 그것을 그대로 쫓아 해석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한문의 품사나 구조 그대로 해석하다 보면, 뭔가 의미가 어색하여, 품사나 구조를 바꾸어 해석하는 것이 의미 전달에 더 나을 때가 있다. 또 해석한 것이 어색하지 않더라도, 한문의 품사나 구조를 달리하여 해석이 가능한 경우도 있다.
이것도 일종의 의역(意譯)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1) 父以寶劍授子也.(아버지가 보검으로써 아들에게 주었다.)
1-a) 父以寶劍授子也.(아버지가 보검을 아들에게 주었다)
2) 王妃薄於福, 厚於德.(왕비는 복에는 박하나 덕에는 후하였다.)
2-a) 王妃薄於福, 厚於德.(왕비는 복은 박하나, 덕은 후하였다)
3) 男兒以義爲重.(남자는 의로써 중한 것을 삼는다)
3-a) 男兒以義爲重.(남자는 의를 중한 것으로 삼는다)
3-b) 男兒以義爲重.(남자는 의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위 예문 1에서 보듯이 以자가 개사(어조사)인 것에만 구애되어 ‘-로써’로만 풀이하는 것보다, 1-a처럼 ‘-을’로 해석하면 문장 의미가 더 매끄러워진다.
밑의 2-a에서 於자 해석도 마찬가지이다.
예문 3에서 以자가 ‘-로써’로, 3-a에서는 ‘-를’로 해석이 됐는데, 3-b처럼 以자에 국한하지 않고 뒤 부분까지 전체적으로 구조를 바꾸어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다.
1) 王歎曰, “如何至於此.”(~ 어찌 이것에 이르렀을까. ~)
1-a) 王歎曰, “如何至於此.”(~ 어찌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
1-b) 王歎曰, “如何至於此.”(~ 어찌 이렇게 됐을까. ~)
2) 弟問師曰, "我聞人中長則壽矣, 有之乎.“(~ 그것이 있습니까. ~)저는 인중이 길면 오래산다고 들었는데
2-a) 弟問師曰, "我聞人中長則壽矣, 有之乎.“(~ (실제로) 그렇습니까. ~)
위 예문 1에서 此자를 대명사로 해석하면 약간 의미가 어색한데, 그 밑에처럼 품사를 달리하여 해석하니, 의미가 자연스러워 보인다.
또 예문 2에 쓰인 之자는 ‘그것’으로 해석하면 어색해 보이나, 도 2-a에서 품사를 다르게 하여 풀이하니,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런데 위의 此, 之 같은 대명사인 단어가 품사를 달리 하여 해석해야, 그 의미가 어색하지 않고 매끈해지는 때가 있는 듯하다.
2-a의 의미는 이러하다. 제자가 스승에게 묻기를 “저는 인중이 길면 오래산다고 들었는데, 그렇습니까.”라고 했다.
1) 我欲見汝久矣.(내가 너를 보고 싶은 지가 오래이다.)
1-a) 我欲見汝久矣.(나는 오랫동안 너를 보고 싶었다.)
2) 王寵奸臣極甚.(왕이 간신을 총애함이 극심했다)
2-a) 王寵奸臣極甚.(왕이 간신을 극심하게 총애했다)
위 예문 1에서는 ‘我欲見汝’를 주어절로 ‘久’는 서술어로 전체를 복문(複文)으로 해석을 했는데, 1-a에서는 ‘久’를 부사어로 전체를 주술 구조 단문(短文)으로 해석했다. 이렇게 구조를 바꾸어 해석해도 되고, 오히려 더 문장의 의미가 더 자연스러워도 보인다.
예문 2-a도 1-a와 유사한 경우로 보인다.
가차, 통자, 동자, 약자, 오자, 속자
가차(假借)는 어떤 한자가 다른 한자와 뜻은 다르나, 음(音)이 같은 경우에, 다른 한자의 뜻을 빌려 쓰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통자(通字), 동자(同字), 약자(略字), 속자(俗字) 등도 다른 한자로 통용되어 쓰인다.
오자(誤字) 중에서도 단순히 개인의 실수가 아니라, 드물지 않게 특정 한자로 통용되어 쓰이는 경우가 있다.
시점 구별하기
한문에도 了(료)자가 과거를 나타내는 어조사로 쓰이기도 하지만, 국어의 어미처럼 시점(時點)을 명확하게 나타내 주는 것이 대개 잘 쓰이지 않아, 시점을 구별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래서 어떤 단어(동사)가 ‘-했다’인지, ‘-하려고 하다’인지, ‘-하고 있다’인지, ‘-할 것이다’의 의미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이럴 경우엔 전후 문맥을 잘 따져, 시점을 잘 파악해야 한다.
그러나 시점을 바로 알 수 있는 今, 古 같은 한자가 쓰이면, 쉽게 시점을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간접적으로 부사적으로 쓰이어 시점을 알게 해 주는 將, 嘗 같은 한자가 쓰인다.
시점이 과거임을 나타내는 한자는 嘗, 曾 등이다. 미래를 암시하는 한자는 將, 欲 등이고, 현재나 진행 중임을 암시하는 한자는 今, 方, 中, ? 등이다.
내용이 어려울 때
보통 사람에겐 주역 같은 책은 한문 원문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우리말 해석을 봐도 도통 무슨 말인지 가늠하기가 힘들다. 이렇게 내용 자체가 전문적이거나 난해한 것은 단순히 한문 해석 실력 가지고는 그 내용을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다.
사서(史書)나 의학서 같은 전문 서책이 아니고, 논어나 맹자 같은 전문성이 짙지 않은 책이라도, 대개의 한문 고전들이 옛날 에 써진 것이라, 그 시대나 장소에 관한 배경 지식 없이 단순히 원문(原文)만 봐서는 정확하게 이해를 하기 어려운 경우가 발생한다. 이에 대한 보완을 하려면, 그 서책에 관한 이전의 주석서나, 요 근래의 그 서책에 관한 번역서나 기타 참고 자료를 의존해야 할 것 같다.
특수한 용어인가. 아닌가.
내가 오래 전에 어릴 적에 비석에 통훈대부(通訓大夫)란 단어를 보고, 한 동안 ‘가르침에 능통한 대부’라고 잘못 알고 있다가, 후에 ‘통훈대부’가 문관(文官)의 정삼품 당하관(堂下官)의 품계란 것을 알고 다소 황당한 적이 있었다. 이렇게 특수한 용어를 일반 단어로 잘못 알면 실수하기 쉬우니, 주의해야 한다.
속뜻을 모를 때
문장의 표면적인 의미만 알고, 그 속뜻을 모른다면 이는 의미를 잘 모르는 것이다. 특히 속담이나 격언, 운문, 우회적인 표현, 반어적인 표현 등은 속뜻을 알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다. 거꾸로 앞뒤 문맥을 살펴, 어떤 문장(부분)의 속뜻을 짐작이 가는데, 그 문장의 일차적인 표면적인 뜻을 잘 모르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두 단어인가. 한 단어인가.
요새도 대개 한문은 구절이나 문장 단위로 구두점을 표기하고, 단어 사이는 띄어쓰기를 잘 하지 않기에, 간혹 한 단어인지 두 단어인지 단어 사이를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또 한문 원문에는 두 단어로 표현됐어도 한 단어로 해석해도 괜찮은 경우도 있다.
문장 형태(구조)가 모호한 경우
한문은 용언이 활용하지 않는 점, 한 단어가 여러 품사로 쓰이는 등의 자체의 특성으로 인하여, 문장 구조가 모호함을 유발하는 경우가 다른 언어에 비하면 많은 편이다. 아래 예시는 밑줄 친 부분이 겉보기엔 똑같은 단어나 구절이지만, 다른 형태 구조를 갖고서 다른 의미를 갖는 경우를 실었다. 아래 예시가 자연스럽지 못하고, 다소 억지스러워 보이기도 한데, 이 점은 양해하기 바란다.
王素悅歌也.(왕은 평소에 노래하기를 좋아한다)
王聞勝報, 悅歌也.(왕이 승보를 듣고, 기뻐 노래했다.)
吉童誘女以歌.(길동이는 노래로 여자를 꾀였다)
趙氏滿醉以歌.(조씨가 만취해가지고서 노래를 불렀다)
王頻變國之法矣.(왕이 자주 나라의 법을 바꿨다)
害國之法, 宜廢.(나라를 해치는 법은 의당 없애야 한다)
人無不好財也.(사람이 재물을 좋아하지 않음이 없다)
近者無不讀文者也.(요새 글을 읽지 못하는 자는 없다)
先義而後利.(의를 먼저 생각하고 이익을 나중에 생각한다)
衣食足而後知禮.(의식이 풍족한 이후에 예를 안다)
賞善罰惡 則誰不爲善也.(선한 자에 상을 주고 악한 것에 벌을 주면, 누가 선을 행하지 않으리오.)
人知賞善罰惡. 不知何由受賞.(사람이 상이 좋고 벌이 나쁜 것은 알지만, 어떻게 해야 상을 받는가를 모른다)
法正, 孰違之哉.(법이 바른데, 누가 어길 것인가)
君子法正, 斥邪也.(군자는 바름을 본받고, 사악함을 물리친다)
不言不可言.(말해서는 안 되는 것을 말하지 마라)
不言誰知乎.(말하지 않으면 누가 알리오)
범위, 끊어 읽기
한문을 읽다보면 아래 言자처럼 길게 구문을 취하는 한자는 어디까지 구문을 취하는지 문제가 생긴다. 이런 것에 대하여 알아보자.
a) 言義者不行焉.(의를 말하는 자 의를 행하지 않는다)
b) 靑出於藍, 言弟過於師.(청출어람은 제자가 스승보다 나음을 말한다)
위 a 문장에서 言은 뒤의 義까지만 짧게 걸리는데, b는 구절 ‘弟過於師’가 길게 걸친다.
言자처럼 뒤에 걸리는 범위가 애매할 수 있는 한자는 知, 見, 聞, 計, 欲 등이다.
또 한문에서 非, 不 같은 부정어가 어느 단어, 구절에까지 걸리는지, 즉 부정어의 범위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아래에서 밑줄 친 것은 부정어에 걸리는 범위를 나타낸 것이다.
a) 誰不學而知之乎. (누가 배우지 않고 알겠는가.)
a-1) 非鈍才, 誰不學而知之乎.(둔재가 아니라면, 누가 배우고 알지 못하겠는가)
a-2) 非鈍才, 誰學而不知之乎. ( = )
b) 非孝不知而不行之, 不欲行而不行之也.(효는 몰라서 행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행하려고 하지 않으니까 행하지 못하는 것이다.)
b-1) 非孝不知而不行之也.(효가 아니면 알지 못하고, 행하지 못한다.)
위의 a, a-1 문장에서 보듯이 ‘不學而知’가 부정어인 不자가 어디까지 걸치는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짐을 알 수 있다. a-1 문장은 不자가 구절로 길게 걸려서 ‘둔재가 아니라면 누가 배우지 않고 알겠는가.’로도 잘못 해석할 여지가 있는데, a-2처럼 不자가 걸리는 범위를 짧게 간결하게 처리하면, 의미 파악하기가 훨씬 분명해진다.
그래서 예문 b에서도 非자가 어디까지 걸리는지, 초학자가 알아내기가 쉽지는 않다. b-1처럼 非자가 걸리는 범위를 잘못 설정하여, 엉뚱한 해석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생략
한문에서 주어, 목적어 등의 주요한 단어가 생략되는 일이 흔하다. 또 어조사 같은 보조적인 단어가 생략됐다고 볼 수도 있는 경우도 흔하다. 한문 문장 안에서 어떤 단어가 생략이 됐다고 볼 수 있는 경우나 단어를 보충하면 그 문장의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경우에 대해 말한다.
生卽死, 死卽生.(살려하면 죽을 것이고, 죽으려 하면 살 것이다.)
視黃金若石.(황금 보기를 돌처럼 하라.)
위 예문처럼 언급되는 것이 막연하고 구체적이지 않은 문장에서 ‘우리, 사람’ 등이 주어가 되는 것 같은데, 주어가 대개 생략된다. 이는 우리말도 그러하니,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甲問於乙曰, “汝何歲.”(갑이 을에게 ‘그대는 몇 살인가’라고 물었다.)
對曰, “不知.” ((을이) ‘모르네’라고 대답했다.)
曰, “何謂名乎.” ((갑이) ‘이름이 무엇인고.’라고 물으니,)
曰, “不亦知.” ((을이) ‘또한 모르네.’라고 했다.)
위처럼 대화문이 연속되는 경우에 흔하게 두 번째부터는 화자(話者)가 생략되는 일이 많다. 이런 경우에는 생략된 화자가 누구인지 혼동될 수 있으니, 주의를 기울여 잘 가려내야 한다.
1) 人不知而不?, 不亦君子乎.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니, 또한 군자답지 아니한가.)
1-a) 人不知我而我不?, 不亦君子乎.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이에 성내지 않으니, ~.)
2) 謙者卑人.(겸손한 자는 남에게 낮춘다)
2-a) 謙者卑己於人.(겸손한 자는 자기를 남에게 낮춘다)
위의 예문 1문장은 의미 파악에 주요한 단어가 생략되어서, 처음 봐서는 ‘남이 알지 못하는 것’(人不知)이 나인지 또 다른 무엇인지 생각보다 알기가 쉽지 않고, ‘성내지 않은 것’(不?)의 주체가 나인가 남인가도 구별하기 까다로울 수 있다. 그래서 1-a처럼 표현되었다면, 상당히 예문 1보다는 쉽게 의미를 알 수 있다.
예문 2, 2-a도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주어 같은 주요 성분이 생략되어, 해석에 논란이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아래를 보라.
1) 孔子謂季氏:"八佾舞於庭,是可忍也,孰不可忍也?"
1-a) (~ “~, (계씨가) 이것(팔일무)을 차마 하니, 무엇을 차마 못 하겠는가.” ~.)
1-b) (~ “~, (내가(공자)) 이것(팔일무)을 참으니, 무엇을 못 참겠는가.” ~.)
2) 是馬雖有千里之能, 食不飽力不足. 才美不外見. 且欲與常馬等, 不可得.( ~ (사람이) 장차 보통 말과 구분하려고 해도 그럴 수 없다)
2-a) = ( ~ (천리마가) 또 보통 말과 같아지려고 해도 그럴 수 없다)
예문 1은 논어에 나오는 구절인데, ‘是可忍也’ 이 구절에 생략된 주어를 무엇으로 간주하느냐에 따라 忍자의 해석이 달라진다.
1-a는 생략된 주어를 ‘계씨’로 보고 해석한 것이고, 1-b는 생략된 주어를 공자나 우리 정도로 보고 해석한 것이다. 예 2는 유명한 한유의 잡설(雜說)의 한 부분이다.
‘且欲與常馬等’에 생략된 주어를 사람으로 보면 2처럼 해석이 되고, 천리마로 보면 2-a로 해석이 되어, 等자의 의미가 달라짐을 알 수 있다.
1) 一石二鳥. (돌 하나로 새 두 마리를 잡는다.)
1-a) 以一石得二鳥. ( = )
위 1 문장만을 처음 보고 ‘돌 하나로 새 두 마리를 잡는다.’라는 의미임을 알기에는 다소 힘들다. 읽는 이가 이해하기 쉽게 하려면 1-a 문장처럼 표현해야 할 것이다.
예문 1처럼 이른바 한자 성어에는 의미를 함축하고 자수를 맞추다 보니, 상당히 생략이 많아 그 의미를 파악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있다. 1-a 예문처럼 생략이 됐다고 볼 수 있거나 보충이 가능한 단어에는 밑줄을 쳤다. 아래로도 마찬가지이다.
1) 孔子自衛反魯. (공자가 위나라에서 노나라로 돌아갔다.)
1-a) 孔子自衛反於魯. ( = )
2) 龜先兎, 來此也.(거북이가 토끼보다 먼저 여기에 왔다.)
2-a) 龜先乎兎, 來此也. ( = )
위의 예시 1은 자칫하면 ‘공자가 위나라에서 노나라를 뒤집었다.’고 오역할 가능성이 있는데, 1-a처럼 어조사 於자가 있으면, 훨씬 쉽게 문장 의미를 알아낼 수 있다.
예시 2, 2-a도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어조사가 생략됐다고 보고, 의미 파악을 하면 해석이 풀리는 경우가 많다.
1) 王用賢, 退不肖也.(왕이 현량한 자를 등용하고, 불초한 자를 물리쳤다)
1-a) 王用賢者, 退不肖者也. ( = )
2) 天助善, 罰惡.(하늘은 착한 자를 돕고, 악한 자를 벌한다)
2-a) 天助善, 罰惡.(하늘은 선을 돕고, 악을 벌한다)
우리말은 어떤 단어가 사람인지 아닌지 확실하게 구분하는 경향이 있지만, 한문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예문 1에서 賢자는 본래 ‘사람’의 의미와 관련이 없는 것 같은데, ‘현량한 자’로 해석이 되어, 사람의 의미와 관련이 있게 됐다. 만일 1-a처럼 표현했으면, 의미 파악이 수월했을 것이다. 어떤 단어가 사람인지 아닌지를 확실히 구별하지 않는 이러한 한문의 특성은 모호함을 초래한다.
예문 2처럼 어떤 단어(밑줄)를 사람으로 해석해야 할지, 2-a처럼 사람이 아닌 것으로 해석해야 할지 모호한 경우가 생긴다.
百大乎十, 小乎千.(백은 십보다 크고, 천보다 적다)
百發百中.(백 번 쏴서 백 번 맞추다)
一當百.(한 사람이 백 사람을 당하다)
위 예문에서 숫자 百이 ‘백, 백 번, 백 사람’으로 각각 풀이가 됐는데, 이처럼 숫자가 단순히 그 수(數)를 의미하는 외에, 문맥에 따라 뒤에 어떤 단어를 보충하여 해석을 해야, 의미가 자연스러워지는 때가 있다.
고유명사인가. 아닌가.
어떤 단어가 인명(人名)이나 지명(地名) 같은 고유명사인지 아닌지가 구분하기 곤란할 때가 더러 있다. 언뜻 고유명사로 보이지 않는데 고유 명사인 경우가 적잖이 있으니, 문맥을 잘 살펴야 한다.
洪吉童, 文武兼備. 然童庶出, 不出仕.(홍길동은 문무를 겸비했다. 그러나 홍길동은 서출이라 벼슬길에 오르지 못했다.)
인명 같은 경우에, 위 예문처럼 동일 인물이 연속 언급될 경우에 이름 끝 자나 자(字) 같은 것을 써서 처음 앞에 표현된 것과 달리 많이 표현하기도 한다. 또 요(堯)나 순(舜)은 성군을 상징하고, 걸(桀)이나 주(紂)가 폭군을 상징하는데, 이렇게 고유명사 중에는 어떤 부분에 거의 대명사가 되어 상징적으로 쓰이는 것도 있다. 이렇게 대명사나 상징이 되다 싶은 단어는 泰山(높은 산), 孔子(성인), 西施?楊貴妃(미녀), 李白(시인), 孫子(병법가), 蘇秦?張儀(언변가), ?(명궁수), 造父?王良(마부), 項羽(장사), 離婁(시력이 좋은 사람), ?(솜씨 좋은 장인), 華陀(명의), 盜?(도적), 幽??, 伯夷?叔弟, 孟獲 등 많다.
지명은 같은 지명이라도 시대에 따라 다른 곳을 가리킬 때가 적잖으니, 유의해야 한다. 그리고 고유명사는 독음이 상당히 보수성을 띄어서, 고유명사 중엔 독음이 변하기 이전의 음으로 읽히는 경우가 있으니, 예를 들면 ‘玄?’는 독음이 ‘현토’가 아니고 ‘현도’라고 하는 따위이다. 이것이 ?자의 독음이 본래 ‘토’가 아니고 ‘도’라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로 삼을 수 있다면, 이런 한자는 국어의 음운 변천 연구에 자료로 가치가 있는 것 같다.
간접적인(구체적인) 표현
직접적인 표현을 하기보다는, 간접적이거나 구체적 표현을 통하여 효과적으로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데, 한문에 이런 것이 적지 않게 쓰인다. 이것을 간혹 겉으로 표현한 액면 그대로만 풀이하면 의미 파악이 혼란스러울 수 있으니, 속뜻을 잘 간파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쓰이는 표현들에는 약간 과장이 들어가기도 하는 것이 특징이다.
?不違農時, 穀不可勝食也.(농사 때를 어기지 않으면 곡식을 다 먹을 수가 없다. => 곡식을 다 먹을 수가 없다는 것은 곡식이 풍족해질 것을 이렇게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書, 載之則汗牛, 積之則充棟.(책이 실으면 소를 땀나게 하고, 쌓으면 들보에 찬다. => 책이 양이 많은 것을 이렇듯 실감나게 표현한 것이다)
?少年見蛇, 五色無主.(소년이 뱀을 보고는, 오색 중에 주된 것이 없었다. => 소년이 뱀을 보고 놀라, 안색이 한 가지로 일정하지 않고 여러 가지 색으로 울긋불긋함을 나타낸다)
?連日降雪, 及牛肩也.(연일 눈이 오더니, 소 어깨에 이르렀다. => 눈이 소의 어깨 높이에 이를 정도로 많이 옴을 의미한다.)
?竹直中繩.(대나무는 곧기가 먹줄에 들어맞는다. => 대나무가 먹줄을 친 것처럼 아주 곧음을 말한다.)
?百發, 百中.(백 번 쏴서 백 번 맞추다.=> 활을 아주 잘 쏘는 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단어를 받는 대사(대명사)
단어나 구절을 대신하여 받는 역할을 하는 之, 是 같은 단어를 대사(代詞)라고 한다. 대사가 대신하여 받은 단어나 구절을 선행사라고 한다.
1) 氷水爲之, 而寒於水.(얼음은 물이 그것(얼음)이 됐으나, 물보다 차갑다)
牛不亦好鷄, 鷄不亦好之.(소도 닭을 좋아하지 않고, 닭도 그것(소)을 좋아하지 않는다)
2) 冬往則春來, 莫能止之也.(겨울이 가면 봄이 오는 것을 아무도 (그것(冬往則春來)을) 막을 수 없다)
兄之妻, 謂之兄嫂也.(형의 처를 (이(兄之妻)를) 형수라고 한다)
예문 1에서 之자가 앞에 나온 단어를 대신하여 쓰였다.
한문에서 예문 1처럼 대사가 단어를 받을 때엔 대개 목적어 자리에 쓰이는 경우가 많고, 사물이 아니고 사람인 단어를 받는 대사가 쓰일 때는 주어 자리에 간혹 대사가 쓰이기도 하나, 사물을 받을 때엔 대사가 주어 자리에 별로 잘 쓰이지 않는 듯하다.
예시 2처럼 한문에서 문장의 처음에 나온 구절이나 단어를 그 문장이나 구절 내에서 대개 목적어 자리에서 바로 또 之자 같은 대사로 받는 모양이 적잖게 눈에 띈다. 이런 형태를 해석할 때에 뒤의 대사는 해석하지 않아도 무방한 경우가 많다. 대사로 쓰이는 한자에는 之, 焉, 其, 此, 諸, 斯, 玆 등이다.
1) 子路問於孔子曰, “我聞舜之父欲殺舜,信乎.”(자로가 공자에게 “순의 아버지가 순을 죽이려고 했다고 들었는데, 진실입니까.”라고 했다.)
2) 有而不知其有, 空氣是也.(있어도 있는 줄 모르니, 공기가 그러하다)
2-a) 有而不知其有, 空氣是也.(있어도 있는 줄 모르니, 공기가 옳다)
위의 예문 1에서 대사 之자는 앞에 선행사를 받아서 뒤에 쓰인 것이 아니고, 그냥 대사가 앞에 쓰이고, 선행사(‘父欲殺舜’)는 뒤에 쓰였다. 이렇게 대화문이 쓰일 때에, 보통 앞에 선행사가 놓이고 뒤에 대사가 놓이는 형태가 아니고, 앞에 대사가 쓰이고 뒤에 선행사가 쓰이는 반대의 형태가 보이기도 한다.
예문 2에서 대사 是는 서술어로 풀이되는데, 대사가 서술어로 쓰이는 경우가 흔하지는 않아서, 초학자라면 2-a처럼 엉뚱한 해석을 하게 될 수도 있다.
1) 女壽乎男, 是何也.(여자가 남자보다 오래 사는데, 이는 어째서인가.)
女壽乎男, 是何也.(여자가 남자보다 오래 산다. 이는 어째서인가.)
1-a) 女壽乎男, 是何也.(여자가 남자보다 오래 사는 것은 어째서인가.)
1-b) 女壽乎男, 何也.(여자가 남자보다 오래 사는데, 이는 어째서인가.)
예문 1에서 보듯이 대명사 是가 앞의 구절(문장)을 받아, 다음 구절 첫 자리에 쓰여, 주어처럼 해석이 된다. 이렇게 쓰이는 한자는 是, 此, 斯 등이다. 이와 같은 경우에 1-a처럼 대명사를 해석하지 않아도 된다.
또 예문 1-b처럼 대명사가 안 쓰여도, 대명사를 넣어 해석하는 것도 가능해 보인다.
구절이나 문장 사이
한문은 구절(句節)이나 문장(文章)을 분명하게 구분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그래서 여기서 말하는 구절은 우리말 해석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구절 사이에 則, 故, 乃, 因 같은 구절 사이의 의미를 분명하게 해 주는 표현이 없을 때는 앞 구절의 용언의 어미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종종 만만치 않은데, 이에 대해 설명한다.
1) 至誠, 感天.(지극히 정성스러우면 하늘을 감동시킨다)
讀書百遍, 義自見.(책을 백 번 읽으면, 뜻이 저절로 나타난다)
1-a) 欠, 掩口.(하품할 때는 입을 가려라)
2) 樹欲靜, 而風不止.(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림이 그치지 않는다)
左右數諫, 王不聽也.(좌우에서 자주 간했으나, 왕이 듣지 않았다)
위의 예문 1은 문장 사이가 가정으로 연결되어, 문장 사이의 용언(밑줄)이 대개 ‘-하면’으로 풀이되는데, 때에 따라선 ‘-하고, -하니’ 등으로 해석이 가능하기도 하다.
1-a처럼 ‘-하면’보다는 ‘-할 때’로 풀이함이 의미가 더 자연스러워 보이는 경우도 존재한다.
예문2 같이 문장 사이가 역접으로 연결되면, 용언이 ‘-하나, -하지만, -해도’ 등으로 풀이된다. 문장 사이가 가정이나 역접으로 연결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의미가 아주 딴판이 될 수 있으니, 우선 이 두 가지 경우에 해당하는지 아닌지 잘 구분해야 할 것 같다. 가정, 역접 이외의 상황에 대하여 알아보자. 아래를 보라.
兒見天, 號也.(아이가 하늘을 보고서, 부르짖었다)
甲見不可見, 被禍.(갑이 봐서는 안 될 것을 봐서, 화를 입었다)
甲見窓外, 降雨也.(갑이 창밖을 보니, 비가 내렸다)
父讀新聞, 竝食朝飯.(아버지는 신문을 읽으면서, 아침을 드셨다)
나머지 경우도 위에서 보듯이, 문장 사이 용언의 어미가 다양하게 해석이 이외에도 문맥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이 될 수 있으니, 문맥을 잘 살펴 의미 파악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대구문
한문처럼 구절이 대(對)를 이루는 대구(對句)가 자주 쓰이는 언어가 또 있을까.
왜 이렇게 한문에선 대구가 흔할까. 한문은 확실히 다른 언어에 비해 문법적인 요소가 빈약한 언어이다.
이러다 보니까, 이 점을 보완하기 위해 문맥을 쉽게 파악하게 하기 위한 특징을 갖게 된 듯하다. 이런 한문의 문맥 지향적인 성향은 주로 대구나 자수 맞추기, 짧은 문장 등을 통해 나타나는 듯하다.
1) 聞僧去寺, 不聞寺去僧也.(중이 절을 떠난다고 들었어도, 절이 중을 떠난다고 듣지 않았다.)
女弱, 母强.(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
1-a) 富者憂失其富, 貧者憂脫其貧.(부자는 그 부유함을 잃을까 걱정하고, 빈자는 그 가난을 어떻게 벗어날까 걱정한다.)
위 예문 1들은 앞뒤 두 구절이 서로 대조, 반대되는 양상이다.
1-a 같은 대구는 간혹 오역을 초래할 수 있다. ‘貧者憂脫其貧’를 ‘빈자는 그 가난을 벗어나기를 걱정한다.’로 해석하여, 가난을 원한다는 의미로 잘못 풀이할 수도 있다. 사실 1-a는 내용이 반대가 되는 대구 형태여서 ‘貧者憂脫其貧’에서 憂자는 의미상 잘못 쓰인 것이나 일종의 언어 유희 비슷하게 쓰였다고 볼 수 있는데, 대구 형태이기 때문에 이런 단어의 오용도 가능해 보인다. 대가 되는 앞 구절을 잘 고려하면,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朝日之始, 春年之發.(아침은 하루의 시작이고, 봄은 일 년의 출발이다)
井蛙不知江河, 夏蟲不識冬節.(우물 안 개구리는 강을 알지 못하고, 여름 벌레는 겨울을 모른다)
위 예시는 두 구절이 비슷한 내용이 대를 이루는 구조이다. 이런 경우에는 비교적 해석하기가 쉬워진다.
男好美女, 女善富男.(남자는 미녀를 좋아하고 여자는 부유한 남자를 좋아한다)
積德者必興, 爲惡者定亡.(덕을 쌓는 자는 반드시 흥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반드시 망한다.)
위 예문은 대구를 이루는데, 그래서 好자에 대를 이루는 善이 ‘좋아한다’로, 定자는 必에 힌트를 얻어 ‘반드시’란 의미로 쓰임을 유추해 낼 수 있다. 만약에 이런 것이 없었다면, 위의 문장에서 善자와 定자의 의미를 제대로 간파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처럼 대(對)를 이루는 형태에서는 선뜻 알아내기 어려울 수 있는 단어의 의미를 대구를 참고하여,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는 묘미가 있다.
연쇄문
문장이나 구절이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것을 연쇄문(連鎖文)이라고 한다. 한문에 연쇄문이 잘 쓰이는 편이다.
1) 鼠恐猫, 猫恐犬, 犬恐虎, 虎恐人, 人恐鼠.(쥐는 고양이를 무서워하고, 고양이는 개를 무서워하고, 개는 호랑이를 무서워하고, 호랑이는 사람을 무서워하고, 사람은 쥐를 무서워한다.)
2) 身修而後家齊, 家齊而後國治, 國治而後天下平.(몸이 닦인 후에 집안이 가지런해지고, 집이 가지런해진 후에 나라가 다스려지고, 나라가 다스려진 후에 천하가 다스려진다.)
예문 1은 단순하게 구절이 연쇄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그래서 상호간에 직접적으로 언급된 것에 한해서만 단순하게 의미상 관련이 있다. 그러나 예문2 같은 경우는 맨 처음부터 마지막 언급된 것까지 서로 간에 의미상 관련을 갖게 된다.
한국식 한문
우리나라 사람이 쓴 한문은, 일부는 중국인이 쓴 듯이 온전히 한문다운 것도 있지만, 아무래도 우리말 영향을 받은 한국식 한문의 특색을 띈다. 아마 국어의 영향인 듯한데, 어순의 위치가 다르거나, 관형절을 길게 취하는 표현 등의 한국식 한문의 특징이 있다. 이런 한국식 한문은 처음에는 어렵게 느낄 수도 있으나, 익숙해지면 정통 한문보다 해석하기가 쉬울 수도 있다.
시(詩)
산문에 능통한 자들도 한시(漢詩)를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한시는 여러 가지 이유로 해석하기가 어렵다. 그 주된 이유는 시어들이 대체로 함축적으로 쓰이기에, 그 의미를 파악하기 힘들다. 또 산문에 비해 시어는 허사 같은 문법적인 성격이 짙은 단어(한자)가 잘 쓰이지 않고 실사로 주로 이루어져, 문맥에 주로 의존하여 의미 파악을 하게 되는 어려움도 있다. 그 외에도 전고(典故)나 차운(次韻) 등이 쓰이면, 이에 대한 배경 지식이 있어야 시의 의미를 잘 파악할 수 있다.
한시에 정통하기 위해서는 한시를 많이 읽거나 외워서 접하는 것이 확실한 길이다. 여기에서는 한시에 관해서는 별로 다루지 않으므로, 한시를 깊이 공부하고 싶다면, 그에 관한 책을 별도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부정문, 부정사(부정어).
부정을 나타내는 문장을 부정문이라 한다. 부정문 중에는 반드시 부정어가 있어야 한다.
부정어는 “不” “弗” “毋” “勿” “未” “否” “非”처럼 부사일 수 있고, “無”처럼 동사일 수 있다.
또한 “莫”과 같이 대명사일 수 있다.
(“莫”은 부정의 뜻을 나타내는 불특정대명사[無定代詞]인데 한대 이전에는 “勿(금지)”의 의미로 쓰이는 경우는 매우 적었다. 아래에서 설명할 것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朽木不可雕也[썩은 나무는 조각할 수 없고]《論語?公冶長》
公弗許[공은 허락하지 않았다]《左傳?隱公元年》
己所不欲, 勿施於人[자신이 바라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論語?衛靈公》
小人有母, 皆嘗小人之食矣, 未嘗君之羹[제게는 어머니가 계신데 저의 음식은 모두 먹어보셨지만 공의 국은 먹어보신 적이 없습니다]《左傳?隱公元年》
王斗曰?”否. …”[왕두가 말했다, “아닙니다. …”]《戰國策?齊策四》
是非君子之言也[이것은 군자의 말씀이 아닙니다]《禮記?檀弓上》
大車無?, 小車無?, 其何以行之哉[큰 수레에 예(끌채 끝)가 없고 작은 수레에 월(끌채 끝)이 없으면 수레를 어떻게 운행하겠는가?]《論語?爲政》
自經於溝瀆而莫之知也[곤란을 당해 목매 죽어도 아무도 알아 주지 않음]《論語?憲問》
상고시기 한어에서, “不” “毋” “未” “莫” 이 네 개의 부정어를 사용하는 부정문은 한 가지 특징이 있다.
즉, 목적어가 대명사라면 그 대명사의 위치는 언제나 동사 앞에 온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居則日 “不吾知也”[평소에 말하기를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하는데]《論語?先進》
以吾一日長乎爾, 毋吾以也[내가 너희보다 하루라도 나이가 많지만 나를 그리 대하지 말고]《論語?先進》
我無爾詐, 爾無我虞[우리는 너희를 속이지 않을 것이니 너희도 우리를 속이지 말라]《左傳?宣公15年》
大道之行也, 與三代之英, 丘未之逮也[큰 도가 행해지던 것과 삼대의 영명한 군주의 일을 내(공자)가 보진 못했지만]《禮記?禮運》
諫而不入, 則莫之繼也[간언했는데 받아 들이지 않는다면 간언을 이어 할 사람이 없습니다]《左傳?宣公2年》
첫 번째 예문에서, “吾”는”知”의 목적어이고, 동사 “知”앞에 놓였다.
두 번째 예문 “毋吾以也”의 “吾”는 “以”의 목적어이고, 동사 “以”의 앞에 놓였다. 그 나머지도 이와 같다.
어떤 사람들은 위에서 열거한 이러한 종류의 문장을 도치문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틀린 것이다. 상고 한어에서 이것은 가장 정상적인 구조로 도치가 아니다. 이 규칙은 부정어 “未” “莫”을 사용한 문장에서 가장 엄격하여 예외가 거의 없다. 후대에 이르러 옛 글을 모방하여 썼기 때문에 고문가들은 여전히 이런 종류의 구조를 활용했다.
“弗” “勿” “非” “無” 이 네 개의 부정어를 사용한 부정문에서는 이런 구조를 활용할 수 없다. 이것은 “弗” “勿”이 수식하는 동사는 일반적으로 목적어를 지니지 않기 때문이다.
또 “非”는 전체 술어를 부정하는 것이고 “無”는 그 자체가 곧 동사이기 때문이다. 만약 목적어가 대명사가 아니라면 설령 부정문이라도 이런 구조를 사용할 수 없다. “君”, “子”와 같은 글자는 진정한 대명사가 아니므로 이런 구조를 사용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誰能出不由戶 何莫由斯道也[누가 문을 통하지 않고 나갈 수 있겠는가? 그런데 어찌 이 도를 따르지 않는가?]《論語?雍也》
雖不得魚, 無後災[물고기의 경우는 비록 얻지는 못하더라도 뒤따르는 재앙은 없으나]《孟子?梁惠王上》
未?鼓音[북소리를 멈추지 않자]《左傳?成公2年》
[소다 주-兵, 以鼓進 以金退(맹자집주)]
若不許君, 將焉用之[공의 요구를 허락하지 않고 어쩌겠습니까?]《左傳?昭公4年》
吾不能早用子[내가 일찍이 그대를 등용하지 못하고]《左傳?喜公30年》
이제 고대한어 중에서 자주 사용하는9개의 부정어 “不” “弗” “毋” “勿” “未” “否” “非” “無” “莫”를 각각 자세히 설명하기로 한다.
[1] 不, 弗
“不”과 “弗”은 의미상으로는 서로 같은 것으로 모두 일반적 부정을 표시하지만 문법적으로는 미세한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다음과 같다.
“不” 뒤의 동사는 타동사일 수도 있고 자동사일 수도 있다. 즉, 목적어를 가질 수도 있고 가지지 않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仁者不憂, 知者不惑, 勇者不懼[어진 자는 근심하지 않고, 지혜로운 자는 미혹되지 않고, 용감한 자는 두려워하지 않느니라]《論語?憲問》
老婦不聞也[들어 보지 못했습니다]《戰國策?趙策4》
不問馬[말에 대해선 묻지 않으셨다]《論語??黨》
“弗” 뒤의 동사는 일반적으로 타동사이나 종종 동사 뒤에 목적어를 가지지 않는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欲與大叔, 臣請事之. 若弗與, 則請除之[태숙에게 왕위를 주고자 하신다면 저는 그를 섬기겠습니다. 만약 주지 않으시려면 그를 제거하십시오]《左傳?隱公元年》
已行, 非弗思也, 祭祀必祝之[떠난 뒤에도, 생각하지 않으신 날이 없었으며, 제사 지낼 때에도 그를 위해 빌어]《戰國策?趙策4》
一簞食, 一豆羹, 得之則生, 弗得則死[한 그릇의 밥과 한 그릇의 국을 얻으면 살고, 얻지 못하면 죽는다면]《孟子?告子上》
?請於武公, 公弗許[무공에게(공숙단을 세울 것을) 여러 번 청하였으나 공이 허락하지 않았다]《左傳?隱公元年》
雖有嘉肴, 弗食, 不知其旨也[비록 좋은 음식이 있어도 먹어보지 않으면 그 맛을 알지 못하고]《禮記?學記》
“弗” 뒤의 동사가 목적어를 가지는 것은 매우 드물다. 예컨대 다음과 같다.
雖與之俱學, 弗若之矣[비록 같이 배운다 하더라도 그 사람만 못할 것이다]《孟子?告子上》
“不”과 “弗”은 모두 명사를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不” 뒤에 사용되는 명사는 형용사나 동사처럼 쓰이고 “弗” 뒤에 사용되는 명사는 타동사처럼 쓰인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公不君[진영공은 군주답지 못하여]《左傳?宣公2年》
臣實不才, 又誰敢怨 [신이 재주가 없는 탓이지 감히 누구를 또 원망하겠습니까?]《左傳?成公3年》
君子不器[군자는 그릇으로 쓰지 않는다]《論語?爲政》
小信未孚, 神弗福也[작은 신의는 신뢰를 얻을 수 없어 신도 복을 내리지 않을 것입니다]《左傳?莊公10年》
[2] 毋, 勿
“毋”는 “勿”과 의미상으로는 서로 같은 것이다. 이들은 ‘祈使句[명령문]’에 사용되어 금지 혹은 그만두게 권하는 것을 나타낸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無使滋蔓[(재앙이) 점점 커지게 놔두지 마십시오]《左傳?隱公元年》
無生民心[백성으로 하여금 딴 마음을 품게 하지 마십시오]《左傳?隱公元年》
不及黃泉, 無相見也[죽기 전까지는 서로 만나지 맙시다]《左傳?隱公元年》
無令輿師陷入君地[우리 군대로 하여금 그대의 땅에 너무 오래 머무르게 하지 말라고(하셨습니다)]《左傳?成公2年》 [소다 주- 陷入君地 或作 淹於君地]
無欲速, 無見小利[빨리 하려고 하지 말며 작은 이익을 보지 마라]《論譜?子路》
문법적으로 “毋”는 “不”과 비슷하고, “勿”은 “弗”과 비슷하다.
“毋” 뒤의 동사는 일반적으로 목적어를 가지고 있고, “勿” 뒤의 동사는 일반적으로 목적어를 가지지 않는다.
그러나 “不”과 “弗”의 차이가 엄격하지 않는 것처럼 “毋”와 “勿”의 차이도 엄격하지 않다.
예를 들면《孟子?梁惠王上》에 百畝之田, 勿奪其時[백 무의 땅을 경작하는데 농사 지을 시기를 놓치지 않으면]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는 勿이 이끄는 동사가 오히려 목적어를 가지고 있다.
“不” “弗” 뒤의 명사가 동사처럼 사용되는 것처럼 “毋” “勿” 뒤의 명사도 동사처럼 사용된다. 아래는 “毋” 뒤의 명사가 동사처럼 사용된 예이다.
毋友不如己者[자기보다 못한 자를 벗하지 말며]《論語?學而》
王毋罪歲, 斯天下之民至焉[왕께서 작황을 탓하지 않는다면 천하의 백성이 모여 들 것입니다]《孟子?梁惠王上》
때로는 “勿”이 ‘祈使句[명령문]’에 사용되지 않고 오히려 평서문[陳述句]에 사용되기도 한다. 이 경우 금지를 의미하지 않으며 그 의미는 “不”와 비슷하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齊侯欲勿許[제후는 허락하고 싶지 않았으나]《左傳?襄公3年》
魯人欲勿?童汪?[노나라 사람들이 아이인 왕기를 성인의 장례로 치르려 하지 않자]《禮記??弓下》
[3] 未
“未”는 일이 아직 실현되지 않은 것을 나타내며, 현대 중국어에서 동사 앞의 “沒有”에 해당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小人有母, 皆嘗小人之食矣, 未嘗君之羹[저에게 어머니가 계시는데 제가 드리는 음식은 다 드셔보셨지만 공의 국은 아직 드셔보신 적이 없습니다]《左傳?隱公元年》
宣子未出山而復[선자(조돈)는 아직 산(국경)을 넘지 못하였는데(이 소식을 듣고) 되돌아갔다]《左傳?宣公2年》
未聞好學者也[아직까지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들어보지 못하였다]《論語?雍也》
見牛未見羊也[소는 보았지만 양은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孟子?梁惠王上》
“未嘗”은 고정된 결합형식으로 “일찍이~한 적이 없다”는 의미이다.
“未”와 “未嘗”의 차이는 다음과 같다.
“未”는 ‘장래 실현 가능성과 대비하여’ 실현되지 않은 것을 나타내거나 또는 ‘이미 실현된 일과 대비하여’ 아직 실현되지 않을 것을 나타낸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什一, 去關市之征, 今玆未能?請輕之, 以待來年[정전제 실시와 관문과 시장의 세금철폐는 금년에는 아직 할 수 없지만 점차 줄여나가 내년을 기다려]《孟子·?文公下》
由也, 升堂矣, 未入於室也[유는 당에 올라왔지만 아직 방에 들어오지 못했다]《論語·先進》
반면 “未嘗”은 단순 과거부정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今君有一窟, 未得高枕而臥也[지금 당신은 하나의 굴만 있을 뿐이니 베개를 높이 베고 편안히 잘 수 없습니다]《戰國策?齊策4》
見?而顧犬, 未爲?也亡羊而補牢, 未爲遲也[토끼를 발견하고 사냥개를 돌아봐도 늦었다고 할 수 없고, 양을 잃고서 외양간을 보수해도 늦었다고 할 수 없다]《戰國策?楚策四》
所食之粟, 伯夷之所樹與? 抑亦盜?之所樹與? 是未可知也[그가 먹는 곡식은 백이가 심은 것인가? 아니면 또한 도척이 심은 것인가? 나는 이것을 모르겠다.]《孟子??文公下》
肉食者鄙, 未能遠謀[지위가 높은 자들은 재물에 눈이 어두워 멀리 내다보지 못합니다]《左傳?莊公10年》
[4] 否
“否”는 응답의 뜻인 “然”에 상응하는 글자다. 주로 한 글자로 이루어진 문장에 쓰여 “아니다”의 뜻을 나타낸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否”는 또한 긍정과 부정이 함께 사용되는 구절에 쓰여 부정의 뜻을 나타낸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孟子曰 “許子必種粟而後食乎?” 曰 “然” “許子必織布而後衣乎?” 曰 “否. 許子衣褐.” [맹자가 가로되, “허자는 반드시 곡식을 심어서 먹습니까?” 진상이 가로되, “그렇습니다.” 맹자가 가로되, “허자는 반드시 베를 짜서 옷을 입습니까?” 진상이 가로되, “아닙니다. 허자는 갈옷을 입습니다.”]《孟子??文公上》
宣王說, 曰 “寡人愚陋, 守齊國, 唯恐失?之, 焉能有四焉?”王斗曰 “否. …”[선왕이 기뻐하며 말하길, “과인은 어리석고 견문이 좁아서, 제나라를 지키며 오직 그것을 잃을까 두려워할 뿐이오. 어찌(선왕이 좋아하시던) 네 가지를 가지고 있겠는가?” 왕두가 말하길, “아닙니다. …”]《戰國策?齊策四》
宦三年矣, 未知母之存否[남을 섬긴 지3년이 되니, 어머니께서 살아 계신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左傳?宣公2年》
[5] 非
“非”는 판단문에 사용되는데, 서술어와 주어의 관계를 부정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是非君子之言也[이것은 군자의 말씀이 아닙니다]《禮記?檀弓上》
管仲非仁者與?[관중은 인자가 아니겠지요?]《論語?憲問》
是何異於刺人而殺之, 日 “非我也, 兵也”[이는 사람을 찔러 죽여 놓고'(죽인 것은) 내가 아니라 칼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孟子?梁惠王上》
이러한 “非”는 비록 현대의 “不是[~이 아니다]”로 번역될 수는 있지만, 그 문법적 의미는 “不是”와 완전히 다르다. “不是”는 판단사[繫辭] “是” 앞에 부정어 “不”를 덧붙인 것이지만, 상고 한어에서 “非”는 계사가 아니고 단순한 부정부사였다. 그것이 부정하는 것은 서술어 전체이다. 이 점은 고한어통론(7)>에서 이미 논하였다.
“非”는 또한 행위나 성질을 부정하는 데 쓰여 어떠한 사실에 대한 부인을 표시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것은 종종 제쳐두는 작용을 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非不說子之道, 力不足也[선생님의 도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제 능력이 부족합니다]《論語?雍也》
非曰能之, 願學焉[잘 할 수 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걸 배우기를 원합니다]《論語?先進》
我非愛其財而易之以羊也[나는 재물이 아까워서 그것을 양으로 바꾼 것이 아닙니다]《孟子?梁惠王上》
城非不高也, 池非不深也, 兵革非不堅利也, 米粟非不多也, 委而去之, 是地利不如人和也[성이 높지 않은 것도 아니고 해자가 깊지 않은 것도 아니며 무기가 견고하고 예리하지 않은 것도 아니며 쌀과 곡식이 많지 않은 것도 아닌데(城을) 버리고 가는 것은 지리가 인화만 못하기 때문이다]《孟子?公孫丑下》
때로는 “非”가 가정적 의미로 쓰인다. 이러한 경우의 “非”는 “若非[만약~이 아니라면]”이나 “若無[만약~이 없다면]”라 하는 경우와 같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吾非至於子之門則殆矣[제가 당신의 문하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큰일날 뻔했습니다]《莊子?秋水》
民非水火不生活[백성은 물과 불이 없으면 생활하지 못하는데]《孟子?盡心上》
五十非帛不煖, 七十非肉不飽[나이 오십에 이르러 비단 옷이 없다면 따뜻하지 않고, 나이 칠십에 이르러 고기가 없다면 배부르지 않은 것이니]《孟子?盡心上》
고서에서 “非”는 또한 “匪”로 쓰기도 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我心匪石, 不可轉也[나의 마음은 돌이 아니라 구를 수도 없네]《詩經??風?柏舟》
匪來貿絲, 來?我謀[실을 바꾸러 온 것이 아니라, 나를 꾀려 왔네]《詩經?衛風?氓》
[6]無
“無”는 일부 고서에서 “无”로도 쓴다.
《周易》에는 일률적으로 “无”로 썼고, 《莊子》에는 대부분 “无”로 썼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不出戶庭, 无咎[집밖에 나가지 않으면, 재앙이 없다]《周易?節》
自夫子之死也, 吾无以爲質矣, 吾无與言之矣[스승이 죽은 뒤로 내겐 상대가 없어서, 더불어 말할 사람이 없다]《莊子?徐無鬼》
[소다 주-《禮·曲禮》 質君之前의 《註》에서 質은 猶對也라 하였다]
어떤 고서에서는 또한 “毋”로 쓴다.
예를 들면다음과같다.
然使十人樹之, 一人拔之, 則毋生楊矣[그러나 열 사람으로 하여 금 심게 하더라도 한 사람이 뽑아내면 살아날 버드나무가 없습니다] 《韓非子?說林上》
衆口所移, 毋翼而飛[여러 사람이 옮기는 것(소문)은 날개가 없이도 납니다]《戰國策?秦策三》
“無”는 “無有”라고 쓸 수도 있는데 뜻은 비슷하다.
예를 들면다음과같다.
自今無有代其君任患者, 有一於此, 將爲戮乎[이제부턴 자기 군주를 대신해 환난을 감당할 자가 없을 것이다. 여기에 오직 한 사람 남아 있는데 죽이려 하는 것인가?]《左傳?成公2年》
其竭力致死, 無有二心[죽을 힘을 다해 싸워 두 마음을 품지 않을 것이니]《左傳?成公3年》
雖無有質, 誰能間之[비록 인질이 없더라도, 누가 그들 사이를 떼어놓을 수 있겠는가?]《左傳?隱公3年》[소다 주-間, 隔也]
左師公日 “今三世以前, 至於趙之爲趙, 趙王之子孫侯者, 其繼有在者乎?”日 “無有”《戰國策?趙策四》[?]
“無”는 때로 “不有”로도 쓰이는데, 부정어의 뒤에서 이중부정을 나타내는데 쓰이거나 복문 중 주어 없는 주절에 쓰인다.
예를 들면다음과같다.
貧而無諂, 富而無驕[가난해도 아첨이 없으며, 부유해도 교만함이 없으면]《論語?學而》
蓋均無貧, 和無寡, 安無傾[대체로 균등하면 가난함이 없고, 화목하면 부족함이 없고, 평안하면 나라가 망하는 일이 없다.]《論語?季氏》
孟嘗君日 “客何好?”日 “客無好也”日 “客何能?”日 “客無能也” [맹상군이 묻되 “객은 무엇을 좋아하는가?” 대답하길 “좋아하는 것이 없습니다”라 하였다. “객은 무엇을 잘하는가?”라 묻되 “잘하는 것도 없습니다”라 하였다.]《戰國策?齊策四》
是使民養生喪死無憾也[이는 백성이 산 사람을 부양하고, 죽은 사람을 장사 지내는 데에 여한이 없도록 하는 일이니]《孟子?梁惠王上》
數口之家可以無飢矣[여러 식구를 가진 집이라도 굶주리는 일이 없게 됩니다] 《孟子?梁惠王上》
“無”는 ‘祈使句[명령문]’에 쓰여 금지나 동의하지 않음을 나타내며 그 뜻은 “毋”와 완전히 일치한다.
[7]莫
“莫”는 부정의 의미를 지닌 ‘불특정대명사[無定代詞]’이고, 현대 중국어에는 그것에 해당하는 대명사가 없다. “누구도 …한 사람이 없다” “…한 것(일)이 없다”로 해석하면 된다.
“莫” 앞에는 “莫”이 대신하는 명사가 나올 수도 있고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예를 들면다음과같다.
?臣莫對[군신 중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으나]《戰國策?楚策一)
過而能改, 善莫大焉[잘못을 했지만 고칠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습니다.]《左傳?宣公2年》
天下之水 莫大於海 [천하의 물 중, 어떤 물도 바다보다 큰 것이 없다.]《莊子?秋水》
諫而不入, 則莫之繼也[간하였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대신해 간할 사람이 없습니다.]《左傳?宣公2年》
自經於溝瀆, 而莫之知也[고난 중에 스스로 목을 매 죽어도 누구도 알아 주지 않는]《論語?憲問》
앞의 세 개의 예문에는 “莫”이 대신하는 명사나 명사구가 있고, 뒤 두 개의 예문에는 없다.
상고 시기에 “莫”은 때때로 부정부사로도 사용되었는데 이 경우 “莫”은“不”에 상당한다.
예를 들면다음과같다.
聞免父之命, 不可以莫之奔也[부친을 사면한다는 명을 들었는데 서둘러 가지 않을 수 없고]《左傳?昭公20年》
人知其一, 莫知其他[사람들은 하나만 알고 다른 것은 알지 못하는구나]《詩經?小雅?小旻》
한대 이후 “莫”는 종종 ‘祈使句[명령문]’에 쓰여 “勿”처럼 해석하면서 금지를 나타낸다.
예를 들면다음과같다.
秦王車裂商君以徇日 “莫如商?反者”[진왕은 상앙을 거열형으로 죽이고 시체를 내걸어 이르길 “상앙과 같이 반란자가 되지 말라”고 하였다]《史記?商君列傳》
作書與內舍, 便嫁莫留住![편지를 써 아내에게 주었네, 더 이상 기다리지 말고 시집가시오!]《陳琳??馬長城窟行》
傳語風光共流轉, 暫時相賞莫相違《杜甫?曲江二首》
[알리노니 (인생은) 풍경과 함께 흐르고 말 것이라. 잠시 서로 즐기고 원망하지 말지니]
서술문과 矣, 焉
서술문은 ‘동사’를 ‘술어’로 삼아 사람 혹은 사물의 행동 변화를 서술하는 것이다. 고대 한어에서 서술문의 일반적 구조는 현대 중국어와 별 차이가 없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冬, 晉文公卒 [겨울에 진문공이 죽었다]《左傳·僖公32年》
晉侯秦伯圍鄭 [진후와 진백이 정을 포위한 것은]《左傳?僖公30年》
初, 鄭武公娶於申 [당초 정무공이 신에서 아내를 맞아]《左傳?隱公元年》
齊侯以諸侯之師侵蔡 [제후가 제후의 군대를 거느리고 채를 침범하여]《左傳?僖公4年》
公賜之食 [장공은 그에게 음식을 하사 하였는데]《左傳?隱公元年》
鄭人使我掌其北門之管 [정나라 사람이 나에게 정나라 북문 열쇠를 맡겼습니다]《左傳?僖公32年》
馬逸不能止[말이 내달아 말을 멈출 수가 없었다]《左傳?成公2年》
虎求百獸而食之 [호랑이는 온갖 짐승을 잡아 먹는데]《戰國策?楚策1》
위에 제시한 이러한 예문들에서“公賜之食”은 ‘이중목적어’로 된 문장이다. “賜食”은 술목구조로 “食”(食物)은 직접목적어이다. “之”는 영고숙[人名]을 가리키며 “賜食”의 대상이고 간접목적어이다.
이와 비슷한 예문은 다음과 같다.
公語之故, 且告之悔 [장공이 그에게 까닭을 말해 주면서 후회스럽다고 토로했다]《左傳?隱公元年》
多予之重器 [그에게 귀중한 보물을 많이 주면서도]《戰國策?趙策4》
일반적으로 동사가 만약 “賜” “予” “遺” “語” “告” 등의 글자이면 대개 두 개의 목적어를 가진다.
하나는 사물을 지시하는 직접목적어이고, 하나는 사람을 가리키는 간접목적어이다. 간접목적어는 동사와 직접목적어 사이에 놓인다. 이런 어법은 고대나 지금이나 같다.
그러나 상고 한어에서 이중 목적어를 가질 수 있는 동사는 결코 위에서 서술한 이러한 종류의 동사에 한정되지 않는다. 일반적인 타동사도 이중목적어를 가질 수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欲見賢人而不以其道, 猶欲其入而閉之門也 [현자를 만나 보고자 하면서 正道로써 만나지 않는다면 이는 마치 들이고자 하면서도 문을 닫는 것과 같습니다]《孟子?萬章 下》
?兄之臂而奪之食, 則得食?不?, 則不得食?則將?之乎?[형의 팔을 비틀어 그의 음식을 빼앗으면 음식을 먹을 수 있고 비틀지 않으면 먹지 못한다면 장차 비틀겠습니까?] 《孟子?告子 下》
天生民而立之君 [하늘이 백성을 내어 그들에게 군주를 세워주고]《左傳?襄公14年》
“閉門”은 ‘술어+목적어구조’로 “門”은 직접목적어이다.
“之”는 “현인”을 가리키면서 “閉門”의 대상이고 간접목적어이다.
나머지 예문들도 이와 비슷하다.
일반적인 타동사에서 가장 주의할 만한 것은 동사 ‘爲’이다.
이 단어는 고대에 함의가 매우 광범위하였지만, 구체적인 문장 안에서 그것의 함의도 비교적 구체적이다. 사용되는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우리는 그것을 “삼다” “하다” “되다” “다스리다” “처리하다” 등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고서에서 ‘爲’를 동사로 삼고 뒤에 이중목적어를 두는 문장이 많이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不如早爲之所 [그에 대해 일찍 조치를 취하는 것이 좋습니다]《左傳?隱公元年》
且君嘗爲晉君賜矣 [또 당신께서는 일찍이 진군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左傳?僖公30年》
而爲之簞食與肉, 置諸?以與之 [그에게 밥과 고기를 만들어 자루 속에 넣어 주었다]《左傳?宣公2年》
重爲之禮而歸之 [ 그(지앵)에게 정중히 예를 갖추고 돌려보냈다]《左傳?成公3年》
吾不忍爲之民也[저는 차마 그의 백성 노릇을 하지 못하겠습니다]《戰國策?趙策3》
君子疾夫舍曰欲之而必爲之辭 [군자는 하고 싶다고 말하지 않고 그것에 대해 변명하는 것을 미워하느니라]《論語?季氏》
위의 예문에 대하여 가장 쉽게 발생하는 오해는 위 첫 두 예문의 “爲”자를 전치사(개사)로 보거나 혹은 다섯째 예문 안의 “爲之民”이 “爲其民[그의 백성이 되다]”과 같은 것이라고 보는 것인데 이것은 모두 틀린 것이다.
세 번째 예문을 분석하면, “爲簞食與肉”은 술목구조이고, “簞食”와 “肉”은 동사“爲”의 직접 목적어이다.
“之”는 영첩(人名)을 가리키고 간접목적어이다. 나머지도 이와 비슷하다
우리는 또 목적어의 위치에 주의해야 한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목적어는 동사 뒤에 놓인다. 그러나 가끔 목적어를 강조하기 위해 목적어를 앞으로 보내고 목적어 뒤에 “是”, “實” 혹은 “之”자를 사용해 다시 지시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豈不?是爲? 先君之好是繼 [어찌 과인을 위해서이겠는가? 선군들께서 맺은 우호를 잇기 위함이다]《左傳?僖公4年》
將?是滅, 何愛於虞? [장차 괵나라도 멸망시키려 하는데 어찌 우나라를 친애하겠습니까?]《左傳?僖公5年》
鬼神非人實親惟德是依[귀신은 사람을 친애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덕을 사랑합니다]《左傳?僖公5年》
姜氏何厭之有? [강씨가 어찌 만족하겠습니까?]《左傳?隱公元年》
商書曰“無偏無黨, 王道蕩蕩”, 其祁奚之謂矣 [상서에 이르길 “치우침이 없으면 임금의 길은 크고 넓을 것이다”고 한 것은 그 기해를 두고 한 말이다]《左傳?襄公3年》
어떤 때에는 또 전치된 목적어 앞에 “惟(唯)”를 사용하여 “惟(唯)……是……” “惟(唯)……之……” 식의 표현법을 구성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故周書曰:“皇天無親 惟德是輔” [그러므로《서경?주서》에 말하길, “하늘은 편애함이 없고 오직 덕이 있는 사람을 돕는다.”라고 하였습니다]《左傳?僖公5年》 率師以來,唯敵是求《左傳?宣公12年》[군사를 이끌고 온 것은 대결을 원한 것입니다]《左傳?僖公5年》
父母唯其疾之憂[부모는 오직 자식의 질병을 걱정할 뿐이니라]《論語?爲政》
不務張其義, 齊其信;唯利之求 [그 의로움을 넓히고 신실함을 다스리는 데 힘쓰지 아니하고, 오직 이익만을 추구한다]《荀子?王覇》
현대 중국어에도 “唯?是?[네 책임이다]、“唯利是?[이익만을 꾀하다]”라고 말하는데, 이러한 어법의 잔재이다.
약간 주의해야 할 점은 만약 전치된 목적어가 대명사이면, 일반적으로 “之”를 사용해 다시 지시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我之懷矣, 自?伊?”, 其我之謂矣! [“나의 슬픔이여! 내가 이 우환을 자초했구나!”한 것은 나를 두고 한 말이구나]《左傳?宣公2年》
詩曰:“孝子不?, 永錫爾類”, 其是之謂乎! [《詩經》에 “효자가 끊임없으니, 영원토록 복락을 주시리라”한 것이 이것을 말한 것이구나!]《左傳?隱公元年》
太甲曰:“天作?猶可違, 自作?不可活”, 此之謂也 [《書經?太甲》에 이르길 “하늘이 내린 재앙은 오히려 피할 수 있지만, 스스로 만든 재앙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한 것은 그것을 두고 한 말이다]《孟子?公孫丑 上》
魯頌曰:“戎狄是膺, ?舒是懲” 周公方且膺之, 子是之學, 亦爲不善變矣 [《詩經?魯頌》에 이르길, “융과 적을 응징하고, 형과 서를 징벌한다”고 하여 주공도 오랑캐를 응징하려 했는데, 당신은 그들에게서 배우고 있으니 또한 잘 변화하지 못하는 것이오]《孟子??文公 上》
이렇게 보면, 고대한어에서 대명사 “是” 혹은 “之”를 이용해서 전치된 목적어를 다시 가리키는 것은 동사-목적어의 순서를 바꾸는 문법 수단이었고, 설령 전치된 목적어 자체가 대명사라 하더라도 이러한 문법 수단이 배제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현대 중국어에는 이러한 어법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문장을 현대 중국어로 번역할 때, “是”나 “之”를 직접 번역할 필요는 없다.
다음은 상고시대의 한어에서 행위의 수량(動量)을 표현하는 어법을 논하기로 한다.
상고시대 한어에서 動量(*소다 : 횟수가 대표적)을 표현하는 어법은 일반적으로 ‘수사’를 직접 동사 앞에 놓고 ‘양사’를 쓰지 않는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三進及溜, 而後視之曰 [세번이나 낙수받이에 나아가서야[진 영공은] 그를 쳐다보면서]《左傳?宣公2年》
桓公九合諸侯, 不以兵車, 管仲之力也 [환공이 여러 번 회맹을 하였으나 무력으로써 하지 않은 것은 관중의 힘이었느니라]《論語?憲問》
禹八年於外, 三過其門而不入 [우 임금은8년을 밖에 있으면서, 여러 번이나 자기 집 앞을 지나쳤지만 들어가지 않았습니다]《孟子??文公 上》
騏驥一躍, 不能十步;駑馬十駕, 功在不舍 [천리마도 한 번 뛰어 열 걸음을 갈 수 없고, 둔한 말도 열 번 끌면 버리지 못할 공이 있나니]《荀子?勸學》
현대 중국어의 動量 표시법은 일반적으로 수사와 양사를 동사 뒤에 놓는 것이다. 예를 들면 “九合”은 현대 중국어에서는 “?合九次”(여기에서 九는 단지 여러 번을 의미하는 것이지 實數는 아니다)이라 하는데 양사(‘次’)를 썼을 뿐만 아니라 어순도 변하였다.
문장성분에서 보면, 고대한어에서 동사 앞에 놓여 동량을 표현하는 수사는 ‘부사어’가 되어 동사를 수식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말하는 사람이 어떤 행위의 수량을 강조하고자 한다면 어법을 바꿀 수도 있다.
즉 수사를 동사 앞에서 문장 끝으로 이동시키고 이 수사 앞에 “者”를 넣어 앞의 말과 분리하면 “者” 앞의 말은 전체 문장의 주어가 되고, 문장 끝으로 이동한 수사는 전체 문장의 ‘서술어’가 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於是平原君欲封魯仲連, 魯仲連辭讓者三, 終不肯受 [이에 평원군이 노중련에게 봉토를 주려 하자 노중련이 사양한 것이 여러 번이었고 끝내 받지 않았다]《戰國策?趙策3》
范增數目項羽, 擧所佩玉?以示之者三 [범증이 항왕에게 자주 눈짓을 하여 차고 있던 옥결을 여러 번 들어 보였지만]《史記?項羽本紀》 [?은 決과 통하므로 옥결을 드는 행위는 결단을 촉구하는 것이다]
동량을 표현하는 수사는 동사 앞 ‘부사어’의 위치에서 전체 문장의 ‘서술어’ 지위로 승격되어 자연히 두드러져서 중요하게 보인다. 현대 중국어와 비교하면, “魯仲連辭讓者三”, “擧所佩玉?以示之者三”은“魯仲連辭讓了多次”, “把佩?的玉??起多次?向他示意”로 번역할 수 있지만 어법구조는 크게 다르다.
위에서 논한 서술문에서 그 문장의 주어는 모두 술어와 동사가 표현하는 행위의 주동 성분이었다. 그러나 현대 중국어와 같이 고대한어의 서술문 주어는 술어와 동사가 표현하는 행위의 피동 성분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蔓草猶不可除,?君之寵弟乎? [무성해지면 풀도 오히려 제거될 수가 없거늘 하물며 당신이 사랑하는 아우는 어떠하겠습니까?]《左傳?隱公元年》
君能補過, 袞不廢矣 [당신께서 능히 실수를 고칠 수 있다면 임금의 자리는 보전될 것입니다]《左傳?宣公2年》
諫行言聽[간하면 그대로 따르고 의견을 말하면 들어주어]《孟子?離婁 下》
술어와 동사로 말하면, 위 예문에서 蔓草는 ‘제거 당하는’ 것이고 ?은 ‘빼앗기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의미상의 피동이라고 말할 수 있을 뿐 상고시대 한어에서 실제로 피동을 표현하는 어법은 아니다.
선진시대에 진정한 피동문이 차지한 비중은 매우 적었다. 말하는 사람이 피동문을 사용할 필요가 있을 때는
일반적으로 동사 뒤에 “於”를 써서 행위의 주동 성분을 끌어 들였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克傷於矢, 流血及? [극극이 화살에 다쳐 피가 신발까지 흘렀다]《左傳?成公2年》
東敗於齊, 長子死焉; 西喪地於秦七百里; 南辱於楚 [동으로는 제나라에 패하여 장자가 거기서 죽고 서로는 진나라에게 하서의 땅 칠백 리를 잃었으며 남으로는 초나라에게 욕을 당하였습니다]《孟子?梁惠王 上》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전치사 “於” 자체가 피동을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 동사가 피동의 뜻으로 사용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於”를 이용해 행위의 주동 성분을 끌어들였기 때문에 피동의 뜻은 더욱 분명해졌다.
또 주의해야 할 것은 고대에 “於”를 사용한 피동문의 어순이 현대 중국어의 어순과 다르다는 점이다. 현대 중국어에서 피동을 나타내는 ‘전치사+목적어’의 “於” 전치사구는 동사 앞에 놓이는 반면(“大樹被風吹倒了”), 고대 한어에서는 동사 뒤에 놓였다(“東敗於齊”).
때로는 “爲”를 이용하여 피동을 표시한다.
父母宗族, 皆爲戮沒 [(장군의) 부모와 일족은 모두 살육 당하고]《戰國策?燕策3》
卒爲天下笑 [마침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戰國策?趙策3》
不爲酒困[술로 괴로움을 당하지 않는 것]《論語?子罕》
나중에는 “爲……所” 의 형식도 있었다.
?聞如姬父爲人所殺 [제(후영)가 듣기로 여희의 아버지가 다른 사람들에게 살해되었다고 합니다]《史記?魏公子列傳》
先卽制人, 後則爲人所制 [먼저 하면 남을 제압하고 나중에 하면 남에게 제압 당한다]《史記? 項羽本紀》
征和二年, 衛太子爲江充所敗 [정화2년에 위태자가 강충으로 인해 죽임을 당하고]《漢書??光金日?傳》
“爲……所”구조의 문장형식은 진한 이후의 고서에서 가장 흔히 보이고 또한 줄곧 현대 중국어의 문언문에까지 계속 사용되었다.
피동을 표시하는 것은 “爲” 이외에도 “見”, “被”가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盆成括見殺 [분성괄이 피살되었는데]《孟子?盡心 下》
吾長見笑於大方之家 [나는 오래도록 대가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莊子?秋水》
國一日被攻, 雖欲事秦, 不可得也 [나라가 하루 아침에 공격을 받게 된다면 비록 그제야 진나라를 섬기고자 하더라도 뜻을 이룰 수가 없을 것입니다]《戰國策?齊策1》
信而見疑, 忠而被謗, 能無怨乎? [신의를 지켰으나 의심을 받고 충성을 다했으나 비방을 받았으니 원망이 없을 수 있겠는가?]《史記?屈原賈生列傳》
그러나 이것은 상고시대 한어에서 피동문의 주요 형식이 아니므로 여기서는 상론하지 않는다.
고대 한어 서술문에서 자주 사용되는 ‘어기사’는 “矣”와 “焉”였다.
(一)矣
“矣”는 ‘動態표시 어기사’로서 사물의 변화와 발전을 나타낸다.
일반적으로 “矣”는 대체로 사물의 발전이 현재 단계에서 새로운 상황의 단계로 이행되었음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 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吾知所過矣 [이제 내 잘못을 알았소]《左傳?宣公2年》(본래 알지 못하였으나 지금은 알게 되었다)
寢門闢矣 [침실 문을 열자]《左傳?宣公2年》(본래 잠겨있으나 지금은 열렸다)
余病矣 [내가 부상을 입었다]《左傳?成公2年》(본래 건강하였지만 지금은 부상을 입었다)
王無親臣矣 [왕께서는 믿을 만한 신하가 없어]《孟子?梁惠王下》(본래 친한 신하가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
어떤 문장은 “已”, “旣”, “嘗” 등과 같은 시간표시 부사를 사용하여 ‘어떤 상황이 이미 이와 같이 되었다’거나 혹은 ‘일찍이 이런 상황이 있었음’을 표시한다. 그 문장의 끝에 “矣”를 사용하는 것은, 말하는 사람이 그것을 ‘상황 변화’로 보고 다른 사람에게 알려 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平原君曰?“勝已泄之矣” [평원군이 말하길 “제가 이미 (장군께서 여기에 와 있다는 것을) 그에게 말하였습니다” 하니]《戰國策?趙策3》
鄭旣知亡矣[정나라는 이제 망할 것을 각오했습니다]《左傳?僖公30年》
且君嘗爲晉君賜矣 [또한 당신께서 일찍이 진공에 은혜를 베푸심에]《左傳?僖公30年》
昔齊威王嘗爲仁義矣 [옛날에 제나라 위왕이 일찍이 인의를 행하여]《戰國策?趙策3》
어떤 경우에는 아직 어떤 상황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미래에 나타날 것이 예상될 때 “矣”를 사용하는 것도 역시 그것을 ‘상황 변화’라 보고 다른 사람에게 알려 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孔子日?“諾, 吾將仕矣” [공자가 말하기를 “알겠습니다. 이제 벼슬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論語?陽貨》
虞不臘矣 [우나라는 이제 납제를 지내지 못할 것이다]《左傳?僖公5年》
다음의 예문은 ‘종속절을 포함한 복문’인데 종속절은 가정을 나타내고, 주절은 이런 가정적 조건 하에서의 ‘결과’를 나타낸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君能補過, 袞不廢矣 [당신께서 능히 실수를 고칠 수 있다면 장차 임금의 지위는 안전하게 될 것입니다]《左傳?宣公2年》
使梁賭秦稱帝之害, 則必助趙矣 [위나라가 진의 칭제가 가져올 해로움을 깨닫게 된다면 반드시 장차 조나라를 돕게 될 것입니다]《戰國策?趙策3》
微管仲, 吾其被髮左?矣[관중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이미 머리를 풀고 옷깃을 왼편으로 여몄을 것이다]《論語?憲問》
[종속절이] ‘이미 이렇게 되었을 것이다’를 의미하든 혹은 ‘장차 이와 같이 될 것이다’를 의미하든
어느 경우든 모두 “矣”는 ‘상황 변화’를 알려 주는 것이다.
‘가능표시문[소다 주-‘可’ ‘能’ 포함문장]’도 비록 서술문에 속한다. 그러나 그 과정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결과로서의[*소다 첨가]) ‘상황 변화’를 알려 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公聞其期, 日?“可矣!”[공이 그 시기를 듣고 말하길 “이제 때가 되었다.”라고 했다]《左傳?隱公元年》
朝聞道, 夕死可矣 [아침에 도를 들을 수 있다면 저녁에는 죽어도 좋으리라]《論語?里仁》(“可也”와 “可矣”의 차이에 주의해야 한다. “可也”는 단순한 판단이고, “可矣”는 이전에는 불가능했으나 현재는 가능하다는 의미를 가진다)
吾?, 不能進於是矣 [나는 성정이 어두워 예전에는 여기까지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孟子?梁惠王上》
형용사를 술어로 한 ‘묘사문’도 동일하게 “矣”자를 사용할 수 있다. 왜냐하면 ‘묘사문’도 동일하게 ‘상황 변화’를 알려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國危矣 [나라가 이제 위태로워졌습니다]《左傳?僖公30年》
今老矣 [이제는 늙었습니다]《左傳?僖公30年》
夫如是, 則能補過者鮮矣[이와 같다면 잘못을 고칠 수 있는 이가 드물게 될 것입니다]《左傳?宣公2年》
어떤 때는 묘사문의 술어부분을 앞으로 보내고 뒤에는 다시 “也”를 사용하여 문장을 끝맺는다(“也”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하면 곧 과장의 어기가 더해진다. 그러나 “矣”자 자체가 과장 어기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 亦太甚矣, 先生之言也! [아! 크게 지나치십니다. 선생의 말씀은!]《戰國策?趙策3》
甚矣吾衰也!久矣吾不復夢見周公! [심하도다. 나의 쇠함이여! 오래되었도다. 꿈에서 주공을 다시 뵙지 못한 것이!]《論語?述而》
‘祈請文’도 “矣”를 쓰는데, 이것은 기원하거나 명령하는 자가 상대방이 어떤 행위를 '실현'하거나 어떤 일을 '완성'하길 바라는 것이다.
[* 소다 : 矣의 경우, '알려 주는' 서술의 기능이 주된 것이고 이러한 기청의 기능 및 의문의 기능은 상대적으로 특수한 예에 속한다. 아래에 절대 다수의 “矣”는 모두 현대의 “了”로 번역할 수 있다고 한 왕력의 견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先生休矣! [선생은 이제 쉬십시오]《戰國策?齊策4》
君姑高枕爲樂矣! [당신은 이제 베게를 높이 베고 즐거움을 누리십시오]《戰國策?齊策4》
결론적으로 말해서, “矣”의 문법적 의미는 현대 중국어 어기사 “了”의 문법적 의미와 서로 비슷하다. 절대 다수의 “矣”는 모두 현대의 “了”로 번역할 수 있다.
“矣”는 또 의문문에서 사용할 수 있다. 이런 경우에도 “矣”는 여전히 원래의 문법적 의미[ *소다 : 상황변화를 알려주는 기능인데 여기서는 '상황변화(-되다)'를 의미한다.]를 가지고 있다. 다만 문장 안에는 의문 대명사 혹은 의문 부사가 있기 때문에 “矣”는 의문의 어감을 도울 뿐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年幾何矣? [나이가 얼마나 되었습니까?]《戰國策?趙策4》
事將奈何矣? [일이 장차 어찌 되겠습니까?]《戰國策?趙策3》
何如斯可謂之士矣? [어찌하여야 선비가 되었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論語?子路》
德何如則可以王矣? [덕이 어떠해야 王者가 되었다 할 수 있습니까?]《孟子?梁惠王上》
(2) 焉
“焉”은 ‘지시대명사’ 겸 ‘어기사’다. 그것은 항상 어떤 범위 혹은 방면을 지시하기 때문에 지시대명사라고 하고, 또 항상 서술문(*알려주는 글)의 문장 끝에 사용되어 ‘끝맺음’을 알려주기 때문에 어기사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는 “焉” 뒤에 다른 어기사를 덧붙이지 않는다.
“焉”자가 지시하는 범위 혹은 방면은 항상 장소나 인물과 관련이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制, 巖邑也, ?叔死焉 [제는 험한 성입니다. 괵숙도 그곳에서 죽었습니다]《左傳?隱公 元年》 (괵숙이 거기서 죽었다)
余收爾骨焉 [내가 거기서 너의 뼈를 거두게 될 것이다]《左傳?僖公32年》(내가 거기서 너의 유골을 거둘 것이다)
文王之?方七十里, 芻?者往焉, 雉兎者往焉[문왕의 동산은 사방70리이나 꼴 베고 나무하는 자가 그리로 가며 꿩을 잡고 토끼를 잡는 자들이 그리로 갈 수 있었습니다.]《孟子?梁惠王 上》(나무꾼과 사냥꾼 모두 거기에 간다)
三人行, 必有我師焉[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거기 우리의 스승이 있다]《論語?述而》(이 세 명 중 반드시 우리의 스승이 있다)
見賢思齊焉 [현명한 이를 보면 그와 같게 되기를 생각합니다]《論語?里仁》(현명한 이를 보면 그와 나란하기를 생각한다. 즉 그와 더불어 나란하기를 생각한다)
非曰能之 願學焉 [그것을 능하게 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라 배우기를 원합니다]《論語?先進》(그 방면에서 공부하길 원한다)
君子道者三, 我無能焉 [군자의 도는 셋인데 나는 그에 능하지 못하니라]《論語?憲問》(나는 이 셋에 모두 능하지 못하다)
吾聞?丁之言, 得養生焉 [나는 백정의 말을 듣고서야 거기서 양생의 도를 깨닫게 되었습니다]《莊子?養生主》(여기에서 양생의 도를 깨달았다)
이런 용법의”焉”은 만약 그 앞이 형용사라면[소다 주-묘사문] 바로 비교대상을 가리킨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晉國, 天下莫?焉[진나라가 천하에 제일 강함]《孟子?梁惠王上》(천하에 어느 나라도 진나라 보다 강하지 않습니다.)
過而能改, 善莫大焉 [잘못을 고칠 수만 있다면 이보다 좋은 일은 없습니다.]《左傳?宣公2年》(어떤 좋은 일도 이보다 큰 것이 없습니다.) [* 소다 : 의미상으로는 莫大善焉과 같다.]
우리는 “之”와 “焉”의 구별에 주의해야 한다.
동사와 결합할 때 “之”자는 타동사 뒤에 쓰고, “焉”자는 자동사 뒤에 쓴다.
위에서 든 예를 살펴 보자.
“非曰能之, 願學焉”의 “能”은 고대에 타동사였고, “學”은 자동사[* 소다 : 學焉은 學於此로 볼 때 學이 자동사라는 것이다]로 쓰였다. 같은 동사에 “之”나 “焉”을 덧붙이면 단어의 뜻이 다르다.
“死焉”의 “死”는 자동사이며 일반적인 뜻이다. 예를 들면 “?叔死焉”의 경우이다.
“死之[*소다 : 의미상으로는 死爲之와 같다. 위동용법으로 설명된다. 양백준도 之의 설명에서 형태는 목적어지만 개사가 생략된 것이라고 하였다. ]”의 “死”는 타동사며 순절(殉難)을 나타낸다.
예를 들면 《左傳?宣公2年》 “提彌明死之 [제미명은 순절하였다]”의 경우이다.
“焉”자는 비록 대명사이지만 그 위치는 언제나 문장의 끝에 있기 때문에 그것은 점점 어기사의 성질을 얻게 되었다. 그래서 “焉”자가 문장 속에서 ‘於’ 전치사구와 함께 나오면, “焉”의 대명사 성질은 약화되고 그 어기사 성질은 더욱 두드러진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寡人之於國也, 盡心焉耳矣 [과인은 나라에 대해 마음을 다하고 있습니다]《孟子?梁惠王 上》(“焉”과 “於國”이 동시에 나왔다)
夫子言之, 於我心有戚戚焉 [선생께서 그리 말씀해 주시니 내 마음이 슬퍼집니다]《孟子?梁惠王上》(“焉”과 “於我心”이 동시에 나왔다)
때때로 “焉”은 비록 ‘於’ 전치사구와 함께 나오지 않는다 해도 대명사의 성질을 완전히 상실해버려서 단지 순수한 어기사로만 볼 수 있을 뿐이고 사람의 주의를 끄는 어감을 가질 뿐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擊之, 必大捷焉 [공격하면 반드시 크게 이길 것입니다]《左傳?僖公32年》
宗廟之事如會同, 端章甫, 願爲小相焉 [종묘의 제사나 혹은 제후의 회맹이 있을 때에 예복과 예관을 갖추고 贊禮가 되길 원합니다]《論語?先進》
君以爲易, 其難也將至矣?君以爲難, 其易也將至焉 [당신이 쉽다고 여기면 장차 어려움이 따르게 되고 당신이 어렵다고 여기면 장차 쉬움이 따르게 됩니다]《國語?晋語4》
子日?君子病無能焉, 不病人之不己知也 [공자가 말씀하셨다. “군자는 능한 것이 없음을 걱정하고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論語?衛靈公》
마지막의 두 예문은 계발성이 풍부하다. 이 두 예문은 모두 대등문의 문법이다.
세 번째 예문의 앞 절에서는 “矣”를 썼고, 뒷 절에서는 “焉”을 썼다.
네 번째 예문의 앞 절에서는 “焉”을 썼고, 뒷 절에서는 “也”를 썼다.
비교해보면 “焉”이 나타내는 것은 어기임을 알 수 있다.
어기사 “焉”은 어느 정도 현대 중국어의 “?”와비슷하다. 그러나 모든 문장의 “焉”을 모두 “?”로번역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상은 모두 “焉”의 활용법이라 볼 수 있고 “焉”의 본래 용법은 여전히 지시대명사 겸 어기사이다.
“矣”와 똑같이 “焉”도 의문문에 쓸 수 있으며 그 경우에도 “焉”은 여전히 원래의 문법적 의미[ * 소다 : 대명사(於此)의 기능]를 가진다. 다만 문장 속에 의문대명사 또는 의문부사가 있기 때문에 “焉”은 의문의 어감을 나타내는 것을 도울 뿐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君何患焉? [당신은 어찌하여 (그에 대해) 걱정하십니까?]《左傳?隱公元年》
旣富矣, 又何加焉? [풍족해진 다음에는 (거기에) 또 무엇을 더해야 합니까?]《論語?子路》
王若隱其無罪而就死地, 則牛羊何擇焉? [왕께서 만약 그 소가 죄 없이 사지로 끌려가는 것을 측은하게 여기셨다면 (거기에서) 어찌 소와 양을 가리셨겠습니까(차별하셨겠습니까)?]《孟子?梁惠王 上》
이 밖에 고서에서 또 어떤 “焉”은 문장 중간에서 마치 앞 글을 받아 뒤로 이어주는 작용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命舟牧覆舟, 五覆五反, 乃告舟備具於天子, 天子焉始乘舟. [주목에게 명하여 배를 살피게 하길 다섯 번 뒤집고 다섯 번 잦혀서 천자에게 배가 구비되었다고 알리면 천자가 이에 비로소 배에 올라]《呂氏春秋·季春紀》
公輸子自魯南遊楚, 焉始爲舟戰之器 [공수자가 노나라에서 남쪽 초나라로 가서 이에 처음 수상전에 필요한 무기를 만들었다]《墨子?魯問》
必知亂之所自起, 焉能治之?不知亂之所自起, 則不能治[반드시 혼란이 일어난 이유를 알아야 그래야 그것(난)을 다스릴 수 있다. 혼란이 일어난 이유를 알지 못하면 다스릴 수가 없다] 《墨子?兼愛 上》
이런 “焉”은 또 “安”이나 “案”으로 쓸 수 있다. 《荀子》에 비교적 자주 보인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故先王聖人安爲之立中制節 [그러므로 이에 선왕과 성인이 그들을 위해서 중도를 세워 절제 있게 하였다]《荀子?禮論》
是案曰是, 非案曰非 [옳은 것은 옳다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 한다]《荀子?臣道》
어떤 사람은 이런 “焉”을 “於是[그래서]”, “乃[이에]”, “則[즉]”으로 해석하고 접속사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이런 용법의 “焉”은 지시대명사 “焉”과 여전히 서로 통한다.
만약 지시대명사 “焉”이 문장 끝에 쓰였기 때문에 점점 어기사의 성질을 띠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이 문장 중에 쓰여 점점 관련된 품사의 성질을 얻을 수 있다고 보는 것도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焉”의 이런 용법은 충분한 발전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고서에서도 자주 보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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